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고운 9월의 하늘이다. 흰색과 하늘색의 어우름이 마냥 바라봐도 기분좋은 청명한 하늘아래 때 벗은 삶은 빨래는 콧노래 부르는 나의 손에서 유난히 반짝거리며 너울너울 춤추고 있다. 산행후 무겁고 피곤했을 몸은 오늘도 어김없이 폰의 알림소리에 벌떡 일어나 덜뜬 눈 부벼가며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한다. 어제 맨 배낭의 무게가 조금은 무리였을까 약간의 허리통증 외에 아무이상 없음을 확인하고는 집을 나선다. 그간 알게 모르게 쌓아왔던 체력단련이 어제의 산행에 여실히 증명되었던 하루... 가게 일을 하며 한달에 한번 정도의 산행으로 산행후 몸살을 꽤나 앓았던 지난 겨울에 비해 너무나 가벼워진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굴 위한 산행이던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살면서 가장 중히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부와 명예, 행복만이 과연 그 울타리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까 .. 나를 차치하고 남편과 자식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접기로 했다. 물론 내가 우선이라 하여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는다. 내 몸이 건강해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며 돈들여 먹는 몇 재의 보약보다 귀한 산으로의 여행을 택하였음에 하냥 흡족할 뿐이다. 처음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하며 도전했던 새벽운동이 밑바탕이 되어 아주 쉽게 올랐던 다섯시간의 응봉산행.. 물론 지난달 무리하며 다녀왔던 백두대간의 10시간 산행에 비하면 새발의 피겠지만 예전 10여 평의 가게안에 묶여 있으면서 월중행사처럼 다녀왔던 산행 이었다면 분명 뼈와 살이 앓는 통증을 유발했을것이다. 온천욕을 함께한다는 응봉산행에 합류하며 솔향내 그득한 산속으로의 출발은 회원들의 삼삼오오 재잘거림과 함께 아주 가벼웁게 시작이 되었다. 10월부터 송이축제가 시작된다는 울진군청에서는 신선처럼 맑은공기 마셔가며 등산객들을 체크하는 직원들의 감시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울진소나무 태고의 신비를 감추고 있는 듯 군락을 이루고 있는 소나무는 일명 금강송이라고도 불리워지며 반만년의 금수강산을 지켜오고 있었다. 쭉쭉 뻗어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며 하늘향해 솟아 있는 나무들의 형형색색 각기 다른 나무색은 무심코 지나쳐 왔던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결결마다 다른모습으로 생긴 나무를 보면서 우리들의 얼굴이 각양각색이듯 나무 하나하나 다름을 새삼 느껴 본다. 풍상을 겪으면서도 끄떡없이 초연하게 버티어 온 결고운 나무들과 흔적남긴 골 패인 나무들, 힘없이 스러져 아슬아슬 쓰러질것 같은 나무, 뿌리채 패어 이미 고사 되어 가고 있는 나무들, 아예 길게 누워 죽은듯 쓰러져 있으면서도 살아 숨쉬어 새 가지를 잉태하고 있는 나무들... 응봉산의 소나무가 전체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수종의 나무들과 어우러져 솔향으로 산향을 장악하는 늠름한 기상에 절로 고개 수그려지는 산임을 각인 시킨다. 아이들의 유아시절 늘 부르던 노래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린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그 산 무너지겠네 ...' 멋모르고 부르는 아이들에게 나무의 중요성을 일깨우게 하는 노래라며 세세히 설명했던 자상했던 엄마의 자리, 그렇게 아이들과 아기자기 이야기 나누며 지냈던 나의 자리가 어느새 있는듯 없는듯한 자리로 느껴지는 중년의 나이로 변해있음을 실감하면서 그리움이 물 밀려오듯 밀려온다. 세월 흘러도 변함없이 나무는 그리 자리 매김질 하면서 산을 이룬다. 무수한 나무뿌리가 얼기설기 감겨 산망을 쳐놓으면서 무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종의 나무로 이루어진 거대한 산 앞에 힘없는 미물 인간들의 자연훼손은 어떠한 보상으로 갚을수 있을까..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새'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린다는 옛선조들의 노랫말 속에 나라의 기강이 튼튼함을 보여주는 것처럼 산에서 태어난 나무는 몇백년동안 뿌리 내리며 요지부동 거친풍파 속에서도 끄떡없는 거대한 힘과 지혜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있다. 한수 한수 배우는 삶의 덕목이요 지혜인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정도로 아름드리 서있는 응봉산의 소나무는 우리의 토종 소나무의 원형이란다. 금강송 또는 춘양목이라도 일컬어지고 있는 소나무 아래 심마니의 눈에도 보일듯 말듯한 산삼과도 같은 송이버섯... 비록 보지도 캐지도 말라 했던 인솔자의 말이였지만 두 개의 송이가 회원의 눈에 띄어 순간의 양심을 응봉산에 걸어두고, 로또당첨된 듯 들뜬마음으로 그녀의 손아귀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굴러온 황금을 어찌 마다하랴.. 일부러 송이채취를 한 것도 아니고 잠시 쉬는 동안 눈에 뜨였던 송이를 제 아무리 양심맨이라 할지라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할 것이다. 으흠...부러워라..내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만 ^^ 산의 모습이 매를 닮았다고 해서 매봉산이라도 불리운다는 응봉산.. 매봉산이라는 이정표에 잠시 헷갈렸던 혼돈을 정리해주는 대장의 설명을 지난 응봉산행에서 귀동냥한 듯 했다.. 그리높지 않은 산의 형세는 얌전한 새악시처럼 순하게 느껴지는 오름길이었다. 마사토가 주 산길을 이루면서 혼연일체가 된 회원들은 오늘도 굳센 금순이처럼 정상에 올라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속에 하늘과 정상을 알리는 팻말과 30여명 산악회원 모두를 능력좋게 담아낸다. 산내음도 함께 담을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는 언제쯤 만들어질까.. 이미 새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흐르는 물소리등 소리까지 주워 담는 디지털 카메라라는 것이 나와 있질 않은가... 바람소리도 숨죽이며 새들조차 보이지 않았던 적막함 속에 우리들의 왁자지껄함이 몸살이 되어 산이 앓지않을까 하는 미안함이 든다. 모두가 떠나간 적막함을 지키고 있는 산이야말로 우주의 신이요 범접할수 없는 신성함이 베어있다. 하산길 몇백년은 된 듯한 소나무 앞에 팔벌려 껴안아 본다. 나무에 기댄 소인은 정기를 받으며 거친 주름에 얼굴대어 비벼본다. 누군가를 껴안으면서 받는 편안함이 이 나무만 할까... 팔 벌려 반도 되지 않는 미물이지만 외로움 속에 유유히 버티고 있는 나무에게 내 따뜻함을 가슴으로 전하며 그들이 만들어준 뿌리계단을 하나하나 밟으며 그 고마움 한번 더 되새기면서 걸음 옮긴다. 유격훈련하듯 로프를 잡고 내려온 험준한 하행길은 쉽지 않았다. 금강산 내금강을 방불케 한다는 용소골의 아름다움은 어느 길로 가야할지 갈팡질팡 속에 묻혀버리고 일부는 산을 타고 일부는 계곡 따라 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물론 두 길 모두 등산로이긴 하지만 합심이 되어야 할 산악회원들에게 선두의 말 한마디가 무용지물이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산행에 서투른 후미를 책임지어야 할 회원들도 모두가 앞장서기 바빴던 하산길, 가을비가 흠뻑내려 불어난 계곡을 따라 내려감이란 이미 산을 내려오면서 다리가 풀려 버린 회원들에게는 더욱 버거웠던 하행길이었던 것이다. 옥의 티였을까.. 초반부에 이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던 혼연일체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없었다. 하얀 암반들과 폭포수 그리고 작은 소들로 이루어진 용소골... 이젠 제대로 된 등산길로 발길 디디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콸콸 흘러대는 장엄한 물줄기의 위력이 소의 깊이를 더해주고 지난달 물없이 산행했던 경험으로 이제는 폭포수, 아니 계곡물만 봐도 반가운 것을 보니 경험은 깨우침을 동반하고 그 깨우침 속에 각인되어지는 산행의 예비지식이 저장되어 다시 불러오는 지혜로움을 터득하게 된다. 울진군에서 새로이 단장한듯 용소골 중간중간 다리가 놓여져 있었지만 어쩐지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불협의 느낌을 전해 받았다. 세계의 다리를 축소해 놓았다는 미국의 금문교니 프랑스의 노르망디교 등 나름대로 멋진 비경속에 세계를 담았다지만 웬지 모를 씁쓸함이 뒷맛을 안겨 준다. 차라리 아름다운 우리말로 토속적이면서 정감있는 다리를 놓았다면 운치가 더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남겨놓고 응봉산의 하산길을 마무리한다. 600년전 활과 창의 명수였던 이곳 마을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었다던 온천수... 원탕에서 콸콸 솟아오르는 물 한모금으로 목축이면서 내려와 동해안 제1의 수질을 자랑하는 온천 속으로 몸을 풍덩 담근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뜨뜻한 온천물에 풀어 놓으니 온 삭신이 녹는 듯 그 시원스러움을 이루 말로 표현할수가 없다. 온천욕은 그대로 말리는 것이 좋다는 일설을 무시하고 말끔하게 닦은다음 화장끼없는 뽀송한 민얼굴 그대로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덕구온천 하늘에 검은 구름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비를 살짝 피하고 하늘예쁜 산속에서의 하루가 우리회원들의 기분을 더욱 상승시켜준 산행... 산악회를 책임지고 있는 임원진들의 선심으로 맛있는 부침개와 막걸리로 무사산행했다는 축배의 잔 올리며 화이팅을 외친다. 우리 삶의 하루를 산속에서 보내고 돌아오니 울진의 검은구름이 비가 되어 보슬보슬 가을비를 뿌려주고 있었다 삼척의 하늘과 땅이 젖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