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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으로 돌아가서...


BY 개망초꽃 2004-08-26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그런 걸 더욱 느꼈습니다.
빤질거리고 더 큰 걸 가지려 사과 두어개 사면서 사과 한 상자를 뒤적이는 사람들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 찌그러진 작은 열매로 배를 덜 채우며 살고 싶습니다.
깨끗한 걸 더 먹으려고 상추 한 잎 한 잎 고르는 손님들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 벌레 이빨자국 난 상추에 설겅설겅한 잡곡밥 얹고
누런 된장 넣어 조촐한 한끼를 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듣도 보지도 못한 외제차 끌고 와서 천이백원짜리 콩나물 한 봉지 사면서 "비싸다."
우리밀 밀가루 한 봉지 값 물어 보면서 우리나라 건 왜 이리 비싸요? 하는 손님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 우리 산아래 작은 집 짓고, 우리 나무 밑에 서서 우리 꽃보며
우리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살고 싶습니다.

삼만원이상 배달이라는 걸 고지식하게 믿는 손님이 삼만원어치 맞춰서 물건을 사서는
두 손으로 가볍게 들고 갈 수 있는 무게 밖에 안되는 것을 배달해 달라며
"삼만원이상 배달이라고 하셨죠? 빨리 배달해 주세요."하는 젊디 젊은 손님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 장바구니 들고 곤충들 풀석거리는 시골길을 걷고 싶습니다.

인사를 해도 인사도 안 받고 손님은 왕이라는 식으로 도도하게 고개 쳐들고
매장문을 열고 나가는 손님을 대하면 자연으로 돌아가 봄이면 밭두렁에 냉이꽃 피고
여름이면 강아지풀이 무성하고 구월이 지나면 나뭇잎이 본래의 낯빛으로
가을을 맞이하는 그런 자연에서 살고 지고, 살고 지고 싶습니다.

돼지고기는 돼지 분뇨 냄새나서 안 먹고, 닭고기는 징그러우니 껍질을 홀라당 벗겨 달라하고
생선은 이씨 성을 가진 이면수만 먹고 고등어는 비려서 안 먹고
소금에 저린 건 무족건 몸에 나쁘고, 어묵은 밀가루가 들어가서 소화가 안되고
과자는 설탕이 들어가서 기름에 튀겨서 안되고..그러면서 꼬불탕거리는 라면은 왜 먹는지...
이리 까탈스롭고 세상에 먹을 게 없고 믿을 게 없어 뭘 먹을지 몰라
오래도록 세월아 내월아 고르는 손님을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 먼지 묻은 과일
옷소매에 쓰윽 문질어 먹고 다슬기 잡아 마늘잎 넣어 국 끓이고,
감자 갈고 호박 채 썰어 부침기 만들어 먹고 싶습니다.

물건 몇천원어치 사고 카드 이것저것 고르며 빨리 결제 하라며 서두르는 손님을 대하면
자연으로 돌아가 미루나무 아래 서서 신용카드 지갑속에 책꽂이처럼 껴 놓지 않아도
현찰 두둑하지 않아도 세상 욕심은 없고 마음은 부자로 살고 싶습니다.

매장앞 가로수 나무 밑둥에 강아지풀 산들산들 자라나고.질경이 끈질기게 꽃을 매달아 놓고,
괭이밥꽃 노릇노릇 익어갈 때, 환경을 아름답게 하지 못하는 잡초라고,
길거리 지져분 떠는 잡것이라고 시청직원들이 와서 사정없이 뽑아 패대기 쳐 놓을 때면
자연으로 돌아가 담장밑에 강아지풀 실컷 재롱 떨게 만들고
오솔길가 질경이 피어나면 질경이 빗겨 걸어가고,
괭이밥 바위틈에 소담스레 올라오면 편할대로 살게 내버려 두면서
흘러가는 하늘보며,사계절을 즐기며, 잘생기지 않아도 정이가는 잡초들과 함께이고 싶습니다.

가끔씩은 집안에서 허리,다리 칙칙 늘어지게 누웠다가 우측으로 뒹굴, 좌측으로 허벌럭,
등짝 아프게 엑스레이 찍어 대고, 젖가슴이 납죽해 지도록 쉬고 싶은데...
하루종일 매장 창안에 앉아, 매일 그 시간 자판기 커피 뽑아 들고 한가로이 집으로 돌아가는,
남편이 모신문사 기자라 돈 넉넉하게 벌어다 줘서 집에서 팔자 편하게 놀고 있는 끈나시라는...
추운 겨울만 빼고 브라자도 안하고 끈만 달린 야시시한 옷을 입고 다녀서 끈나시라 함.
동네 아줌마를 볼 때면, 나도 자연으로 돌아가 속살이 다 비치는
잠자리 날개 같은 개량한복 입고 차 한잔 나무 탁자위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 팔자가 되어
자연이 만들어 논 풀꽃 투성인 앞마당만 늘어지게 보고 싶습니다.

아줌마들 여럿이 시장 보면서 우리집에 가서 차 한잔하고 가세요~~오~호호홍~~ ....
네 에~ 헤헤헤헹~~... 그러면서 팔장끼고 가는 걸 보면
자연으로 돌아가 내 좋아하는 사람들 불러 모아 맛있는 거 해 먹으며
밤새도록 얘기속에 파 묻혀 음~~하하핫~~ 으~ 흐흐훗~~
술에 취해 문학에 취해 벗에 취해 펀들거리게 놀고 싶습니다.

내가 더 좋을 걸 가지려는 손님들을 볼 때마다
한가로이 장보러 오는 팔자 좋은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열심히 매장 문 열고 닫고 해서 고향땅에 조립식 주택이라도 지을 돈만 모으면
장사똥은 개새끼도 안먹는다는 장사를 얼른 그만 두고
나무 그늘에 앉아 남의 것 더 가지려 하지 않고,
내 것에 흡족해 하는 자연을 보며, 늙어 질 때까지 조용하고 게으르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