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사랑했기에 자주 보고 싶어요.'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가 아버지께 하신 말씀이다.
우리 자매는 그 말을 듣고 하하 웃고 말았지만 아버지는 그 말에 감동하셔서
기분이 아주 좋으시다.
잘 해보셔요...
짓꿋은 나는 아버지를 놀린다.
어제 할머니 산소에서 화장실을 다녀오신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까 내가 너무 늙었다.'
속상해 하신다.
팔십칠세의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다.
'참내... 거 좀 좋은 거울을 갖다 놓지 않구서...
거울이 잘못된거라구...여자 화장실에 다녀와 보실라우?
거기는 좋은 거울이 있더구만...'
아버지는 결국 하하 웃고 마신다.
이따금 지나가다가 거울을 보게 되었을때 저게 누군가 하고 깜짝 놀라는
일이 우리라고 없겠는가...
이렇게 늙어도 서로 사랑해주고 아끼는 부부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늙을수록 이 세상에 너밖에 없다는 마음을 가질수 있다면 성공한 부부상이다.
나때문에 저렇게 늙었구나...하면 금상첨화이다.
'당신이 가면 내가 어찌 살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부부의 정을 느낀다.
없으면 못살것 같은 마음이 늙어갈수록 더 진실인것 같다.
저 사람은 내가 없으면 못살아...
이것이 늙어가면서 사는 기운을 북돋우는 이유일것이다.
부부가 진실로 살맛이란 서로 필요로 하고 소중함을 인정하는것이 아닐까.
소중함...
내 자식을 낳고 키운 아내에 대한 소중함...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평생 애쓴 남편에 대한 소중함...
내 자식의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고 내 자식의 아버지이기 때문이 아닌
내 반려자이기 때문에 더 소중해야 한다.
함께 늙어간다는것...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것...
젊은 시절에 느끼지 못한 측은 지심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지난 세월의
상대방의 잘못은 잊고 상대방의 공로를 하나 하나 생각해내면서 마음을
추스리는 작업도 필요하다.
그것은 노력이다.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삼십삼년전 결혼식 주례사가 가끔 생각난다.
'이제부터의 사랑은 연애시절의 사랑과 다릅니다.
이제부터는 노력해야 사랑이 이어질수 있습니다.'
그 주례사는 명언이었다.
그 말이 명언이라는것은 젊었을때는 미처 몰랐다.
사랑은 거저 얻어 지는것인줄 알았더랬다.
언젠가 나는 내게 투정하는 남편에게 당당하게 말했었다.
'그래서...? 나와 결혼한 다음에 잃은것이 더 많은가 얻은것이 더 많은가
그것을 생각해 보고 잃은것이 더 많으면 말하라구...물러나 줄테니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남편은 얻은것이 더 많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내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야만 했다.
자칫하면 밀려나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때로는 친절과 때로는 협박이 필요했다.
갖은 수단을 다 쓰면서 지켜온 자리다.
부부의 자리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것은 아니다.
오래동안 하나하나씩 차곡차곡 쌓아져야만 한다.
하나라도 비뚜로 놓인 자리가 있으면 언제고 표시가 나서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쌓아온 것들에 대한 확신이 없다.
노력이라는 주례사를 돌이켜보면서 아직도 노력해야 할부분이
남아있음을 절감한다.
삼십삼년을 함께 살았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세월을 함께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게 될지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부모님처럼 팔십이 넘으셔도 사랑한다는 말을 나눌수 있는 부부이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