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가끔 영화를 보다가 본전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주인공들이 작의적인 연기를 한다거나 스토리가 엉성할 때는 물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 진다.
이 물고기 자리는 오랜만에 스크린에 나들이를 한 이미연의 때묻지 않은 연기와
생소하고 조금은 어설픈 남자 주인공 최우제를 보는 신선함이 크다.
별 유난스런 영화적 요소나 화려함이 없이 이미연은 이 영화로 청룡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연기 같지 않은 연기가 보고 싶은 사람에게 다가오는 영화이다.
이제 영화의 서막을 연다.
" 멈출 수 있다면...
사랑이 아니다 "
원제 '물고기 자리'는 사랑이 받아들이지도 거두지 못하는 이들의
별자리를 뜻한다.
3월의 별자리인 물고기자리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사랑의 신 에로스의 신화 속 모습을 상징하는 별자리이기도 하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물고기 자리의 아프로디테는 헤파이스토스의 사랑을
끝내 받아드리지 않고 자신의 사랑인 전쟁의 신 아래스와의 숙명적 사랑을
이루는 여신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자리는 외로움의 꽃이 폭풍처럼 몸부리 치는 언덕배기
같은 곳이다.
영화 "물고기 자리"는 사랑이 시작되는 그 운명적 느낌이 거부할 수 없는
삶이 되는 과정을 쓸쓸한 바다처럼 그린 영화이다.
어느 날 숙명처럼가슴 한 켠에 온; 사람을 향해 눈 멀도록 그리워 하고 사랑을
이루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영화 후반을 후벼 파는 영화이다.
봄 날 진달래 꽃잎처럼 잔잔한 향이 풍기는 음악과 함께 영화
'물고기 자리'는 시작된다.
먼지 쌓인 카페의 간판이 내려지고 sad movie라는 비디오 샵이 자막을 적시고
거기 아름다운 여인 애련(이미연 분)이 등장한다.
그녀의 삶이 외로움이었다면 그녀가 추구하는 현실은 봄 볕을 쬐는 노란 후레지아
같은 순수한 사랑이라는 것을 영화 전반부의 흐름은 얘기하고 있다.
sad cafe라는 비디오 샵을 운영하는 애린은 커다란 어항에 푸른 열대어 한 마리를
키우며 자신의 우울한 사랑을 바라본다.
그녀가 갖지 못한 사랑의 자리는 늘 눈 먼 그리움이 되어 비가 되곤 한다.
애린이 그토록 멈출 수 없는 사랑을 하는 그 사람은 sad movie 비디오 샵 길
건너편 오피스텔에 사는 가수지망생 동석(최우제 분)이다.
그녀가 그의 오피스텔이 보이는 곳에 sad movie라는 비디오 샵을 낸 것이 우연이
아님을 느끼게 하는 장치가 영화 곳곳에 깔려 있다.
그 어느 것도 우연이 아닌 필연의사랑을 찾아가는,그래서 사랑이 멈출 수 없는
삶의 덫이 됨을 그녀의 몸짓으로 느끼게 한다.
어느 날 sad movie에 삶의 깊이가 담긴 프랑스 영화를 좋아하는 남자, 동석이
온다.
애린은 그의 이름과 주소,전화번호를 되묻고 대여한 비디오를 확인한다.
그녀가 그의 흔적을 찾아 sad movie라는 비디오 샵을 차린 것을 그 때까지만 해도
관객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애린(이미연분)은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다.
짧지만 느낌 좋은 대화를 나눈 그녀는 밀린 비디오를 회수해 준다는 친절로 그의
맘을 잡고 영화를 즐기는 취향으로 점점 그와 가까워진다.
그가 찾는 비디오를 복사 분으로 구해주고 또 그의 오피스텔로 찾아가 테잎을
회수하면서 둘은 연인이 될 수도 있다는 섣부른 추측을 하게 한다.
가수 지망생인 동석은 오피스텔에서 음반을 준비하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프랑스 영화를 즐기는 독특한 분위기의 남자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음반도 내지 못하는 우울한 음악인의 길을 가는 동석은
친구같이 편한 애린이 좋아서 비디오 가게에서 자신의 얘기도 나누며 점점
가까워 진다.
그리고 어느 날,애린은 비디오를 회수하러 그의 오피스텔에 갔다가 동석이
사랑하는 여인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의 집을 빠져나온 그녀의 쓸쓸한 표정 뒤로 sad cafe의 외로운 풍경이
멀어진다.
날이 갈수록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화를 기다리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sad movie의 고장 난 tv를 고쳐주고 그 답례로 식사를 하게 된다.
그녀에겐 오랜 세월 기다린 사랑과 함께 하는 첫 데이트였고 그녀의 생일이었다.
애린은 그 날 그에게 선물로 커플 시계를 선물하고 동석의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 그가 들려주는 노래를 듣는다.
애린은 그가 갈망하며 허무해 하는 음반에 대한 꿈을 위로하며 헤어진다.
그 날 이후 그녀는 그에 대한 그리움의 자리를 쏟아지는 빗물에 적시고 그가
사는 길 건너편 오피스텔을 눈 멀도록 바라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밤, 동석이 술에 취해 sad movie를 찾아 온다.
그는 말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절실히 원해도 안되면 그건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동석은 그 날 자신이 만든 데모 테잎을 들고 기획사를 찾아갔다가 그의 음악을
신인 가수의 작곡으로 이름을 바꾸자는 어이 없는 제의를 받는 절망스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의 애인과 카페에서 말다툼까지 하고 난 후 였다.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는그의 고집스러움에 지친 연인은 화를 내며 카페를
나가고 만다.
그녀가 가고 술에 취한 동석은 자신의 얘기를 들어 줄 친구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깊은 밤에 그는 술에 취해 애린을 찾아간다.
그의 처절한 얘기를 들어주며 애린은 동삭을 위로하고 쓸쓸한 그의 잠을 지켜준다.
아침에 잠에서 깬 동석에게 그녀는 오랫동안 벙어리 냉가슴으로 지켜오던 사랑을
고백한다.
애린의 뜻밖의 고백을 들은 동석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자신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음을 얘기 한다.
사랑을 고백 후 여러 날이 흐른다.
그에겐 연락이 없고 잦은 비가 sad movie의 창가를 적신다.
창가에 앉아 그리움을 주체 못하던 그녀는 그를 찾아간다.
그에게 대여한 비디오를 회수한다는 이유를 찾아 간 오피스텔엔 동석의 푸른
남방을 입은 연인이 그녀를 맞이 한다.
애린에 대한 사소한 친절을 이미 들은 애인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당혹스런
그는 비디오를 주고 애린을 보낸다.
그 후 지쳐가는 자신의 사랑에 절망하는 그녀는 그에게 수없이 전화를 하고 그가
간절히 원하는 음반을 낼 수 있도록 기획사를 찾는다.
또 다시 찾아 간 그의 오피스텔, 하지만 그는 싸늘하게 그녀를 보낸다.
그의 생일에 보낸 꽃도 그녀의 식사 초대도 무참하게 거절 당한 그녀는
철저히 거부 당한 사랑을 껴안고 그녀는 점점 미쳐간다.
그와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며 키운 노란 열대어를 수족관에서 꺼내 죽이며
그녀는 애린은 그를 증오하는 자신을 본다.
사랑과 증오는 같은 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동석은 기획사로부터 음반 제의를 받아 곡을 만들고 작업을 하는 일에
몰두하고 린에 대한 흔적을 지우려 한다.
이 영화의 반전은 여기서 부터다.
그가 음반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동안 애린은 그의 오피스텔 키를 만들어 그의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의 체취를 느끼며 집 안을 청소하고 침대 포를 바꾸고 그의 비디오를 본다.
또 그의 애인이 입었던 그의 옷을 입고 그와 나누었던 얘기들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런 행복도 오래 가지 못한다.
동석의 음반을 부탁한 사람이 애린이었다는 것을 안 그는 한 밤중에 sad movie를
찾아가 그녀를 다그치고 내 인생에 끼어 들지 말라고 소리를 친다.
애린도 이미 그에 대한 사랑이 미친 그리움으로 추락하던 터라 음반을 원했던
것은 동석 자신이라며 날카로운 말을 내뱉는다.
애린의 말에 자존심이 상한 동석은 그녀의 뺨을 때린다.
처절한 사랑을 버리지 못하는 애린은 어느 날 그의 애인이 자고 있는
오피스텔을 찾아간다.
잠 결에 기척을 들은 그의 애인은 그녀를 보고 소스라치고 진정하라고 얘기하며
뒤걸음 치다가 꽃병을 떨어뜨린다.
조각 난 꽃병을 맨발로 밟으며 그의 애인에게 다가오는 애린,
발바닥에 피가 흐르고 그녀는 조각 난 유리를 손으로 꼭 쥐고 피 흘리는 손으로
그의 애인을 향해 가는 그녀의 처철한 말 한 마디.
" 나는 동석이가 아니면 안돼 "
일이 터질 것만 같은 긴장이 흐르고 잠시 후 오피스텔 문이 열린다.
애린의 모습을 본 동석은 그녀를 밀어 제치고 미쳤다고 말한다.
애린은 가엾은 새처럼 쓰러져 힘없이 말한다.
" 나도 멈추고 싶어. 그런데 내 뜻대로 안돼 "
애린이 입원한 병원 벤취에 앉은 동석과 그의 연인.
그의 여자가 말 한다.
한 사람에게 그 어떤 사람이 그렇게 절대적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충격이라고.
자신의 얇팍한 사랑을 되돌아 본 그의 여자는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녀와 헤어지고 병실에 온 동석은 애린에게 간절히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면 제발 떠나달라고.
시간이 흐르고 동석은 친구의 카페에 가서 몇 년전 찍은 자신의 무대 비디오를
본다.
비디오를 보던 그가 갑자기 놀라며 화면을 되돌린다.
몇 년전 비디오 속에 자신을 지켜보단 한 여인을 발견한다.
바로 애린이었다.P>
그녀가 아주 오랫동안 자신을 기다리고 사랑해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sad movie를 찾아가지만 문은 닫혔고 그녀도 없다.
그런 그의 앞에 한 남자가 온다.
애린을 늘 등 뒤에서 지켜보고 사랑을 간직한 그는 애린의 남동생 친구다.
그 또한 애린의 사랑을 얻지 못해 동질의 아픔을 아는 남자인 것이다.
그녀가 사라지고 sad movie의 애린을 닯은 푸른 열대어도 죽고 적막이 흐른다.
어두운 음악 저편에 서서히 다가오는 슬픈 자막.
애린은 동석의 마지막 소원대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살아 있는 한 사랑을 끝낼 수 없는 자신을 놓아주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처절한 현실이 견딜 수 없는 덫이 되고 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이 죽음이었음을 그녀는 안 것이다.
그리고 멈출 수 없는 잔인한 그리움도 그녀는 함께 가져 간 것이다.
이 영화는 애린의 비디오 샵처럼 sad movie이다.
줄거리를 보면 흔한 연애 소설같지만 영화를 이끄는 힘은 그들의 사랑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죽을 것 같은 젊은 날들을 지나 온 사람들이면 같이 아파할
영화이기에 시간이 지나도 잔잔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한 번쯤 격정처럼 다가오는 사랑은 미치도록 아픈 것이다.
그 사랑을 이루지 못해 몸부림 치고 절망의 끝까지 가 본 후에야 비로소
사랑을 체념하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때로는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거부 당하는 혼자만의 사랑은
그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는 무서운 덫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랑의 얼굴은 그리움과 증오의 칼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