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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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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친구에게


BY 인 연 2004-11-21

    먼저 간 친구에게
    
    출근준비가 급한데 난데없이 핸드폰이 발작을 일으켰다.
    아침부터 무슨 전화일까? 
    이른 아침이나 심야에 전화벨이 울리면 궁금증보다 가슴부터 두근거린다. 
    전화로 인해 불에 데인 아이처럼 놀란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폐암 말기란다. 아버지가 위독하다. 아버지 운명하셨다. 
    박서기관님께서 오늘 낮에 교민행사에 가시다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심장이 덜컹하고 100미터 아래, 시멘트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멀리 아프리카 가나공화국, 한국대사관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  
    불길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서기관님은 현장에서 순직하시고 사모님은 다행이 부상이 크지 않아 지금 
    현지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어머니가 어제 빙판 길에서 낙상하셔 병원에 입원하셨단다. 
    어느 날 밤일지 모르겠지만 득달같이 태평양을 건너온 형님의 목소리는 
    백정이 휘두르는 칼날처럼 섬뜩할 것이다.
    이런 전화들은 사십여년 동안 수도 없이 받아서 면역도 되었을 것인데 두려움은 
    한결같다. 
    전화벨은 대부분 곤하게 잠든 시간에 울린다. 
    그리고 공포영화 효과음보다 오싹하여 온몸에 소름이 다 돋는다. 
    복권이나 경품에 당첨되었다는 알림이나 금번 프리젠테이션에 참여한 업체 중에 
    귀사가 최고였다고 광고주로부터 걸려 온 전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벨소리가 평소보다 앙칼져 망설일 틈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걱정과는 달리 부천에 사는 고향친구의 전화였다. 
    친구의 목소리는 마치 상기된 얼굴을 보고있는 것 같았고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문 입술이 저절로 열렸다.
    미친놈! 처음엔 믿어지지 않았다. 기가 막혔다. 어처구니도 없었다. 
    하지만 통화가 길어질 수록 잘됐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누가 그러더라. 어떤 부모가 망나니자식 하나 때문에 걱정이 굽이굽이 
    천리 길이었는데 어느 날, 그 자식이 사고치고 감방가고 나니 그렇게 멀게 
    느껴지던 길이 십리도 안되어 보이더란 거야. 
    그리고 너, 필녀 알지? 어릴 적, 우리 이웃집에 살던 여자아이. 
    그래, 맞아. 어린 아들이 심장병에 걸려서 가진 돈, 빌린 돈 다 쳐들어서 
    수술하고 치료했는데 일년도 안돼 죽어 버렸데. 
    미치지 않으면 환장할 노릇이지.
    처음엔 하도 어이가 없어 죽은 자식을 앞에 두고도 눈물이 안 나오더래. 
    그랬는데 화장이 끝나 강물에 뿌리고 나니 그 때부터 너무나 억울하고 
    보고싶어 미칠 것 같았데. 
    그 길로 수술했던 병원으로 달려가 아들 살려 내라, 수술비 물어 내라 길길이 
    뛰었는데 병원에서는 미안하다는 말을 고사하고 미친 여자 취급까지 
    하더라는 거야.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자살 충동까지 생겼단다. 
    중년여인이 아니었으면 진짜 계단에서 뛰어내렸을 거래. 
    그 여인이 자신의 팔을 필사적으로 잡고 늘어지며 하나님을 외쳐 할 수없이 
    포기했다는 거야.
    한참 후 사태가 진정되고 병원직원들에게 떠밀리다 시피 병원을 나서는데 
    인생이 허망하고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병든 자식이 품안에 없다, 
    생각하니 오히려 홀가분하더라는 거야. 
    솔직히 내가 부모라도 홀가분해 할거야. 그러나 이런 일을 보면 사람 속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래서 옛말에 물 열길 속은 알아도 사람 한길 속은 모른다고 했나 봐.
    
    손지우.
    장례식에 형사들 왔다갔다 하는데 그것도 꼴 사납더라. 
    나중에 나는 곱게 죽고 싶더라. 
    너도 교도소에 간 자식, 수술하고도 죽은 자식을 둔 부모 심정을 이해할거야. 
    그렇다면 너도 잘된 일인지도 몰라. 
    어차피 인생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는 것은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우리는 어릴 적부터 서로를 너무 잘 알았어. 
    이웃집에 살았기 때문에 서로의 집에 벼룩이 몇 마리 사는지도 알 정도였었잖아. 
    그 때 청년이 된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너의 모습도 가끔씩 상상했었다. 
    이상하게도 내 머릿속에선 네가 자꾸 벼룩처럼 보이더라. 
    사실, 어릴 적부터 나는 너를 내 눈에다 싹수가 노란 놈이라고 낙인을 찍었었다. 
    비록 조두鳥頭지만 너도 생각날 거야.
    갑순이 연지곤지 찍은 모습처럼 수줍은 달밤에 가장골 재덕이네 참외밭을 
    속절없이 망쳐 놓았던 것 생각날 거야. 
    그리고 또 있어. 
    집에 오는 길에 누런 보름달을 닮아 가는 봉철이네 호박에 구멍을 뚫어 
    오줌을 누고 말뚝을 박았잖아. 
    그 땐 나도 공범이었고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거의 한 번씩은 경험했던 
    일이니깐. 그 날 일은 애교로 봐 줄 수도 있어. 
    하지만 말이야. 너는 유독 지나쳤었어.
    내가 보기엔 너는 달밤이면 서리 못해 안달이 난 놈 같았어.
    그나마 먹을 만큼만 얌전하게 서리하면 몸 어디가 덧나니? 
    너는 한 번 수박밭에 들어가면 밭 전체를 두더지처럼 뒤집었잖아.
    아무리 너그러운 주인이라도 그 때 발각되었다면 우린 그 날이 제삿날이 되었을 
    거야.
    말리는 내가 민망하고 화가 날 정도였으니깐, 주인은 오죽했겠니.
    범인은 범죄 현장을 반드시 다시 간다고 하더라.
    우리도 다음날 두근거림을 가슴에 안았지만 애써 내숭까지 떨며 그 수박밭을 
    지나갔어. 눈에 밟히는 것은 황당 그 자체였지.
    수박밭은 초토화되고 종철이 엄마는 넋을 잃고 밭둑에 앉아 있었지. 
    그런 상황에도 너는 미친놈처럼 히죽히죽 웃고 있더라.
    철면피, 사이코가 별거니, 너 같은 놈이 바로 철면피고 사이코야.
    나는 그래도 크면 달라지겠지, 좋게 생각하기로 했었다. 
    왜냐하면 미우나 고우나 너는 나의 불알친구이니까.
    그리고 너는 공부도 유난히 못해서 담임선생님 도움이 없었다면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을 거야. 
    고 3학년 때 인정 많은 담임선생님 만난 것은 너의 행운이었어. 
    한마디로 용꿈을 꿨지. 헌데 너는 그 용을 무지 실망시켰어. 
    고등학교를 마치고 객지로 나간 너의 소식을 종종 들을 때마다 나도, 
    담임선생님도 몹시 실망했었다. 처음엔 나도 설마 했어.
    그래서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친구에게, 어머니께 너의 소식을 제일 먼저 
    물었는데 벼룩의 삶을 보는 것 같아 무지 실망했었어. 
    벼룩은 사람의 몸에 기생하여 피를 빨아먹고 살잖아.  
    고상하고 지적인 내 입술에서 미친놈이란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개망나니라는 말이 안 나온 게 다행인줄 알아라.
    나는 그 때부터 너에 대한 관심을 끊고 싶었는데 미운 정이 고운 정보다 더 
    무섭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너 같은 녀석을 보고싶어 하고 걱정한 것을 보면 내 마음도 많이 여린가 봐.
    
    지우야. 
    길가는 사람 세워 놓고 무조건 하나님 믿으세요! 하면 사람들은 거부반응을 
    일으키잖아.
    티슈라도 하나 주면서 하나님 믿으라고 하면 티슈처럼 부드러울 거야.
    그래서 말인데 요즘 교회는 상당히 용통성을 발휘하나 봐. 세상 참 좋아졌다.
    모 한국교회에서 전도용으로 나누어준 티슈에서 우연히 봤던 글인데
    내가 약간 각색을 해 봤어.
    명색이 작가 축에 들어 그대로 복사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거든.
    들어 봐, 사람은 태어나면 세 번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데. 
    
    삶의 또 다른 단어는 만남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고, 자라면서 친구를 만나고, 성숙해지면 
    배우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덤으로 네 번째 만남이 있는데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모습도 달라지고, 삶이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만남 속에 귀속되어 있습니다. 
    페르시아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점토를 발견하였는데 아주 좋은 향기가 풍겼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여행객이 물었습니다.
    "아니 흙에서 어떻게 이런 좋은 향기가 날 수 있나요?" 
    점토가 대답하였습니다. 
    "내가 장미꽃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우야, 
    점토의 대답 중에 장미꽃은 하나님이거든. 어떻게 아느냐고?
    사실, 나도 몰라. 하지만 그냥 느낌이 하나님 같아. 
    내가 아직 평신도 신분이니까 심층적인 질문은 삼가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사람들과의 만남은 좋은 향기보다는 나쁜 냄새가 많아. 
    물론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우정과 사랑을 공유하는 친구는 덜해.
    그러나 대부분의 만남은 그리 향기롭지 못하다는 거야.
    미안하지만 나는 너에게서 더욱 고약한 악취를 느꼈었어.
    죽어서 육신이 썩는 냄새보다 살아서 풍기는 악취는 더욱 고약한 법이야.
    너는 버릇 배우라니까 과부집 문고리 빼어 들고 엿장수 부른 녀석이잖아. 
    어머니가, 동네어른들이 제발 품행을 단정히 하라고 수없이 일렀거늘 
    오히려 너는 평생을 못된 짓만 하고 돌아다녔잖아.
    노름, 주색, 절도 그것도 부족해 행실이 나빠 소박당한 다방마담 기둥서방까지 
    했었니? 여자도 웃기지, 연상이었다며.
    그 여자 덕분에 다시 돌아 온 남편하고 시비가 붙어 가슴에 칼 꽂고 
    너 몽달귀됐잖아.
    가만히 생각해봐. 너의 삶이 기구한 게 아니라 진정 기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너의 모친이야.
    2남 4녀 중에 장남은 재재소에서 일하다 젊은 처와 피붙이 어린 자식 덜렁 
    남겨 두고 30대 젊음에 세상 떴지.
    출가외인 딸들도 한결같이 지질이도 못살면서 시집살이 고달프지.
    너도 사십 중반이 되도록 정신 못 차리고 비몽사몽하다 자살했지.
    정작 먼저 죽어야할 너의 모친은 지금 산송장처럼 살고 있어.
    팔순 나이에 자식을, 그것도 대를 이을 아들 둘을 가슴에 묻고 산다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니.
    난 아직도 너의 어머니 절규가 귓전에서 맴돌아. 자식이 뭔지?
    
    "우리 지우, 우리 지우 좀 데려다 주소! 지발."
    
    지우야.
    이제라도 정신 차려. 
    이제 그럴 일도 별로 없겠지만 고향가면 너의 모친 뵙는 것도 내심 괴롭더라. 
    우리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게서 좋은 향기를 풍길 수도, 나쁜 냄새를 
    풍길 수도 있어.
    너는 이제 장미꽃 향기를 만났잖아. 
    나보다 먼저 향기로운 장미꽃을 만난 네가 부럽기도 해.
    아냐, 약 올리는 것 아니야. 나도 산전수전이 모자라 공중전까지 겪고 
    사십 평생을 살아왔어. 
    15시간의 공중전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거야.
    어머니를 다시 만나더라도 버릇 사나운 막내자식으로 살지마.
    나도 더 이상 너 미워하지 않을 거야. 
    장미꽃보다 진한 향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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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저지 포트 리에서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