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지나서 인절미 한 접시를 먹어치운 힘이 어디로
갔겠는가.
언니를 놀리는 사내아이들은 나한테 죽었다.
나는 돌맹이를 들고 사내아이들을 쫓아갔다.
나한테 쫓기는 사내아이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끝까지 쫓아간 나는 사내아이의 집 대문이라도 돌맹이로
찍어주고 돌아온다.
나는 언니의 보호자였다.
힘좋고 든든한 보호자였다.
부산 피난시절이었다.
네살때 피난가서 여덟살까지 살았으니까 오랜동안 부산
사투리를 했던것 같다.
그곳은 엄마의 고향이었으니까 쉽게 떠나오지 않았다.
디귿자 한옥에 방이 많기도 했다.
우리는 거기서 셋방살이를 했다.
아버지는 부재중이었다.
아버지는 사년동안 일본에 계셨다.
늦도록 오줌을 쌌던 기억이 있다.
켜를 쓰고 디귿자 한옥의 마당을 돌라는 엄마가 미웠다.
소금 주세요.
밥주걱이 모모짱의 뺨을 후려칠때 나는 소금 그릇을 내던지고
마당에 털석 주저앉아서 울어재켰다.
나는 불쌍한 아이였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불쌍한 아이였다.
여전히 나는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아이였다.
피난 시절에는 먹을 것이 없다.
미군찝차가 동네에 왔다.
함께 타고 있는 여자가 나에게 말을 붙인다.
'우리 해운대에 가는데 함께 갈래? 우리 따라가면 쪼코렛
줄께.'
쪼코렛에 눈이 어두운 나는 그 찝차에 올라탔다.
해운대는 외할머니댁이 있는 곳이니까 겁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내게 내 손보다 큰 쪼코렛을 주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바다에서 놀았다.
그들은 둘이만 놀았다.
나는 그들과 좀 떨어진 모래사장에 혼자 앉아 쪼코렛을
먹는 행복을 맛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거지가 잽싸게 달려왔다.
그리고 내손에 든 쪼코렛을 채어 가버린다.
울었다.
오줌 쌌을때 주걱맞고 울었을 때보다 더 크게 울었다.
미군이 또 쪼코렛을 주었다.
다시 행복했다.
그날 엄마는 나를 찾아 하루종일 헤맸단다.
불쌍한 나는 또 매를 맞았다.
쪼코렛의 행복은 저만치 달아나고 있었다.
'너 밥 먹지마.'
낮에 먹은 쪼코렛이 그날 나의 양식의 전부였다.
나는 정말 불행한 피난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아...공산당은 왜 쳐들어 왔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