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올 봄에 사업실패로 집이 경매로 넘어가고 비좁은 지금의 집으로 와서 처음 맞는 추석이네.
시댁에도 친정에도 가지 못하고 둘만의 명절을 맞은 것이 3년 째가 되었어.
어떡하든 올해는 빚 청산하고 떳떳하게 처가에 데려다 주고 싶었는데 올해도 둘만의 쓸쓸한 명절을 보내야 할 것 같아.
올해 들어 유난히 힘들어 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미어지고 미안해서, 당신이 잠든 틈에 혼자 멍하니 당신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안스러운 마음에 눈물 짓곤 하지.
여보
결혼한 지 8년이 되도록 아이도 없고, 사업이라고 괜히 해서 당신에게 짐만 지우고, 그래도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내조해 주는 당신이 있기에 힘은 나지만,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 해가 갈 수록 고단해져만 가게 만든 죄책감에 당신에게는 정말 면목이 없어.
이럴 때 아이라도 있더라면 삶의 애착이라도 더 생겨 살 맛이라도 느꼈을 텐데말야.
늘 내 앞에서 밝은 모습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당신의 모습......
당신 앞에서는 함께 웃고 하지만 밤만 되면 괴로워하지, 당신을 고생시키는 죄책감에.
여보
유난히 눈물이 많은 당신이 가끔 "고생하는 당신이 안쓰러워"하며 눈물 지을 땐
차라리 빚으로 고생시키는 남편을 원망하고 악다구니라도 써주는 편이 마음 편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그래야 조금이나마 고생시키는 당신에게 덜 미안할 것 같거든.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들 하잖아.
여보
처음 당신을 만나던 때가 생각나.
그 때는 내가 더벅머리에 그림을 그리는 아주 가난뱅이 무명화가였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게 당신은 순수하게 다가와 나를 선택해 주었지.
친정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했지만 그래도 8년이란 세월은 행복했던 것 같아.
사업실패만 아니었어도 아쉬운 것 없이 남들처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말야.
생일이고 결혼기념일이고 한번 챙긴 적 없어도 당신은 모든 걸 이해해 주었지.
결혼을 해서 책임감에 붓을 꺾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당신과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여보
내년 1년만 참자.
내년 1년만 고생해서 빚 청산하고 다시 출발하자.
비록 나이는 많지만 애도 갖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자.
이혼률이 급증하고 빚으로 인한 가정파단이 늘고 있다고 매스컴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잘 버텨왔잖아.
인내해 주고 밝은 웃음으로 남편을 위로하려고 애쓰는 당신이 있어 힘이 나.
여보
못난 남편이지만 나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아주는 당신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
여느 주부들처럼 악다구니는 쓰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자리를 지키며 남편 뒷바라지를 위해 애쓰는 당신에게
하루하도 빨리 예전으로 원상복귀 시켜 아이도 갖고 평범한 삶으로 돌려주도록 할게.
여보
우리 힘내자.
늘 행복한 꿈만 꾸고......
영원히 당신만을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