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다음날 시누이 집에서 모임이 있었다.
병이 깊어가는 시누이 남편의 병문안겸 새로 이사간 집의 집들이였다.
추석은 우리집에서 아들들만의 모임이었지만 일가 모두의 모임이라는 의미를
시누이가 부여해왔다.
친정에 남편과 들렸다가 남편을 지하철을 태워서 시누이집으로 보냈다.
나는 요양소에 계신 엄마를 뵈러 가야한다는 명목이었다.
저녁때가 되었다.
데릴러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망서렸다.
보나마나 술취한 남편의 설교가 이어지고 있을건 뻔하고 모두들 남편의 일생에
대해서 또다시 경청하는 분위기일것이다.
그의 큰목소리를 또 얼마나 자랑하고 있을까...
그의 일생은 항상 극적인 테마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늘 하던 대로 눈물바람이 일어나겠지...
왠 한들은 그리도 많은지...
한없는 집은 없겠지만....
전화를 해보았다.
'당신 없어도 너무 재미있다.'
요런.....
아들에게 아버지를 네가 좀 맡아서 모셔다 드리라고 하려고 전화하니
아들도 이미 술을 먹고 있었다.
하는수 없이 시누이집으로 향했다.
일산에서도 한참 들어가는 끄트머리에 있는 아파트였다.
뜻밖의 분위기였다.
목소리가 가장 큰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었다.
아들의 목소리도 아버지 못지않게 크다.
오육십대는 이미 뒷전이었다.
삼십대가 주도권을 잡고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들은 깔깔대고 웃기도 하고 공감하며 손뼉을 치기도 한다.
거실 바닥 저만치에 앉아있는 오육십대는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따라 웃으며 재미있어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다.
손주들의 재롱에 웃기도 하며 그들 나름대로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외숙모 할머니라며 나를 보고 반기는 조카손녀가 너무 귀엽다.
다른 집 모임같으다.
많이도 변했다.
세대교체가 된것이다.
주도권은 아들이 쥐고 있었다.
아들의 사회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모두 경청하는 분위기다.
아들이 만원짜리 열장을 몰래 내손에 집혀준다.
'아버지랑 싸우지 말고 살아.'
그건 십만원으론 좀 약하다고 농담을 했다.
모두 대리운전을 불러서 헤어진다.
남편을 태우고 돌아오는 길에 길을 잘못들어서 한참을 헤맸다.
초행의 밤운전은 힘이 들었다.
다른때 같으면 불같이 화를 낼 남편이 조용하다.
평상시의 남편이 아니다.
'가다보면 길이 나오겠지...그냥 쭉 가봐.'
이게 전부다.
'왜 이렇게 길은 깜깜한거야.'
내가 짜증을 냈다.
'그러게...'
이게 누군가....
딴 남자를 옆에 태운것은 아닐까...
아들이 준 십만원을 남편에게 내밀었다.
'아들이 당신 드리래요.'
너그러워진 참에 한수 더 인심쓰자...
주도권을 아들들 세대로 넘긴 상으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