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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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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덜도말고 추석만 같아라??!!


BY 수련 2004-09-22

나이가 들어감을 속이지 못하나보다.

갈수록 게으름이 몸에 배어 집안의 모든 집기들은 이사올 때 자리를

정하고는 그냥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붙박혀있다.

예전같으면 마음에 들지않으면 가구밑에 담요를 깔고 이리저리 옮기고

작은 소품들도 수시로 자리바꿈을 했지만

밑바닥에 본드를 붙혀놓은 것처럼  그냥 그 자리에 다 고정되어있다.

 

계절이 바뀌면 옷장, 설합을 열어 그 계절에 맞게 손이 가기쉬운

설합으로 바꾸기도 했는데 이사오고는 그냥 그대로 두고,

여름이 와도  구석에 넣어놓은 여름옷을 팔을 쭉 뻗어 꺼내입고

가을이 와도 설합을 열어보고는  에이 그냥두지 설합을 닫아버린다.

 

일주일 남은 추석에도 그냥 음식준비만 해야지 마음을 굳혔더니...

 

지리했던 여름이 지나갔건만 더위는 끈질기게 남아  선풍기를 그냥두었는데

며칠  전부터는 켜지않아도 될 만큼 가을을 느끼게 되었다. 

한쪽으로 밀려난 선풍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

돗자리도 구석에서 꾸부정하게  서서 내 게으름을 흉 보고있다.

 

명절이면 형제들이 다오고 우리 아이들도 오고 ,

올 봄에 아기를 낳은 조카며느리까지 오면 방 세개,

마루까지 온통 이부자리를 펴야하는데 자꾸만 발걸음이 더듬거린다.

 

어제 다 본 신문을 집어들고 장농문을 열었다.

설합을 다 빼놓고 신문을 설합바닥에 깔고 옷정리를 시작하자 불붙은  도화선이 되어

연이어 앞,뒤베란다를 치우고 창고를 뒤지고, 방마다 아이들이 손이 갈 물건들도

위도 다 올려두고 벽에 걸린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밀어넣는다.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를 밀대에 끼워 서서 쓱쓱 딲던 마루도 기어다니며

구석구석을 꼼꼼히 다 딲아내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대 청소는 5시간동안이나 계속된다.

무릎이 아프고 허리를 겨우 펴니 손이 덜덜 떨린다.

허기가 졌다는 신호탄이다.  찬밥을 꺼내 남은 나물을 넣고 비벼먹고 나니

눈이 번쩍 뜨인다. 참 미련한 여자다.

 

커피를 한 잔 타서 마시면서 오전내내 대 청소를 한 집안을 둘러본다.

어!  그제나 어제나 오늘 아침 청소전에나 지금 청소 마친후에나

변한건 없다.  바닥을 쳐다보니 작은 얼룩들이 없어지고

 방이 조금 정리된 것같기도하고 창고안이 가지런해 졌지만

내내 손목이 아프도록 청소한 흔적이 드러나게 표가나지 않는다.

 

언젠가 퇴근한 남편에게 오늘 대 청소한다고 너무 힘들었다고 상을 바라는

아이처럼 호기를 부렸더니 뜨악한 눈으로 하나도 변한것 없다고 했을때의 허망함.

 

설합안을 열어보고 가지런함에 혼자 위로하고, 구석구석 깨끗함에 만족하고

베란다에서 환한 얼굴로 쳐다보는 주홍빛  제라늄에 활짝 웃음을  보낸다.

초등학생처럼 청소 검사받을일은 없지만 내가 나한테 백점을 주고싶다 오늘은.

 

'더도말고 덜도말고 추석만 같아라'는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추석장꺼리를 쪽지에 꼼꼼하게 적어 내려간다.

조기,민어,도미,산적꺼리.나물, 밤 대추, 약과, 고기, 튀김꺼리....

 

어느새 마음이 바빠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