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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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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강태공과 사고뭉치의 신혼일기


BY 만년소녀 2004-10-08

 

 

경상도 남자와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접고

신랑을 만나 5개월만에 결혼에 골인한 것이

6년전 9월12일이었답니다.

이 남자

유머러스하고 말도 잘하고

다정해보였거든요.

그 모든 것에 제 눈에 씌인 콩깍지 때문이란걸

결혼하고 얼마 안되어 알 수 있었답니다.

결혼하고 내 여자다 싶어서인지

본색을 드러내더군요.

정말 말로만 듣던 경상도 남자가 되어 버린거에요.

퇴근해선

“밥줘”

“자자”

이말밖에 할말이 없는 사람 같더군요.

알콩달콩 깨소금 쏟아지는 신혼생활을 꿈꿨던 저는

너무나 확 달라진 남편에 대한

서운한 맘에 혼자서 눈물짓곤 했었어요.

게다가 결혼하고 일주일만에

탕수육 한다고 설치다가

기름을 엎어버리는 바람에

다리와 팔에 화상을 입어서

한달은 아파서 고생하고

한달은 가려워서 고생 무지하게

했거든요.

밤에도 아픔과 가려움에 잠을 설치기

일쑤였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서 코를 고는

신랑을 보면 더욱 괴롭고 아픈것 같았답니다.

그리곤 좀 살만하다 했더니

옆집 아기 안고 계단을 내려가다가

다리를 삐끗ㅜ.ㅜ

우당탕탕 굴렀는데

아기를 보호하려는 일념에 온몸으로

아기를 감싸곤 저만 다친거에요.

다행히도 아기는 털끝하나 안다쳤지만

전 다시 다리에 깁스를 하고 한달을

지내야만 했답니다.

저 정말 칠칠치 못하죠?ㅠ.ㅠ

깁스 풀고는 한달쯤 지나고 나선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입덧이 시작됐죠.

한번 시작한 입덧은 끝날 줄을 몰랐고

아기 낳는날까지도 토해야 할정도로

매일 토하고 어지럽고

허리, 다리, 배 할것없이 아프고

유난스런 임신기간을 보냈어요.

아기를 10월4일에 낳았는데

우리 아들이 머리가 유난히 커서인지

몹시 고생했고

분만실에서 나와 입원실에서

거울을 봤는데 헉@.@

양쪽 눈에서 피가 흐르더라구요 

눈이 충혈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

공포영화에 나오는 빨간눈이었어요.

눈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도 한달 걸렸어요.

한여름을 만삭으로 보내면서

더위에 고생도 많이 했구요.

아기 낳았는데

한번도 누워서 혼자 놀아본적이 없을 정도로

별났답니다.

계속 안고 서서 돌아다녀 주어야 했어요.

분유도 조금만 식으면 안먹어서

얼른 달려가 데워와서 먹여야지만

지붕이 날아갈 듯한 울음이 잦아들었답니다.

그것도 조금 늦어지면 먹지도 않고

울기만 했어요.

입원도 세번이나 했을 정도로 몸이 약했구요.

그러면 제가 화상으로 고생하고

다리 부러져 고생하고

임신해서 입덧으로 고생하고

아기 키우는동안

우리 신랑은 뭐했을까요?

모두가 알아주는 강태공인 신랑은

주말이면 낚시 다니기 바빴죠.

평일에는 퇴근하면 한창 유행인 스타*하기 바빴고요.

저는 제발 게임좀 그만하고

낚시좀 가끔씩 다니라고 숱하게 얘기했지만

총각때 습관을 버리게 하기엔 역부족이었어요.

아기를 낳고 친정에서 몸조리중이었는데

일주일만에 온 신랑이 글쎄

옷부터 갈아입고 낚시를 가는거에요.

친정엄마가 가게를 하셨기 때문에

낮에는 저혼자 아기를 봐야 해서

몸조리도 제대로 못했는데

낚시한다고 나가는 신랑 뒷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저도 모르게 비오듯 흘러내리더군요.

착한 아내가 되고 싶었는데

이젠 더 이상 안되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였어요.

제가 악녀가 되기로 작심한것 말예요.

저희 시아버님이 어머님께

참 무뚝뚝하게 하시는데

이대로 수십년 흐르면

울 신랑이 딱 그렇게 되겠더라구요.

어머님이 아버님께 평생 순종만 하셨대요.

전 재밌게 살고 싶었거든요.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었구요.

몇년동안 전쟁했어요

선생이 학생 가르치듯이

하나하나 가르쳤구요.

여자 아끼는 법을 전혀 모르더군요.

지금요?

출근할땐 반드시 뽀뽀를 하고

나가서 수시로 문자 보내고

들어와선 꼭 안아주고

휴일이면 아이 데리고 함께 영화를 봅니다.

낚시 갈땐 저를 꼭 데리고 가려 하구요

헬스도 같이 끊어서 함께 다니고 있어요.

한약 챙겨주고 커피 타주고 설거지 해주는건 기본이죠.

물론 숱한 전쟁에서 제가 이긴 탓이지만

저흰 지금이 어느때보다 신혼같답니다.

전쟁을 피하자고 참고 살았다면

신혼때의 신랑모습이 계속 되었을거라고 생각해요.

잘해줄땐 잘해주고

서운한 일이 있을땐

제가 바라는걸 당당하게 얘기하고

제 자신을 끊임없이 가꿔나간결과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한지 6년...

지금은 시부모님을 저희 집에 모시고 와서

산지 2년정도 되었네요.

시부모님께 잘해드리고

시동생, 시누이에게 항상 신경쓰고 챙겨주니까

더욱 고마워하고 잘해주는 것 같아요.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는 신혼기간...

지금부터 평생을 보상받는 기분으로

신혼처럼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