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편보다 한살이 더 많다.
요즘 많이들 볼 수 있는 연상연하 커플인건데,
사실 한살 차이가지고는 연상이라는 것을 잘 느낄 수는 없다.
더군나다 남편은 무척 보수적인 사람.
남편은 하늘이요 여자는 그 밑의 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내가 연장자 행세를 할 틈은 없다.
언젠가 한번 부부싸움 중에 "너!" 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을 때
"어떻게 남편한테 너라는 소리를 하느냐!" 면서 어찌나 무섭게 화를 내는지
'아... 이런 식으로 건드렸다가는 무사치 못하겠구나...'
남편이 오빠고 아빠인 척, 내가 더 어리고 멍청한 척 해야한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남편은 내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모르고 소개팅에 나왔다.
한참 화기애애하게 늦도록 얘기를 하다가
집에 돌아갈 즈음에서야 생년월일을 묻길래
"70년 개띠여요~" 대답을 해주었는데,
순간 재미가 싹 가시던 남편의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후로 보름동안을 기다렸지만 남편에게서 애프터 신청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주 많이.
나는 남편이 나보다 두학번이나 낮다는 걸,
재수를 했어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알고 나간 터였다.
내가 뭐 영계 잡아먹으러 나간 할머니야?
뭐 못나올 데 속이고 나오기라도 했다고 그렇게 쳐다보냐?
지금 나이 한살 더 내밀었다고 나를 퇴짜 놓는 것이여?
나는 미리 받아놓은 연락처로 먼저 전화를 했다.
남편을 다시 만나 어떻게 하고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내가 뭐 폐 끼친 거 있니?라고 묻고싶은 항의성 전화였달까.
지금 결혼을 했으니 망정이지, 만약 헤어졌더라면
여자가 먼저 전화하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는 남편의 기억 속에
나는 '먼저 만나자고 덤빈 나이 많은 노처녀'쯤으로 남아있을 지도 모른다.
어찌어찌하여 결혼에 이르러 첫애를 임신했을 때
나는 지나가는 소리로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왜 나한테 전화 안했어?"
나의 질문에 진지하게 돌아온 남편의 대답은 지금도 나를 실소케 한다.
"여자가 나이가 더 많다는 건... 불륜이야...."
그러면서, 단지 나이가 한살 많다는 그 사실 때문에
다시 만나야할 지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이다.
불륜이라고...
세상에 그런 상식이 어딨으며, 왜 고민을 해야한단 말이야 이 아저씨야...
장남에다가 유난히 규범적인 남편으로서는
누나라는 존재는 건드리면(?) 안되는, 금기 저편의 존재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사귀면 결혼울 해야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더욱
연상의 여자를 어찌 여겨야 할 지 난감했으리라.
아님 혹시 모르지...
어렸을 때 보던 빨간 비디오에서 어린 남자주인공들의 성욕을 위험하게 불러일으키던
정말로 불륜스러운 존재로서 누나의 이미지가 너무 깊이 박혀있기 때문인지도...
암튼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그 대답을 듣고,
자기가 무슨 고등학생도 아니고 누나때문에 갈등하다니
나는 남편이 더욱 귀여워졌다.
그리고, 겉으로만 큰 소리 뻥뻥 쳤지
속으로는 그렇게 순박하고 어리숙하기까지한 남편의 모습이 더욱 사랑스러워졌다.
여보,
내가 이런 당신을 너무 귀여워하는 거 알어?
당신은 귀엽단 소리를 싫어하지만 귀여운 걸 어떡해.
이게 바로 내가 누나란 증거야.
당신을 남동생처럼 마냥마냥 귀여워 하는 거.
당신의 그 순수한 마음 오래도록 지켜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