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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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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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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음식


BY 찬 바람이 불면 2004-09-12

올 여름은 정말 잔인했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 온몸의 땀을 빼다 못해

 

진을 다 뺄 정도였다. 너무 기운이 빠져 삼계탕 생각이 간절한데,

 

까다롭게도 음식점에서 파는 건 먹기 싫고 친정엄마께서 해주신 것만

 

먹고팠다. 하지만 염치가 없어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이유인 즉, 얘들 데리고 힘들다며 여름 내내 친정엄마께서 열무김치며

 

배추김치며 다 담가주시고, 마늘은 시골에서 사다가 큰오빠랑 이틀 동안

 

까셔서 방아간에서 갈아 봉지봉지 담아주시고, 참깨는 고소하게 볶아

 

한동안 먹을 치를 준비해 주셨기 때문이다. 자식밖에 모르는 울 엄마,

 

막내딸이 먹고싶다 하면 당장 닭 사다 해주시겠지만, 이 더위에 나도 내

 

얘들 못해주는 걸 늙으신 엄마께 해달라기가 좀 그랬다. 

 

 

문득 어릴 때부터 엄마가 우리 7남매 해먹이신 음식이 눈물겹다. 여름이면

 

영계를 10 마리씩 사다가 푹 고아서 가족 모두 한마리씩 먹인다. 남는 한 마리는

 

물론 큰 오빠를 더 먹이기 위해서다. 닭을 삶고 난 물에 불린 찹쌀과 토실한

 

밤, 잘 익은 대추를 듬뿍 넣는다. 그런 다음 두 시간 정도 푹 끓여 먹으면...

 

그 맛은 정말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봄에는 싱싱한 꽃게를 사다가

 

알맞은 크기로 썰어 갖은 양념을 다해 빨간 꽃게장을 담으신다. 양념해서

 

하루 정도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다음날 꺼내 보면 싱싱한 게는 제대로 간이

 

배어 다섯손가락 다 발라가며 먹기 바쁘고, 그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입맛 없던 사람도 두 그릇은 뚝딱이다. 겨울 별미로는 동지팥죽을 빼놓을 수

 

없다. 찹쌀로 새알심을 동글동글 빚어 넣은 그 고소한 팥죽도 매년 동지 때면

 

엄마가 해주시던 별미다. 집에 온식구들이 모일 때는 낙지 초무침을 하시는데,

 

우리 모두 엄마께 식당을 내시라고, 떼돈을 벌 거라고 한다. 연한 산낙지를

 

살짝 데치고, 미나리도 살짝 데쳐, 식초 , 설탕, 참깨 등등의 양념을 한

 

낙지 초무침,  이 순간도 침이 꼴딱 넘어간다. 매년 봄이 시작될 무렵엔 기운이

 

딸린다며 겨우내 꿀에다 인삼을 송송 썰어 재놓은 엄마식 한약을 한숟가락씩

 

7남매를 먹이셨다. 어릴 땐 씁쓸한 인삼맛이 싫어 안먹는다고 떼쓰고 하다가 

 

억지로 먹곤 했는데....이젠 기운이 딸려도 누가 내게 그런 것을 해주겠는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얘들을 키우는 지금에서야 엄마의 그 음식들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정성과 사랑 없인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낀다.

 

내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정성이 가득 담긴 그런 음식을 해줘야 할텐데,

 

불행히도 우리 얘들은 그저 평범한 음식에 가끔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있다.

 

올여름 끝내 삼계탕을 못먹고 지났다. 내년엔 내가 삼계탕을 맛있게 해서

 

우리 가족들을 먹이고, 엄마께도  대접을 하리라. 엄마께서 내게 해주셨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