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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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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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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맛을 내는데는 마늘이 최고...


BY ns... 2004-10-16

결혼 전 여편은 부엌 일이라면 질색이었다.

아마도 부엌 일은 여자일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었을게다.

고등학교 다닐 때 여편은 가정 과목도 싫었다.

여학교에서만 의무적으로 배운다는 것이 못마땅해서였을게다.

그래서 대학교 입시를 위해 샀던 가정 참고서 마저 짝궁에게 주어버렸다.

가정 참고서를 바라보는 것 마저 싫어서...

그렇게 여편은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그 만큼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런 여편이 용감하게 결혼이라는 것을 하였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 만큼 여자가 할 일에 대한 고정 관념이 많은 일도 없건만 사랑이라는 것에 눈이 멀어 그만 함정인줄도 모르고 빠지고 말았다.

밥은 전기밥솥이 해결해 주었다.

그런데 반찬이라는 것이 그리 쉽게 되지 않았다.

둘이 맞벌이를 하는지라 새벽 4시부터 부엌에 들어가 식사준비라는 것을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만들어 지는 것이 없다.

이불 속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묻는다.

"여보, 부엌에 나간지 두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언제 밥 줘?"

"나도 몰라, 이 그릇 들어서 저기다 놓고 저 그릇 들어서 여기다 놓고, 들었다 놓았다 하긴 하는데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

그렇게 낑낑거리며 결혼 전 엄마가 차려주던 밥상 모양을 흉내내어 보았다.

모양은 그럴 듯 한데 맛은 그래도 영 아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러다 간신히 호박나물 맛은 엄마가 해주던 맛과 비슷하게 되었다. 아참, 시금치 무침도 비스무리 하게 되었다.

하지만 허구헌날 호박나물과 시금치나물만 상에 올리는 것도 그렇다.

오월에 결혼해서 겨울이 되었는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호박나물과 시금치나물만 상에 올리자니 남편에게 쬐끔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서 여편은 같이 근무하는 직장 동료에게 물었다.

음식을 맛있게 잘 한다고 소문이 난 여자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음식이 맛있어요?"

"마늘을 많이 넣으면 맛있어요. 마늘을 많이 넣어 보세요."

"아, 그래요, 고마워요. 가르쳐주셔서..."

여편은 자신이 생겼다.

마늘을 많이 넣는 것이라면 문제가 없다.

시골에서 친정어머니가 농사를 지어 막내딸이라고 특별히 이것저것 가져다 준 것 중에 마늘은 넉넉히 들어 있었다.

요리책을 이리저리 뒤적이다 여편은 만두를 해보기로 했다.

결혼 전 언니집에 놀러가서 언니가 하는 것을 구경한 적이 있었기에 만두라면 아마 해 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토요일 남편이랑 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만두 속에 넣을 것을 사다 여편과 남편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만두를 빚었다.

허니문 베이비를 가진 여편은 배가 남산만 했지만 남편과 둘이 사는 단칸방에 쪼그려 앉아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만두를 빚었다.

남편이 방망이로 밀어 준 밀가루 반죽을 주전자 뚜껑으로 꾹 눌어 동그랗게 떠 낸 후 그 속에 만두속을 넣고 접어 가장가리를 꾹꾹 눌러 붙이고, 다시 끝을 모아 동그랗게 빚은 만두는 요리책 속의 만두에 비해 손색이 없을 만큼 예쁘게 되었다.

석유곤로 위에 올라 앉은 찜통에서는 이미 김이 오르고 있었다.

찜통에 만두를 넣고 열심히 쪄내었다.

냉장고는 없는 살림살이였지만 겨울이니 좀 넉넉히 해두어도 될 것 같아 제법 많이 만들었다.

안집 윤종이네도 나누어 줄 요량이었다.

살림에 서툰 여편을 위해 연탄불도 갈아주고 빨래거리도 몰래 가져다 빨아서 개켜주고 윤종이 엄마는 친정 엄마처럼, 친정 언니처럼 여편을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이참에 신세도 갚을겸, 솜씨 자랑도 할겸, 여편은 남산만한 배를 안고 뒤뚱거리며 열심히 만두를 빚어 찜통에 쪄냈다.

그리하여 김이 솔솔나는 먹음직스런 만두가 완성되었다.

아직 쪄낼 것이 많이 있긴 하지만 우선 처음 찐 것을 접시에 예쁘게 담아 남편에게 들고 갔다.

"자,  아~ 해봐!"

여편은 남편의 입에 먹음직한 만두를 넣어주며 뿌듯함을 느꼈다.

남편의 큼직한 입이 사랑스럽기도 하였다.

남편 역시 같이 낑낑대며 빚은 만두라서 더욱 맛있게 보여 입을 크게 벌리고 여편이 주는 만두를 받아 덥썩 깨물었다.

여편은 군침을 삼키며 남편의 감탄사를 기다렸다.

자기도 먹고 싶지만 우선 하늘같은 남편에게 맛보는 기쁨을 주고 자기는 남편의 감탄과 칭찬을 즐기고 나서 먹어도 늦지 않을테니까...

"어, 무슨 만두 맛이 이래?"

남편의 입에선 여편이 기대했던 감탄사가 아닌 전혀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아니, 왜?"

여편도 서둘러 만두 하나를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번지는 노리끼한 냄새...

음식 맛을 내는 데는 마늘이 최고라고 해서 마늘을 많이 넣었는데...

사랑하는 남편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어서 정말로 마늘을 아끼지 않고 많이많이 넣었는데...

늙은 친정 부모가 아픈 허리 쉬어가며 애써 농사 지은 마늘도 아까운 줄 모르고 많이많이 넣었는데...

모처럼 윤종이 엄마에게 자랑도 하고 신세도 갚으려고 온갖 정성을 다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