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어느 토요일 오후
오늘은 즐거운 토요일,,, 그리고, 귀여운 혁이를 만나는 날이다.
아까부터 난 시계만 보고 있다.
서장님은 무엇을 하시는지 사무실에서 꼼짝을 안하신다.
다른 직원들은 벌써 도착해서 아이들이랑 놀고 있을텐데, 난 아직 이러고 있다.
퇴근하시면 바로 옷 갈아입고 송도까지 버스타고 가야한다.
우리는 1년전 부터 토요일만 되면 소년의 집에 간다.
그곳은 미혼모들이 낳은 아이들(미혼모들이 그곳에서 아이 낳을 때까지 봉사하며
아이들 돌보며 있다가 출산을 한다), 아니면 사정이 있어서 홀로 된 아이들이 모여 있다.
신생아, 유아, 유치원까지는 부산에서 지내다가 초등학교는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는
다시 부산으로 온다. 내가 가는 곳은 2세에서 4세까지의 아이들이 각 반별로 모여 있는 영아원이다. 수녀님들과 보조교사들의 눈물겨운 사랑을 보면서,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과 웃음을 보면서 난 부자가 되어, 돈으로 살 수 없는 무언가를 한 아름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모든 아이들이 보고 싶지만,, 난 지금 양혁, 혁이가 보고 싶다.
나만 보면 복도 저 끝에서 소리를 지르며, 두 팔을 활짝 펴고 뛰어와서 안긴다.
그 모습이 너무 보고 싶다.
그리고, 목욕 시킬때, 간지럽히면 까르르 웃는 모습도 보고 싶다.
1992년 어느 토요일 밤
오늘 낮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소년의 집 고바위 길을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멀리서 보니 어떤 남자가 한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늘 새로운 회원이 몇 명 온다더니,,,, 처음 보는 직원 이었다.
가까이 가서 가만히 보니 그 남자가 안고 있는 아이는 혁이 였다.
나를 보고는 아는 척도 안하고, 내가 "혁아, 이리와" 하고 팔을 벌려도 고개를 '획' 돌리며
오히려 그 남자의 품에 더 깊이 안기는 거다.
그 때, 내가 얼마나 민망했던지...
짜식이, 사람을 그렇게 배반할 수가...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얼마나 잘 해 줬으면 1년 동안 봐온 나 보다, 몇 시간 동안
같이 있었던 그 남자를 더 좋아하고 따를까?
그래도 섭섭하다.
오늘 밤,,, 잠이 안오는 건 왜 일까?
자꾸만, 혁이를 안고 있던 그 남자가 생각이 난다.
1994년 어느날,,,
어머니의 반대가 너무 심하다. 경찰은 절대로 안된단다.
옛날처럼 위험한 직업도 아닌데,,, 어머니 성격을 아는 나로써는 힘든 싸움이 될 것 같다.
지난 2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난 모든걸 떠나서 그 사람이 좋다.
아버지 없이 딸 셋을 혼자 키우신 어머니를 제일 잘 이해 할 것 같고, 다정 다감한 성격에
나의 터프한 성격도 잘 받아줄 것 같다.
그리고, 아들도 없는 집안에 맏사위로 들어 오겠다는 마음도 고맙다.
오늘 어머니 모시고 시외로 바람쐬러 가기러 했다.
어머니도 그 사람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신다. 사실, 겁이 난다.
많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를 아들처럼 생각하고 살았으니,,,,
빼앗긴다는 느낌이 든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하나님! 제발, 오늘 어머니 눈에, 그 사람이 예쁘게 보이게 해주세요..부탁드립니다.
2004년 9월 7일
비가 온다. 태풍이 부산을 지나간다고 하더니만,,,
추석을 앞두고 잘 익은 과일들이 무사했으면 좋겠다.
결혼 10년째... 그 사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결혼전이나 지금이나...
혁이를 안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빠다.
우리둘 사이를 이어지게 해준 양혁,,,
지금 고등학교 1학년쯤 되었을 텐데, 어떻게 변했을까?
눈이 크고, 눈동자가 유난히 검었었는데...
당연히 우리를 기억 못 하겠지만, 그 래도 한번 만나고 싶다.
"혁아!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지? 아이들 키운다는 핑계로 너를 잊어버리고 찾을 생각도
못했다. 이번에 이런 글을 쓰는 기회가 생겨서 ,,, 네 생각이 더욱 새록 새록 나는구나.
좋은 사람 만나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 꼭 하고 싶었어.
늘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할께. 빠른시일 내에 도형이 정민이 손잡고 갈께.
처음은 서먹서먹하겠지만,,, 곧 좋아질거야. 잘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