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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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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 다녀왔습니다.


BY jeongann 2004-09-14

9월 9일 새벽 6시,
전국에서 달려온 CBS 애청자들은
서울 목동 기독교방송앞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전주에서 서울까지,
그리고 강원도 고성의 남측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에까지 가면서
가슴이 떨려옴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나즈막히 부르면서
남측군사분계선을 넘어 손을 흔들어주는
국군의 배웅을 뒤로하고 그렇게 밟고 싶었던 북측땅에 도착했습니다.

몇시간이면 다달을 이 곳을 오는데 그렇게 오랜세월이 걸렸고
한없이 멀게만 느껴지던 북한은 너무나도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9대에 나눠탄 관광버스에 일일이 올라  매서운 눈길로
인원체크를 하던 북한 인민군을 바라 보았습니다.
무엇이 이들의 가슴을 저리도 차갑게 만들어 놓았고
웃음마져 빼앗아 갔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 옵니다.

인원점검을 끝내고 북쪽의 금강산으로 버스가 출발합니다.
땅도 같고 자라는 곡식과 들풀도 다를 것이 없는 하나였지만
분단 50년은 우리를 너무나도 다르게 나눠 놓았습니다.
관광버스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백여미터 사이로
꼼짝하지 않은채 차량을 바깥에서 감시하는 인민군의 모습이
쉼없이 되풀이 되는가 싶더니 전항 북측세관에 도착했습니다.

장전항 세관에서 수속을 마친 후에 여장을 풀고

다시 온정각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장전항앞으로 보이는 고성읍과 그 안의 아파트들
그리고 장전항 부근의 가장 큰 바위에 새겨진
천출장군 김정일 장군이란 글을 보니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장전항에서 온정각까지 가는 7.4킬로미터구간에서
북측 주민들의 민가도 볼 수 있었고
자전거를 타고 시멘트길을 유유히 달리던 북한 주민들도,
학교에 다녀 오다가 차를 보고 손을 흔들던
초등학생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온정각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금강산의 장엄한 비경이
숨을 멎게 만듭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녀간 온정각 휴게소,
이산가족들의 눈물과 한이 서린 그 곳에
CBS애청자들은 마라톤과 기도회를 통해
통일을 한발자욱 앞당기는 초석이 되고 싶어
이곳까지 왔던 것입니다.

오후 4시와 6시 30분 하루 두차례에 걸쳐
온정각 문예회관에서는 평양 모란봉 교예단의 공연이 열립니다.
공중 2회전, 널뛰기, 장대재주, 봉재주 등은
서커스와는 구별되는 창작교예로
공연시작부터 끝날때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이 모란봉 교예단의 교예를 관람하는 사람은 세 번 운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저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하는
안쓰러운 마음에서 울고 두 번째는 교예를 보면서 느끼는
놀라움에 울고 마지막으로는 박수를 너무 많이 쳐 손바닥이 아파서 운다는 것입니다.
다시 장전항 해금강호텔에 돌아와 CBS위성 TV의 설교와 찬양프로그램을 보면서

북한에서의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북측에서의 이튿날이 밝아 옵니다.
CBS금강산 마라톤대회가 열리는 날,

몬주익의 영웅,황영조 선수와 함께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건각들은 통일의 염원을 안고 금강산을 가르며 달려 나갔습니다.
길가에 피어 있는 패랭이 꽃과 달맞이꽃이 이슬비에 놀라 부르르 몸을 떱니다.
그리고 탐스럽게 익어가던 옥수수와 벼도 금강산 마라톤대회에 참석한

CBS애청자들을 큰키 세우고 바라 봅니다.
마라톤을 마치자 오락가락며 심술을 부리던 빗줄기도
맑고 청량한 가을 하늘을 열어 줍니다.
구룡연으로 가는 길목엔 미인 다리를 닮았다고 하는 미인송이
향기로운 솔잎향을 폐부까지 스며들게 합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목란관에서 목을 축인 뒤 금강문을 지나 출렁다리를 건너 옥류동에 이르렀습니다.
땀이 마를 새도 없이 한달음에 옥류동 계곡을 따라 올라서니
눈 앞에는 봉황새가 꼬리를 흔들며 날았다는 비봉폭포가

하늘에서 하얀 은하수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옥류동 계곡 물은 거울같이 맑고 깨끗해서
한 웅큼 손으로 퍼 마시고 싶었고 물고기 한 마리도 없는
옥류에 첨벙 뛰어들면 세속의 때를 씻고 싶었습니다.
고개를 드니 신선이 얼굴을 가린 듯
높은 봉우리들은 구름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있습니다.
층층계단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하늘의 손길이 닿아 빚었다는
해발 880미터의 상팔담이 자지러진 웃음으로 반깁니다.

바위 하나, 나무 한그루, 산줄기 하나도 결코 예사롭지않은
지상 최고의 진경을 지닌 금강산은 역시 금강산이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금강산을 한없이 한없이 가슴에 담느라
흐르는 땀도 내리쬐던 햇볕도 한없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오후에는 영랑을 비롯한 신라 화랑 네 사람이
사흘을 머물다 갔다고 해서 생긴 삼일포산책에 나섰습니다.
삼일포는 온정리에서 동남쪽으로 12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자연 호수로 원래 동해바다였지만 밀려온 흙과 모래에 의해
만의 입구가 막히면서 호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호수저편으로 나지막한 36개 산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막아 서 있어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인 삼일포는
바위에 새겨진 정치문구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북측에서 운영하는 금강원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흑돼지와 냉면의 기막힌 맛과 여성접대부가 부르는 노래소리가 금강산에 울려 퍼졌습니다.
김정일 찬양가를 멋드러지게 불러대던 여성 접대부의 마음과
웃음을 잃은채 오가는 차량들을 감시하던 북측 군인들의
얼어 붙은 눈동자가 자꾸 환영으로 다가 옵니다.

이념과 사상이 다른 북측 땅 금강산 저녁은
CBS기도회에 참석한 애청자들의 뜨거운 기도로 깊어갔습니다.
통한의 50년. 북녘 땅에서 신음하는 우리 형제들을 위해,
민족통일과 북한동포를 위해 목이 터져라고 큰소리로 기도 했습니다.

사흘날 아침,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그러나 우의를 구입해 몸에 걸치고 만물산을 오릅니다.  
일렬로 서서 가야 할만큼 길은 좁고 가파라서

앞 사람의 발뒤쿰치만 보고 따라가야 하는 험한 등산로이지만

부지런히 만물상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세명의 신선을 닮았다는 삼선암,
금강산으로 오는 잡귀를 쫓아내는 도깨비의 모습이라는 귀면암,
선녀를 찾아 맨손으로 나뭇꾼이 올랐다는 절부암을 거쳐
거의 직각에 가까운 가파른 암벽위에 설치된
철제계단을 따라오르는데 아래를 쳐다보면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졌지만 한걸음씩 바위위를 올라
멧돼지, 두더지, 토끼 등등의 온갖 흉상을 닮은
만물상 바위와 그 사이를 비집고 다니는 구름은
정말 환상 자체였지만 끝내 금강산은 안개와 구름속에 모습을 자꾸 감추려했습니다.
사닥다리 오르듯 철제로 만든 층층대를 올라  정상인 망향봉에 올랐지만

구름에 묻힌 금강산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기만 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다시 장전항으로 가서 북측출국수속을 마치고
차를 타고 오며 다시 쳐다보는 금강산..
그 외금강의 화려한 절경을 잊지않고
가슴에 담아오기 위해 두눈은 외금강의 그 화려함속에서 결코 빠져나오지를 못했지만
어느덧 서서히 멀어지는 금강산을 아쉬워하다가

금방 다시 해금강 입구의 북측 검문소에 도착해
인민군 장교의 간단한 검사를 받은후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쪽으로 왔습니다..
남한 세관의 간단한 입국수속후에 쳐다보는 남한의 땅과
산과 바다와 하늘 모두 북한의 그것과 별반 다를바 없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조금전 떠나온 금강산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과 북을 가른 지 50년.
그러나 통일의 열망은 세월의 두께만큼 높고
험한 분단의 장벽을 허물어 육로를 통해 북측을 갈 수 있게 됐지만
다시 한번 금강산에 오를 때는 통일이 돼서 입다문 금강산이 웃으며 화답하도록

맘껏 야호를 외치면서 자유스럽게 금강산 비로봉에 오를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금강산 봉우리 보다 더 높고 만물상 골짜기 보다 더 깊은
체제와 이념의 장벽 때문에 아직도 우리의 금수강산 금강산은
가깝고도 너무나도 먼 곳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