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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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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야기] 집


BY 꿈 2004-09-14

어슴프레 어둠이 밀려오는 가을 저녁
허름한 단층집이며 이층집들 위로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엉겨있고
구불구불 미로처럼 이어진 좁은 골목엔
조무래기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란스레 놀고 있는 동네어귀.


하얀얼굴 반달눈에 날씬한 여자와
날카로운 눈매며 콧날에 거무잡잡한 피부의 남자가
심상찮은 분위기로 마주 서 있습니다.

 

"아니 지금까지 나를 속였단 말야?  여기다 자기집을 두고 맨날 엉뚱한데로 바래다 달랜거야?"

남자는 이제까지 사랑하는 그녀와 만났다 헤어질때마다
바래다 주던곳이 그녀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에
몹시 황당해 하고 있습니다.

 

"왜 자기네 집이 여긴데 저쪽 동네에서 내렸느냔 말야.
쓸데없이 뭘 이런걸 속이구 그래.
나 오늘 자기집에 인사 못가."

 

난감하고 미안한 표정의 여자가 우물쭈물 겨우 입을 뗍니다.

 

"원래 전에는 그동네 살았었는데 
이리루 이사를 했거든... 이사했다는 말이 안나와서...."

 

육남매의 맏이인 여자네는
충청도 산꼴에서 살다가  빈농들의 상경 붐을 타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변두리 전셋방을 전전할때였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방안에 앉아
시대에 뒤떨어져 돈하고는 바꿔지지도 않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옛날 고려적 공부만 일삼는 아버지에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먹이고 가르쳐야 했던 엄마.
여덟식구가 방두칸을 빌어 살며 한해가 멀다하고 이사를 다녀야했던 여자네.
그여자는
그렇게 자주 이사해야하는 자기의 처지도 싫었고
그녀가 사랑하는 그남자에게 그런 구질구질한 이야길 늘어놓는것도 싫었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하고도 전에 살던 그동네 포장마차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기계우동 한그릇을 나눠먹은후
손흔들며 헤어지곤 했습니다.

 

"왜 이사했단 말을 못해?"

 

"....... 챙피해서....
이사를 너무 자주 다니니까.."

 

그즈음 농촌에서 가진것 없이 올라와
그저 공자왈 맹자왈밖에 모르는  아버지와
여리고 순진한 엄마, 올망졸망한 아이들 여섯.

우리가족이 집을 장만하는일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세상만물의 이치를 두루 다 꿰고계시지만
정작 자식들이 먹어야하는 쌀이나 학비를 구하는데는
서툴기만한 아버지 밑에서 우리가족은 굶지않는것만도 감사할 처지였습니다 .

 

 그들은 호텔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호텔이 그들의 직장이었습니다.
냉정한 눈빛과 싫고 좋은게 분명하고 겉과 속이 똑 같은남자.
똥광들고 앉아서 흑싸리 껍질 들고 있는척
국진이쌍피 들고 앉아서 목단피 들고 잇는척이 안되는 남자.
어떤일이든 온 회사사람들이 다해도 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하는 남자. 

핸드백 같은건 절대로 안들어주는남자.
쓸데없이 이쁜여자한테 먹을거 사다 바치는건 질색하는 남자.
여자는 그런 남자가 좋았습니다.

 

바보도 아닌것이 고분고분하고 순하고 착해 보이는것이
알뜰하기까지 해서
사치하는법이 없고
제입에 넣는것까지 아끼는지 빼빼 마른 여자.
남자는 그런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남자는
식구들 기다리겠다.고 어서가자.며 걸었습니다.

 

지저분하고 가난한 동네사람들은
왜 그리 아이들은 많이 낳고
그아이들은 왜 그리 또 시끄러운지.

쓰레기통 옆에는 허연 연탄재가 쌓여있고
그좌우로 프라스틱 화분이며 사과궤짝이 늘어져있는 동네골목.
그 프라스틱 화분이며 사과궤짝안에는 과꽃이며 수세미, 꽈리고추
푸성귀와 국화, 또 작은 나무들이 심어져있습니다.
샐비어도 있고 분꽃도 있습니다.
이 남루한 골목의 가을꽃들은 가슴을 아리게 했습니다.

꼬질꼬질 가난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걸어
그가 사랑하는 그녀의 집에 첫인사를 갔던 그들은
그해 늦가을에 혼인해서
열심히,아주 열심히 살았습니다.

 

여자는 이웃집에서 주는 헌옷도 고맙게 웃으며 받아입고
미장원엔 일년에 한번,
손수 세아이의 보습 도와주고
소박하게 생각하며 소박하게 먹었습니다.

그남자는 바깥여자들에게는 눈길한번 뺏기지 않으며
놀음도 모르고 경마도 골프도 멀리했습니다.
아끼고 절약하고
성실하고 근면하게 살았습니다.

 

큰아이가 열살쯤 되던해
그남자는 집을 지었습니다.
강남도 아니고
분당도 아니고
일산도 아니고
그여자가 살던 그 땟국물이 쪼르르 흐르는 동네에
쓰러져 가는 집을 사서
터를 다지고 철골을 세워 시멘트를 들어붓고
십수가구나 되는 다세대 주택을
땅땅 때려짓고는
그가 사랑하는 그녀의 이름 석자로 등기를 내어
그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여깄어. 집문서."

 

그녀는 행복했습니다.

'아, 집없어 부끄러울 정도로 이사를 많이 다니던
내가 집한번 싫것 갖는구나!'

정말 행복했습니다.

 

대여섯해가 흐른 지금
그녀의 다세대 주택엔
사업하다 파산한 남편 친구가족들
일이 안풀려 먹고 사는일이 막막한 친척들
가진게 없는 형제들
자식을 멀리 둔 꼬부랑 노인부부가
한집 두집 세 들기시작 하더니만
집세도 나몰라라 하고

집을 비워주는것도 아니고....

내배를 쨀태면 째봐라...

 

그여자는
꿈에도 생각지 않고

일순간 마음에도 없던
사회사업가가 되는군요.. 무료 집 대여...
 
머지 않아
보랏빛 쑥부쟁이꽃이 고즈녘하게 피어날무렵
나무끝에 홍시감이 빨간 볼을 붉힐즈음
그즈음
행복한 그들의 결혼기념일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