들릴듯 말듯한 벨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린다. 귀에 익지않은 소리인데 무슨 소리지? 안방 책상 위에 놓여져 있던 나의 손전화기에서 울리는 벨소리는 오늘의 스케쥴을 알려주는 울림이었다. 며칠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건망증때문에 달력에 표시를 해 놓고도 깜빡깜빡하여 폰에다 저장을 해 놓았던 것이다. 어? 오늘 어떤모임도 없는 날인데 무슨 날이지? 뚜껑을 열어 문자를 보니 '#대 논술 9시'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랬다. 이번 수능을 치룬 아들아이는 소위 서울의 일류라고 말하는 대학에 1,2학기 수시 몇 군데를 지원해 놓고는 미역국을 먹었다. 그렇다고 의기소침해 하는 법이 없었던 아들아이는 받아든 성적표를 가지고 소신껏 일류에 약간 밀려난 학교들을 지원하였다. 가,나,다군 대학... 그중 가군의 논술이 오늘 있었던 것이다. 사는 지역이 아무리 두메산골이라 할지라도 자기 할 탓이라고 스스로 제 공부만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서울의 일류대학 들어갔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일류대학... 서울 강남권의 대학진학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곳이 강남권이요 고학력의 부모 밑에서 별 경제적인 어려움없이 공부해 오던 아이들이 사교육 열풍 으로 변해버린 교육제도로 부만 따르면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아들아이가 고1, 2학년 무렵 장학금을 받았을때 강남권에 살고 있는 조카가 '나도 너처럼 이곳에서 살면 장학금 받고 상위권될 수 있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하긴 여기에서 공부하여 1,2등 하던 아이가 서울로 전학가니 중간 정도밖에 되지 않더라는 말이 수긍가긴 했지만 강남에 사는 것을 큰 호사 누린냥 시누이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남 강북 그리고 시골을 갈라놓기 일쑤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부해 왔던 강원남부 지역의 아이들이었다. 고액을 들여 사교육열풍 대열에 빠지지 않으려는 대도시의 아이들에 비해 이곳은 무조건 자율과 심화 보충학습이라 하여 밤 12시까지 학교에서 시키는 것으로 일관하였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은 수능 330점까지는 우리가 만들어주는 점수이고 그 위부터는 너희들이 할 탓이라며 가끔 책임없는 말들을 뱉곤 하였다. 아들과 나는 실력 탓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매스컴에서 한창 보도한 '강남권특혜'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였다. 여하튼 우물안의 개구리가 환한 세상을 보기위해 발버둥치려 수시에 도전해 보았던 일류대학의 꿈은 물거품처럼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취업난으로 인한 전공선택과 퀵서비스맨까지 동원하여 눈치보며 지원한 대학... 일단 들어가고 보자는 식의 풍토가 언제까지 이어지려는지 걱정이다. 아들은 취업난을 생각하고 지원한 학과도 아니요, 눈치보며 택함도 아닌 어린시절부터 막연하게 고고학자, 역사학자 운운하며 역사에 빠져들던 아이었다. 결국 택한 학교와 전공이 사학이라지만 훗날 취업난까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련다. 지금쯤이면 학교교실에 앉아 논술 마무리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하지만 아들은 그 학교에 있지 않았다. 이미 수능점수로만 뽑는 50%안에 들어 3일전 합격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지원한 대학... 그리고 하고싶은 공부..... 서울의 사대문 안 학교에 들어갈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아들.. 부모의 뒷바라지 받으며 쉽게 공부하여 들어간 대학이라면 그 기쁨 이리 크진 않을 것이다. 3년동안 아들아이가 받았던 가정내 우환... 자기는 괜찮다며 동생 고3 졸업할때까지만 참고 살라고 말해 주었던 아이.. 그동안 고충 감내하며 묵묵히 견뎌준 아들이 너무 이쁠 뿐이다. 아들아 고생많았다. 축하한다... 몇십번의 축하메시지를 질리도록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