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1.
1995년 4월말...
도서관 앞에는 개관을 기다리는 학생들로 300명은 족히 넘는 긴 꼬리가 이어져 있었다. 학교 바로 아래에서 자취를 하던 나는 자정 무렵부터 대학생활 제일 처음 치루는 중간고사를 위해서 열람실에서 공부를 하다가 6시 개관인 도서관 앞에 5번째로 줄을 설 수 있었다...
지난 저녁은 라면으로 떼우고 야구 모자를 꾹 눌러쓴 나의 몰골은 스스로 느끼기에도 정말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위해 끼워주기, 새치기 등을 하는 학생들은 질타를 받았고, 모두들 독기어린 표정으로 줄을 서 있었다.
개관 2-3분을 남겨놓고 하품을 연신해대는 나의 어깨를 툭치며 한 남자가 말했다.
“야! 너, 가방도 챙길 줄 모르니? 네 가방 가져가!”하는 거였다.
‘에구, 이게 무슨 일?’
어리둥절해 있던 나에게 그 사람은 ‘바보야, 제물건도 똑바로 챙기지도 못하니? 하는 표정을 짓고 잠시 바라보다가 터벅터벅 가버렸다.
주위의 사람들...서로 속닥속닥...가방을 잃어버리고 왔었나봐...잠이 들깼나봐....
주위의 시선을 느끼면서 나는 그 임자도 모르는 가방을 들고 8층 맨 구석, 일명 명당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메고 있는 작은 가방과 그 남자가 거네준 그 가방을 놓고 시험에만 신경쓰며 공부를 했다. 10시부터 시험이 시작된 나는 그대로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가방과 책들로 책상을 지켜놓고 시험장엘 갔다.
시험을 아주, 정말 아주~~~잘보고 도서관에 왔더니
그 남자, 가방을 안겨주고 간 그 남자가 앉아서 무지 열심히 책을 파고 있었다.
가서 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순간 고민했지만, 내 자리이니 당연히 앉아야 한다는 결론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앉았다.
하지만 그 남자...
나의 존재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태연하게 공부한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기분이 정말 이상했다.
커피나 한잔하고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을 때는 그 남자의 모습은 없었다. 가방은 그대로 있었다. 아마 시험시간인가보다 하는 생각에 나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영문과 전공이던 나는 아주 두툼한 롱맨사전을 책상위에 올려두었는데 사전에 끼워진 메모가 보였다.
‘제일 착해 보이고, 제일 순진해 보이고, 제일 예쁘게 보여서 가방을 맡겼다면 어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