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99

<종묘공원의 추석>


BY 무진당 2004-10-10

<종묘공원의 추석 >

추석을 이틀 앞둔 일요일.
창경궁에서 영조대 궁중 연회를 재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길을 나섰다.
'밝은 정치를 하는 곳'이란 명정전(明政殿)에는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고 회랑을 따라 빙 둘러 앉은 사람들 사이로 가벼운
흥분감이 흐르고 있었다.
왕만이 관람했던 연회를 왕이 아닌 신분으로 관람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약간 상기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신하들이 왕에게 엎드려 하례를 드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연회는
색동옷 입은 무녀들의 춤으로 이어졌고 깊어지는 가을빛이 무리 속을
헤집고 다녔다.
왕은 병풍이 둘러쳐진 명정전 앞에 앉아 가을 햇살과 희롱하는 무희들의
몸짓을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처 붉은 빛을 머금지 못한 후원의 나무들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요일 오후였다.
화려한 축제가 진행되는 도중에, 전혀 화려한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나는 무희들의 아리따운 몸짓을 뒤로 하고 연회장을 빠져 나왔다.
풍요로워야 할 한가위에 결코 넉넉해질 수 없었던 내게, 연회관람은
오히려 외로움만 더하게 했다.
어디 그늘에라도 가서 앉고 싶었는데 넓은 고궁안에 내가 앉을만한
쉼터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육교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종묘쪽으로 향했다.
역대 조선의 왕들의 영혼이 전부 모셔져 있는 종묘는 동양의
파르테논신전이라 불리울만큼 장중하고 고즈녁하기 그지없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사소한 부스럭거림마져도 크게 울릴 정도로
정적이 감돌았다.
그런데 그 무거운 침묵의 공간 속에 낯선 연회가락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스피커 때문이었다. 창경궁에서 진행되는 행사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형으로 진행되고 있는 이승의 향연을 저승세계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종묘의 영혼들도 어쩔 수 없이 감상해야 될 것이다.
빌어 먹어도 이승이 낫다 했던가.
굳게 닫힌 제실(祭室)속의 왕들은 아무리 심기가 불편해도
이승의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없었다.
창경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낯설음과 생경함이 종묘에 오자 느껴졌다.
종묘에는 어울리지 않는 노랫가락을 듣는 수많은 영혼들의 불편한 심기가 보이는 것 같았다


소리치고 싶으나 소리칠 수 없는 영혼들을 뒤로 하고,
종로쪽으로 향한 종묘문을 나서자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이 그득했다.
하나같이 낡고 남루한 옷을 걸친 노인들은 옷보다 더 삵아내리고
닳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 노인들의 모습은 마치 며칠동안
냉장고에 넣어둔 말라 비틀어진 식은밥덩이 같았다.
나무 의자에 앉아 바둑을 두거나 장기를 두는 사람 곁에는 의례히
구경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 복잡한 사람들 사이에서 붓글씨로 큼지막하게 휘갈겨 쓴 한문 경구를
바닥에 깔아놓고 파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유행이 지난 한자책과 돗보기 안경,
그리고 쑥뜸과 지압맛사지기를 파는 노점상도 있었다.
걸을 때마다 어깨가 치일 정도로 그득한 노인들...
걸리버여행기에
소인왕국과 대인왕국이 있다면 종묘공원에는 노인왕국이 있었다.
공원 조경을 위해 군데군데 심어놓은 나무들이 가려질 정도로
노인왕국에는 노인들이 많았다.

종묘 입구에서 종로 3가쪽으로 가기 위해 가로질러 가는 시간이 자꾸만 더뎌졌다.
더 이상 바쁠 것이 없이 이승에서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
의자 끝에 걸터 앉아 지팡이에 두 손을 올린 채 턱을 괴고 있는 노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나무 그늘에 신문지를 깔고 앉은 노인.
그 노인들은 바짝 붙어 앉은 옆사람들과도 대화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멀거니 앞만 보고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로 그득한데도 생명있는 존재의 당당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사물처럼 시간을 견디며 있을 뿐이었다.
긴 인생을 견뎌온 학습된 인내심으로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시원한 동동주 한잔에 천 원'이라 적힌 포장마차와 떡볶기,
순대를 파는 행상을 지나 요란한 마이크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 보니 반원형극장이 나왔다.
'능인예술단'이라는 플랭카드가 적힌 무대에서 짙은 화장을
한 중년의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스탠드에는
노인들이 그득하게 앉아 있었다.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들이었다.
눈을 찌르는 햇살때문에 인상 쓴 사람의 얼굴과,
세월이 양 미간사이에 만든 '내 천(川)'자 때문에 찌뿌린
사람의 표정이 쉽게 구분되지 않았다.
오후의 태양빛이 강렬하게 내리쬐어도 움직임조차 없는 노인들은
마치 객석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동원된 듯 심드렁해보였다.
이 곳이 아니면 갈곳이 없는 노인들...
몇 사람이 무대앞으로
나와 가수의 노래에 따라 춤을 추며 몸을 느리게 움직였다.
한때는 굵은 팔뚝으로 가정을 감싸고 가족의 울타리가 되었을 그들.
그들은 지금 그 팔뚝으로 속수무책으로 달려드는 시간의 무료함과
단순함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얼굴 속에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고 몇 년 후의 나의 모습이 있었다.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이나 노래가락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
모두 무덤덤해보였다.
다만 나만이 무덤덤한 그들의 모습을 무덤덤하게 보지 못할 뿐이었다.
결코 무덤덤하게 바라볼 수 없는 미래의 나의 모습을 뒤로 하고
파고다 공원 쪽으로 향했다.
길가에는 노인들의 가난한 주머니를 겨냥한 행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삐에르가르뎅 무조건 6천원, 지갑 2천원, 돗보기 긴급처분 2천원,
소가죽벨트 2천원, 최고급 싸롱화 특별쎄일 1만 5천원...
결코 특별하지도, 긴급하지도 않는 가난한 물품들이었다.
아니 어쩌면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 가난한 노인들에게는
그 물품들이 아주 특별하거나 긴급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애 마지막으로 사 보는 물건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종묘공원에서 종로지구대가 있는 탑골공원까지 걸어가는 동안
초가을의 햇살이 제법 따가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앞둔 자의 마지막 몸부림 같았다.
그 열기 사이로 무좀약, 등산화, 강력 접착제, 핸드폰 밧데리,
고급 손수건 등등의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라졌다.
어떤 고급스런 물건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이 그 거리에 놓여 있었다.

내일 모레가 한가위였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날, 한가위.
그 풍족한 날에 가슴 서늘한 사람없이 모두 다 행복하기를...
해가 떨어지는 탑골공원을 돌아 보며 나는 그렇게 축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