탯줄로 엮은 사랑
한달 이나 빨라진 딸아이의 출산 소식은 반가움보다 두려움으로 엄습해왔다. 순산을 기원하며 병원에 다다랐을 때 80%의 진행중이라는 전광판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잠시 태아의 무사함을 기도하는데 자꾸만 불안하고 초조해져 애간장이 녹아 내리는 것 같았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분침을 바라보며 불길한 생각으로 온몸이 조여 올 때 천사의 음성처럼 들려오는 사위의 목소리 “장모님 혜진이 순산했고 아들입니다.” 절망의 늪에서 헤어나 희망과 손을 잡는 순간 난 세상 모든 것에 감사 드렸다.
외손자와의 첫 대면 조물주의 위력에 찬미를 드리며 성급한 세상 나들이 탓에 뼈대만 앙상했지만 모든 게 정상이란 말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회복실에 누워있는 딸을 보며 와락 눈물이 솟구쳐 애써 감정을 눌러 담고 “우리 딸 장하네 힘들었지?”“엄마! 어떻게 우리 넷을 낳아 키웠어 잘할게.” 힘겨워 하는 아이의 손을 감싸쥐고 우린 모녀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대화들을 눈빛으로 주고받았다. 곤히 잠든 파리한 얼굴엔 산고의 흔적들이 묻어 있어 가슴이 아려 왔다.
시어른의 배려로 특실로 옮겨진 입원실엔 병원장님과 동료 의사들이 보내온 꽃바구니와 난 화분으로 화원을 방불케 했고 행복에 젖어있는 아이의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손자의 체중은 미달로 곤두박질치고 황달이라는 병명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땐 천 갈래로 찢어지는 가슴을 주체 할 수 없었고 살얼음 위를 걷는 기분으로 나날을 보냈다
큰아이를 낳은 게 그리 멀리 느껴지지 안는데 할머니라는 호칭이 나의 위치를 재인식 해 주었고 추억의 골방에서 잠들고 있던 출산 때의 일들이 새순 돋아나듯 새록새록 피어올라 쓴웃음을 지었다.
익숙하지 않은 시집살이 때 가진 맏이는 두렵기만 했었고 아들타령을 하면서 낳은 막내가 딸로 태어났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에 애꿎은 하느님을 향해 원망의 화살을 퍼부었다. 삶의 의욕마저 잃어 갈 때 나의 정신적 지주 노릇을 해주셨던 박 수녀님 “엘리사벳씨 많이 힘드시죠?” 하느님께선 원하신다고 다 주시진 않습니다. 어느 부모가 아이가 독약을 달란다고 줄 부모가 어디 있습니까? 더 좋은 선물을 주시려고 이런 시련을 주시나 봅니다 힘내세요.
굳게 닫친 마음의 빗장을 내리는 순간 욕심의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네 그루의 꿈나무에 희망의 꽃을 피우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숨 가쁘게 앞만 보면 살아온 세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고 되돌아보는 마음의 여유를 느낄 때 오른쪽으로만 돌렸던 나사를 서서히 왼쪽으로 돌려본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먼 여정 속에 오르막은 대나무의 자양분이 되고 내리막은 마디가 되어 미래로 향해 끝없이 전진했나 보다
손자의 재롱에 고슴도치가 되어 가는 딸의 모습에서 내 젊음을 낚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