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버스기사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679

가정교육이 부부싸움에 미치는 효과...


BY 낸시 2004-12-22

결혼을 하고나서 여편이 놀란 것 중의 하나는 시어머니가 차려내는 밥상이다.

가난한 시골 살림인 줄만 알았는데 날마다 밥상은 다리가 쓰러질 것만 같다.

반찬의 종류도 많지만 밥상은 풍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담는 것도 수북수북 담는다.

시골이라 해도 모든 가족이 농사일을 하는 것도 아니건만 밥도 그릇 그릇 그득히 담았다.

 

어느 해인가 한밤중에 동네 이장이 방송을 했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차서 둑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주민 여러분께서는 속히 일어나 귀중품을 챙겨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저수지 둑이.....

......"

이장의 다급한 말소리는 한밤중에 확성기를 타고 계속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잠에서 깨었다.

마을 뒷산 밑에 커다란 저수지가 있어 큰비가 내리면 홍수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동네다.

이집 저집 불이 켜지고 사람들은  웅성웅성 대피할 준비를 하였다.

시어머니도 준비를 하였다.

부엌으로 내려가 가마솥에 쌀을 씻어 앉히고 불을 때기 시작한 것이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곱다고 그저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런 집에서 자란 남편에게는 밥먹는 것이 중요하다.

분위기있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곁드려 그럴 듯한 디너를 했어도 집에 와서 밥과 김치 한조각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밥을 굶는다는 것은 그의 사전에 없는 말이다.

아무리 아파도 끼니 때면 일어나 밥 한그릇은 먹고 누워 앓는 사람이다.

 

여편이 밥상머리에서 가장 많이 듣고 자란 말은 이런 것이다.

"한 숟가락 더 먹었으면 할 때 수저를 놓아라."

"밥 많이 먹는 것은 미련한 사람이 하는 짓이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도 가끔 반복해서 들려주곤 하였다.

사형제의 막내인 할아버지는 어려서 그다지 식성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아이가 집에서 모내기를 하는 날, 다른 날과 다른 색다른 반찬에 구미가 땡겼든지 밥을 많이 먹었다.

평소와 다른 막내의 식성이 보기 좋았던지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큰형님이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과 더불어 이것저것 맛있어 보이는 것을 앞으로 옮겨주며 더 먹으라고 부추겼다.

그날따라 음식이 맛있기도 했지만 어른들의 칭찬에 아이는 과식을 하였다.

잠시 후 어른들은 모두 들로 나가고, 아이는 갑자기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배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앉아 있을 수도 누워 있을 수도 없이 배가 차오르고 숨이 답답해졌다.

아이는 숨을 쉬기 위해서 두팔로 바닥을 버티고 있는대로 배를 앞으로 쭈욱 내민 자세로 꼼짝도 못하고 한나절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어도 그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절대 밥을 많이 먹지 말라고 하였다.

할아버지는 며느리인 어머니에게도 식구들 밥그릇에 밥을 많이 담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하였다.

 

그래서인지 여편은 과식하는 법이 없다.

꼭 밥을 먹어야 된다는 생각도 그닥 없다.

필요하면 한 두끼 굶는 것도 예사다.

아이들이 배가 아프다고 할 때, 여편의 처방은 소화제가 아니다.

'굶어라!' 그것이 여편의 처방이다.

남의 집 초대를 받아 가는 남편에게 당부도 잊지 않는다.

"맛있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과식은 하지 말아요!"

 

저녁 8시가 넘었다.

남편의 뱃속에서 밥 달라고 연신 신호가 온다.

하지만 여편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꼼짝도 안한다.

낮에 남편과 티각태각 한 일 때문이다.

여편과 산 세월이 남편에게 가르쳐준다.

오늘밤도 어쩌면 굶게 될지도 모른다고...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부엌에 가서 뒤져보았지만 남은 밥도 없다.

하긴 여편의 살림에 찬밥이란 없다.

계량컵으로 딱 재서 한끼 먹을 밥만 하는 것이 여편의 장끼다.

더 먹고 싶어서 달라고 해 봐야 돌아오는 대답은 밥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이다.

 

배고픔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남편이 머리를 굴려 타협안을 생각해냈다.

"여보,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이찌방에 가서 저녁 사줄께..."

이찌방은 여편이 음식 맛이 괜찮다고 했던 곳이다.

남편은 외식을 싫어하지만 여편은 외식을 좋아한다.

여편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은 자기 손으로 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하기도 하니까...

일어나 밥을 해 줄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이 말에는 넘어갈지도 모른다고 남편은 계산을 했다.

하지만 남편의 계산 착오다.

"싫어,  혼자 가서 먹어!  열심히 챙겨먹고 살면 뭐하냐?

사는 것이 재미도 없는데..."

여편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사실은  남편의 제안에 솔깃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발딱 일어나긴 좀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여편도 배고픈 것을 참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남편을 아는 여편은 좀더 기다려보기로 한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이,,,일어나 가자아~..."

배고픈 것에 약한 남편이 한번 더 자존심을 죽이고 사정을 했다.

"싫다니까! 내일도 똑 같은 소리해서 내 속을 긁을 거잖아!

내가 미쳤냐? 또 당하기 위해서 먹게?"

배고픈 것을 참고 여편은 한 번 더 튕겼다.

여편이 이렇게 나오면 남편은 뒤로 한 발작 더 밀릴 수 밖에 없다.

"내가 잘못했어!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 볼께..."

이쯤 되면 여편도 슬며시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여기서 약해지면 안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한번 더 밀어 본다.

"노력은 하겠지만 안한다 소리는 안하네..."

남편도 마냥 밀릴 수 많은 없다.

"사람이 어떻게 장담을 하냐? 내가 안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는 때가 있는데..."

이미 여편의 화는 다 풀린 후다.

하지만 화가 나서 남편에게 이미 해 버린 '할 말, 못할 말' 중에 '못할 말'들에 뒤가 좀 캥긴다.

"그러면 나는 또 화가 나서 별소리 다하고 욕하고 그럴건데, 난 그런 것 싫거든..."

"별 수 없지 뭐, 그래도 오늘처럼 내가 먼저 사과할께..."

교활한 여편은 자기가 한 잘못에 대한 면죄부까지 받아낸다.

그저 배고픈 것을 못 참는 것이 웬수다.

남편은 끝까지 저자세을 유지할 수 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몇끼를 굶을지도 모르는데...

더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승리를 만끽하며 드디어 이불을 들치고 여편은 일어난다.

미안한 마음에 외식을 싫어하는 남편에게 선심도 쓴다.

 

"알았어, 내가 얼른 밥하고 국 앉힐께..."

 

모두가 조상 탓이고 조상 덕이다.

남편이 사과한 것도, 여편이 승리를 얻어 낸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