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부턴가 신문도 잘 안본다.
눈 버리고 머리 헷갈린다. 도무지 나라편인지 국민편인지 아니면 신문 독자편인지
판단이 안 서기 때문이다. 남들은 아줌마들은 원래 신문 잘 안볼거라고 지네들이 다 조사해가서 그런가..
티브이 뉴스도 20%도 신빙성을 주지 않는다. 설사 사람 죽인 뉴스도 직접 그 용의자 항의를 중계하지 않고서는 10%도 아깝다.
요즘 수능고사 치룬 학생들 정말 재수 없이 걸렸다. 이런 생각 할 것이다.
해마다 치루는 시험에 컨닝없다고 신문에 나오면, 방송에 나오면 그만인 언론 플레이에 정말 재수 없이 걸렸다고 억울하다고 할 것이다. 분명 작년에도 또 그 작년에도 분명히 수능은 날짜 틀리지 않고 진행시키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수학 젬뱅이다. 지금도 아들놈 산수, 수학분수 아냐고 물어보면 대충 얼버무린다.
자신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돈세고 따지는데 시계보는데 별 이상없다. 사는데도 아무 이상없다. 단지 모른다고 잘 모른다고 내 생각이 게으른 것 뿐이다. 누구 머리 빌려서 대신 시험보게 하고 싶지 않고, 그러므로 일어나는 전반적인 뒷 감당이 헷갈린다. 적어도 나 다닐 학교에선 이런 것을 가르쳤다. 점수의 잣대가 중요한 만큼 내 자아의 가치존중을 위한 가치도 공존하게 하는 잣대. 그래서 아직 그 점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행히 나는 그 점수가 요구되지 않았다. 아직 수영을 안배워도 누가 뭐라고 하는 이 없는것처럼, 내게 선택이냐, 아니냐 였지 꼭 필수는 아니였던 것이다.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시대의 잘못된 흐름에 휩싸여 싫든 좋든 무조건 시험보게하는 곳에 부정으로 걸렸다에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맨날 테레비에 나온다면 정말 좋을까 노래도 있는데, 잠바 뒤집어 쓰고 경찰서에서 줄줄이 엮어져 나오는 제자를 보는 스승은 뭐하고 있냐고 오히려 질책하고 싶은 것이다.
경쟁사회의 시발점의 수능이다. 부정으로 출발시켜서 한 번 잘살아보라고?
두고 두고 가슴에 십자가 지고가라는 소리와 똑같다. 잘못된 수능은 없다. 한 번 갈고 닦은 실력을 맘껏 신나게 겨뤄보자고 만든 제도가 아닌가? 결코 대학만 진학하기 위한 제도가 아닌 것이다. 나두 나이 오십을 바라보든 환갑을 지내든 나를 가늠하는 시험이 있다면 분연히 응시하고 싶은 것이다. 그 것은 경쟁사회가 아닌 더불어 같이 잘 살기위한 하나의 제도임에 일단락 짓고 보자는 것이다. 한 번만 생각을 바꿔도 지구 반대편에 굶어죽어가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울지말라, 통곡하지 말라, 억울해 하지 말라, 시대는 이런 것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순서에 우리가 조연이든 주역이든 지나가는 단역이든 보조를 해주었기에 이게 우리모두의 책임을 통감한다. 나는 계속 지적할 것이다. 나를 만드는 도구에 반듯이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절대 간과 할 수없기에 쉽게 포기를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