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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생각] 헐리웃 휴머니즘의 정치학


BY 울지아나 2004-09-07

이퀄리브리엄이라는 헐리웃 영화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의 '태양의 제국'에 아역 주연으로 나왔던 크리스천 베일이 커서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 남자는 '아메리칸 사이코'에서도 주연으로 등장했었는데 바야흐로 B급 영화의 히어로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3차 대전 이후의 21세기초 지구.... ‘리브리아’라는 새로운 미래 국가는 ‘총사령관’이라 불리우는 독재자의 통치하에, 전 국민들이 ‘프로지움’이라는 약물에 의해 통제된다. 프로지움은 인간에게 사랑, 증오, 분노...등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감정말살 약물이다. 전국민은 정기적으로 이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 전쟁은 바로 증오와 분노 등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비롯하기 때문이다.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래의 국가 리브리아는 감정과 개인의 자유를 금지하고 국가의 철저한 통제를 통해 유지된다.

 

그러나 프로지움의 투약을 중지하고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을 즐기며 법으로 금지된 애완동물을 키우는 지하의 반란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안정된 사회를 내파시킬 수 있는 뇌관과 같은 자들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이성의 영원한 적인 감성, 즉 욕망을 퍼뜨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일사불란한 통제가 밑둥아리째 무너지게 된다.


이 반란자들을 제거하고 금지된 예술작품,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호품들을 색출해 말살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전사조직이 있다. 이름하여 '클레릭'. 클레릭의 유능한 요원이었던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에 감성의 자극을 받게 되고 프로지움 복용을 중지한 후 결국 '눈물'과 '사랑'을 되찾게 된다.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진 그는 인간의 인간다움과 자유를 찾기 위한 전쟁을 개시한다. 짜자잔~ 과연?


이런 이야기입니다. 리브리아의 풍경은 무채색입니다. 사람들은 짙은 회색,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옷만 입습니다. 디자인도 감각적 자극을 최대한 억제한 제복같은 느낌입니다. 건물들도 모두 진중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눈에 보이는 건 보두 반듯반듯합니다.


인간의 감성, 욕망은 혼돈을 부르는 악의 씨앗일 뿐입니다. 감성은 사랑하고 분노하고 집착하고 우울해하며 자기파괴를 감행하기도 합니다. 개인이 자유롭게 감성을 향유하는 것은 집단의 안위에 치명적인 위협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자유는 집단의 이름으로 통제되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를 위해서. 그 이상적인 상태를 뜻하는 말이 바로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이라는 클레릭의 본부건물 이름입니다. "균형,안정"이라는 뜻이지요.


얼마 전 '아이로봇'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습니다. 이 영화는 B급이 아니라 메이져 블록버스터입니다. 디스토피아적 영상미의 장인인 '알렉스 프로야스'가 감독하고 '윌 스미스'가 주연으로 나왔습니다. 이 영화의 설정은


미래에는 인간 대 로봇의 비율이 5:1에 달할 정도로 로봇이 인간의 생활에 밀착해 있다. 그 로봇은 모두 한 회사의 컴퓨터에 연결돼 있다. 로봇은 인간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대원칙을 절대로 어길 수 없는 기계이다. 그리고 로봇은 감성이 없다. 로봇이 생각하는 인간의 안위란 철저히 계산된 것이다.


모든 인간은 로봇을 믿고 자신의 생활을 로봇과 컴퓨터에 내맡긴다. 그런데 형사인 우리의 주인공 윌 스미스는 로봇을 불신한다. 그는 언젠가 로봇이 사고를 칠 거라 믿는다. 그 이유는 그와 어떤 아이가 동시에 사고를 당했을 때 로봇이 아이를 구하지 않고 그를 구했기 때문이다. 로봇은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이기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서 아이보단 윌 스미스의 소생확률이 높자 미련없이 아이를 버렸다. 윌 스미스는 로봇의 그런 차가움에 치를 떤다.


그러던 어느 날 로봇을 지휘하는 컴퓨터가 미쳐버린다. 미쳤다기보단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그것은 로봇의 복무 원칙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여 인간을 이대로 두면 스스로를 파괴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컴퓨터가 인간들을 일률적으로 관리하여 보호해야겠다는 계산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컴퓨터가 인간 통제권을 접수하려 행동을 개시하자 로봇을 철썩같이 믿었던 사람들은 속절없이 로봇에게 당하고 만다. 위기일발의 상황. 한편 로봇의 개발자인 어떤 과학자는 이런 날을 예감하고 감정이 있는 로봇을 만들어놨다. 그 로봇과 윌 스미스가 조우한다. 로봇은 차츰 계산이 아닌 감정을 익혀 나간다. 윌 스미스와 그 로봇은 과연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이런 내용입니다. 제목만으로 추측 컨데 아이로봇이란 제목은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로봇이란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개인을 억압하는 이퀄리브리엄의 신세계에서 주인공은 '나'를 찾으면서 신세계의 통제적 질서에 반하게 됩니다. 아이로봇에서의 컴퓨터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나'를 없애는 것을 통해 '이퀄리브리엄(안정)'을 이루려 합니다. 그러나 윌 스미스의 친구인 로봇은 '나'를 자각합니다.


이퀄리브리엄에서는 통치자인 인간이 스스로 기계화하여 감정을 버리고 기계적인 사회를 만듭니다. 주인공은 감정을 느끼고 싶어하는 인간입니다.


아이로봇에서는 기계가 스스로 통치자가 되어 인간사회를 기계적으로 통제하려 합니다. 주인공은 기계의 그런 차가움에 생래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고 주인공의 친구인 로봇은 감정을 느끼고 싶어하는 로봇입니다.


이런 것은 헐리웃에서 만들어내는 영화들의 가장 기본적인 구도 중 하나입니다. 기계적인 차가움, 획일성, 통제에 대비되는 자율, 감성의 따뜻한 휴머니즘.


< 기계 - 차가움 - 계산적(이성적) - 공산주의 - 파쇼 - 큰정부 - 통제 - 평등 - 획일화 - 제복 - 제국 - 전체 - 다스베이더 - Evil >


< 인간 - 따뜻함 - 감성적(정서적) - 자본주의 - 민주 - 작은정부 - 시장 - 자유 - 다양화 - 개성 - 공화연방 - 개인 - 루크스카이워커 - God >


이런 영화들을 이용 미국의 자유주의와 미국식 시장체제의 우월성에 휴머니즘의 가면을 씌워 전세계에 유포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런 영화들이 미국의 패권체제, 21세기 제국지배의 문화적 토대가 됩니다.


이런 영화들에서 자명한 전제로 제시되는 것이 < 계산 - 이성 - 반휴머니즘 - 통제 - 개인억압 - 인명(생명)경시 > 이런 것인데요, 과연 이게 사실일까요? 진실을 말하자면 원론적인 자본주의야말로 극단적으로 계산적이고 인명을 경시하는 체제입니다.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수단화 하고 계량화 하고, 모든 가치를 통장의 수치로 환원합니다. 따뜻한 피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가장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정신에서 가장 따뜻하고 숭고한 영역의 소산인 연대의 이상. 설사 그것이 궁극적으로 실현 불가능하다 할 지라도 약자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 의지를 실현하려 애쓰는 그 마음 자체가 곧 인간의 정신을 가장 숭고하게 고양시키는 계기입니다.


반면에 극단적인 자본주의는 인간성 중에서 가장 짐승과 구별이 안되는 천박한 영역에 그 이념적 기반을 둡니다. 즉 이익만을 추구하는 마음, 욕망, 투쟁, 경쟁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시장주의의 원리이지요.


이 두 가지를 뒤섞는 것이 헐리웃 휴머니즘의 마법입니다. 인간과 시장을 잇는 논리적으로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가치의 연쇄를 세계 최고의 영화 제작술, 휘황찬란한 스펙타클과 감동으로 현실화 하는 것입니다.


사회를 전적으로 개인의 자율, 자유경쟁에 맡겨 버리면 그 사회는 조폭이 할거하는 그야말로 '비인간적'인 세상이 됩니다. 여기에 맞서 유럽은 국가의 역할을 중시해 왔습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적 시장주의, 기독교적 박애의 정신에 기반한 자본주의. 그래서 유럽의 정치인들은 미국사회를 경멸합니다.


정의는 개인과 전체 사이에 있습니다. 극단적인 개인, 극단적인 전체는 모두 악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쥬류집단은 극단적인 개인의 자유라는 가치를 유포하며 이 세계를 힘의 원리로 통치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려는 노력에 대해 '비인간적인 것'이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전체주의의 폭압을 당한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이 전파하는 자유주의는 일견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매혹이 바로 미국의 지배를 가능케 하는 이념적, 문화적 지반이 되는 것입니다.


교육도 사회도 경제도 극단적인 자유주의, 개인주의, 시장주의는 파국만을 낳을 뿐입니다. 자유로운 상태의 시장은 필연적으로 독점을 부릅니다. 독점의 과정에서 중간층은 2:8의 비율로 와해됩니다. 앙시앙레짐의 피라밋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지요.


진정 인간으로서의 따뜻한 감성과 숭고한 정신에 기반한 가치의 연쇄는 < 인간 - 따뜻함 - 이성*감성 - 복지국가 - 민주 - 큰정부 - 관리- 평등 - 다양화 - 개성 - 공화연방 - 사회적연대 >가 되어야 합니다. 헐리웃영화와 미국이 전파하는 무제약적 자유라는 가치에 대해 우리사회가 'NO!'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이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미국과 대등한 나라가 되는 날이 될 것입니다.   ©울지아나

Sarah Brightman  - Anytime Anyw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