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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BY 낸시 2004-11-21

'여자하고 북어는 두둘겨야 제맛이 난다' ' 여자는 사흘에 한번씩 맞아야 한다' '매끝에 정이 든다'이런 비슷한 말을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었을 것이다.

나도 어렸을적 이런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남편은 상습적인 폭력남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부부싸움을 하다보면 물리적인 힘이 있는 그는 절제를 못하고 그 힘을 사용한 적이 몇 번 있다.

나는 남편을  열 살 적부터 알아 온 사람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닌 것도, 바르게 살려고 나름대로 애쓰는 사람인 것도 인정한다.

 

결혼하고 이십오년의 세월이 흘렀다.

행복의 외형적인 조건이라면 우리부부는 다 갖추었다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수많은 결혼생활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혼하고 이 년쯤 되었을 때 이사하자고 한다고 남편은 내 따귀를 때렸다.

삼 년 쯤 되었을 때 자기 말을 안 듣고 아이를 야단친다고 내 멱살을 잡고 건너방에서 안방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육년쯤 되었을 때 밥상을 엎는 자기에게 반발해서 내가 들고 있던 그릇을 부엌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고 내 머리채를 잡고 방으로 끌고가며 발길질을 했다.

남편이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내가 기억하는 전부다.

물론 남편은 매번 사과했고 난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사소한 일이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이해하자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다지 속좁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이 사건들이 커다란 장애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남편의 목소리가 커지면 나는 자동적으로 그때 당했던 모멸감이 떠올랐다.

남편을 용서하고 한집에서 계속 같이 살고 있는 나 자신이 바보같고 미워졌다.

평소에 우리는 사이가 좋은 부부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싸움을 하면 극한 상황까지 가서 이혼을 하거나 죽어버려야겠다고까지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고 "내가 널 사랑하는 줄 정말 모르겠느냐?"고 하면서 남편은 답답해 하였다.

나 자신도 스스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나도 남편이 정말로 날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대화가 단절된 부부는 아니다.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들에 대해서 충분히 이야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받은 상처는 대화로도 치료가 되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해결된 것 같기도 하였으나 착각이었다.

둘의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에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음을 발견해야만 했다.

 

난 아들이 중요하다거나 아들을 선호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남편이 딸에게 '여자가...'하면서 여자다운 미덕을 가르치려고 해도 질색하는 사람이다.

마음속으로 굳게 남녀가 평등해야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딸을 이뻐할 수가 없었다.

마음속 깊이 미안해하고 괴로워하면서도 딸을 대하는 마음이 아들을 대하는 마음하고 달랐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딸에게 쏟아붓기도 하였다.

난 교육 받은 여자이고 교묘하게 이런 것을 감출 능력도 있어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나 스스로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딸의 성품이 내가 싫어하는 남편의 성품을 그대로 타고났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내 행동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 처사인지 잘 알고 있었고 혼자서 자책하는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마음속으로 부터 이쁘고 딸은 그렇지 않았다.

 

우리딸은 아마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 내가 아들과 딸을 공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그리 했어도 사람의 마음은 어느 순간에든 들어나고 느껴질 수 있었을테니까...

어쩌면 딸이 오랫동안 도벽을 버리지 못하고 물질에 대한 욕심이 유별났던 것도 엄마로 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것을 이론으로 아는 사람이고 딸을 보면서 그렇구나 생각을 하면서도 내 마음은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모르겠다.

결국 그런 아픔들이 결국 내게 신앙을 갖게 하고 그 안에서 해결되었다고 생각 하지만  우리가 그 먼길을 돌아 올 필요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

또 아무리 신앙으로 치료가 되었다고 해도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음을 보기도 한다.

지금도 딸은 아들보다 어렵다.

키울 때 내가 주지 못한 사랑 때문에 미안해서일게다.

이런 내가 속상하기도 하다.

 

가정폭력의 피해자는 과연 누구일까?

남편은 가해자이고 당한 아내만 피해자였을까?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의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는 피해자가 아닌가?

또 그들의 아이들은?

 

가끔 남편과 둘이 살아 온 지난 이야기들을 하면서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고 잘못된 가르침과 문화 속에서 살아서 엉터리로 알고  있었던 것이 많았다고...

폭력에 대한 것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 문화는 폭력에 관대하고 때로 조장하는 문화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