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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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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 옥이에게


BY 섬기린초 2004-08-18

 

옥이야...

늦은 밤...밖에는 지금 비가 오고 있단다.

갑자기 집에 있는게 답답하게 느껴져서 무작정 밖으로 나갔는데 비는

청승맞게 내리고 갈곳이 없더라. 날마다 흥청거리는 연산동의 밤거리도 비가 많이 내려서 인지 다른날보다 한산한 분위기였어.

이 동네 길도 잘 모르고, 날마다 다니는 지하철 입구까지 갔다가

그냥 왔단다.

 

컴을 할려고 보니 애들이 하고 있고, 책을봐도 눈에 안들어오고,

잠을 자보려고 눈을 감았지만 잠도 안오고,이생각 저생각하고 있는데

잠깐동안 정전이 되었단다. 주변이 캄캄해지고 나는 속으로 오늘밤

전기가 안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어릴적 호롱불 밑에서, 살던 때가 생각이 나고 그러다가 너의 생각까지 하게 되었구나

 

다시 불이 들어오고 나는 컴 앞에 앉을수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너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단다

소꿉놀이 하던 그 시절을 기억하면서....

 

옥아 너도 기억하지?

언젠가 엄마가 몰랑곡에 나무 하러 가시고 나면 너 와 나는 종일 동생을 보곤 했지.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소꿉놀이를 하다가 지치면,살구받기 놀이라는 걸 하고, 또 땅을 파서는 예쁜 꽃(맨드라미,분꽃 같은거)들을 묻고 그위에 유리조각을 얹고 그 위에 다시 흙을 덮어 놓는 놀이를 하곤 했었잖아.

 

며칠뒤에 가서 흙을 살살 파 헤치면 그 속에 꽃이 묻혀 있으면 다시 흙으로 덮어두고 생각날때 마다 제자리에 있나 확인을 하곤 했는데, 어느날인가는 표시를 해놓지 않아 온 마당을 다 파 헤쳐서 외할머니한테 2박3일을 혼난적도 있었고...

 

옥아!

지금은 믿기 어려울 만큼 세상에 둘도 없는 얌전이가 되었지만 그때 어릴적에 너는 나에게 참 무서운 존재 이기도 했다

동창회때 만났을때 교회에 다닌다는 널 보면서 옛날의 옥이가 맞나?

살며시 웃는 너를 보면서 어릴적 너의 모습과 비교하니까 진짜 웃기더라. 어쩌다 그렇게 변했는지...ㅎㅎ

 

어릴적 무지하게(?) 씩씩한 너는 내 동생이 너의 동생을 한대 때렸다는 이유만으로내 머리카락을 한줌이나 뽑아 놓기도 해서 어느날엔가  너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엄마에게 말씀드렸고, 너네 집에 내 뽑힌 머리카락 들고찾아 가신 우리엄마....

ㅎㅎㅎ 그뒤로 내머리가 다시는 뽑히는 일은 없었지.

그때 우리 엄마한테 많이 혼났니? 미안해~`

 

옥아! 생각나니?

먹을것도 없던 그 시절에 늘 우리를 즐겁게 해주던건, 동생 보는 조건으로  가끔 어머니가 사주시던 건빵.  아...십리사탕도 있었구나...하얀색

사탕 아무리 깰려고 해도 안깨어 지던 사탕 말이야.

 

또, 월남방망이라고 기억나니? 황색 긴~ 핫도그 같은 모양의 사탕.

엄마가 그걸 사주는 날에는 아마 반나절은 물고 다녔던것 같다.

아낀다고...너가 침 흘리면서 쳐다보면 한번 빨아 먹게 하고 또  내가

빨아먹고 사탕을 다 먹고 아무것도 없는 막대기도 빨아먹고...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지...

 

건빵도 많이 먹었잖아

건빵을 한개 다 입에 넣는 것이 아까워서 우린 그걸 반으로 쪼개서 먹었고,건빵이 열개면 스무개를 만들어서 아껴 먹었던거 기억하지?

건빵속에 들어 있는 별사탕 맛은 아직도 잊을수가 없단다.

그런데 너는 항상 나보다 빨리 먹고는 내 먹는 모습을 군침을 흘리고 보는바람에언제나 몇개씩을 너에게 주곤 했었다.

나도 아껴먹고 있었는데...

 

어떤땐 내동생이 빨아먹던거 뺏아 먹던 니가 너무 싫어서 다시는 안놀겠다고 삐져서 집으로 가곤 했지만 다음날이면 언제 그랫냐는듯 우리는 또 붙어서 놀았잖아

 

언제나 너는 아빠고 나는 엄마가 되어서 소꿉놀이 할때, 나는 그때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너에게 항상 먹을것을 만들어" 여보 드세요" 하면서 바치곤 했지.

얌얌얌...너는 언제나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하고...

 

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날마다 새로운 요리를 만들곤 했지.

봄이면 장구풀을 연필칼로 다져서 흙이랑 반죽해서 부침개 만들고 그위에다 연보라색 작은 장구풀꽃 뿌려주면 참 예쁘고 맛있는 부침개가 되어 있었지.

 

여름이면 텃밭에 정구지를 베어 황토 흙이랑 반죽해서 조개껍데기에 가득담아 예쁘게 올리고, 태풍때 새바지로한걸음에 달려가 떠내려온 멍든 풋사과를 먹든날은 너무 행복해서 아무 생각도 없었지.  태풍이 간 뒤에는 우리의 살림은 늘 새로운것 으로 바뀌었었지. 떠내려온 후라이팬,양은 남비 등으로 ...

언제나 잊지 않고 상옆에 장식하는건 버들강아지  뽑아서 빈농약병 깨끗이 씻어서 한가득 꽂아놓고 날마다 새로운 요리들로 한상 가득 뭔가를 만들어서 너에게 주던 생각이 난다.

 

어느날엔가는 니가 넘어 져서 무릎이 다쳐서 피가 나는날이었지.

문득 생각난것이  노름쟁이라는 노린내가 나는 풀이 있었는데 엄마가 무픞이아프다고 붙이시는걸 본것이 기억나서 나는 정래집 텃밭으로 단숨에 달려가 노름쟁이를 뜯어와서는 돌로 찧어서 너의 무릎에 붙여주었는데 가만히 있던 니가 갑자기 무릎에 붙은걸 때어내서는 나한테로 던졌지

노린내 난다고...

그뒤로 나는 너에게 다시는 그런일을 안했던것 같다.

물론 한 며칠은 삐져서 우린 모른척 했을테고...

 

옥아! 이건 기억나?

우리집 쌀독에 쌀이 가득찬 어느날에 배가 고프다는 너에게 나는엄마몰래 살짝  아기포대기에 달려 있는 주머니에 쌀을 가득담아 주었지.

물론 내 포대기에도 쌀을 조금 넣고...우리는 입이 아프도록 쌀을

먹었잖아.

 

땅거미가 질무렵 너의 엄마와 우리엄마 산에서 나무를 이고 오실때 쯤에

우리 입에는 아무것도 없었지.

완전범죄를 꿈꾸면서 아무것도 안먹은척 ....

 

그런데 일은 터지고 말았지

나뭇단을 내려놓은 너희 엄마와 우리엄마는 마루청에 앉아서 나란히

아이들에게 젖을 먹일려고, 업은 포대기를 풀어주는 순간,

주르르 흘러내리는 쌀들....그때 나는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지.

나는 쌀독에서 조금만 꺼냈기 때문에 남은 쌀도

얼마 없었지만 너의 주머니에서는 쌀이 제법 많이 쏟아졌잖아.

우리는 간이 콩알 만 해져 있었지.

 

엄마는 내게 눈을 흘기셨고, 난 그때 처음 엄마가 무섭다는걸 느꼈어

말없이 동생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옆에서 심장 졸이고 있었는데

왜 자꾸만 오줌이 마려운지 ㅎㅎㅎ

 

너의 엄마랑 너랑 사라지고 난 후 나는 그때 얼마나 혼이 났는지 아니?

아마 처음 으로 머리통을 한대 맞았던것 같다.

한대만 때린 우리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천사표 엄마였던거 같다.

지금 내가 그때 엄마 였다면 그렇게 한번만 쥐어박고 용서했을까....

그때는 어려워서 보리밥에 쌀한줌 얹어서 밥하던 시절인데 그런

간이 큰 짓을 했으니 맞아도 싸지.

 

 

옥아!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나네...

너도 가끔 옛날 생각하고 그럴까?

봄이면 바늘에 실 꿰어서 감꽃 목걸이며, 팔찌며, 반지 끼고

여름엔 또 클로바 꽃으로 예쁜 목걸이 하고, 머리띠가지 만들어서 송아지마냥 뛰어놀던 그때 그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우리

각자 삶을 충실히 산다고 점점 서로를 잊고 사는 우리

사는게 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건지 모르겠구나

 

옥아!

우리 맘 속에 어릴적 반딧불 잡고, 송사리 잡고,여름이면 폭포에서 빨래하고 저수지에서  수영하면서 놀던 생각 잊지 않고 있겠지.

종아리에 붙은 거머리 아무렇지도 않게 떼어내 주던 너가 정말 그리운 밤이다.

 

호롱불 아래서 행복했고, 호야등,남포등이 있던 시절엔 더 행복했고,

자가 발전기로 돌려서 자정까지 삼십촉 백열 전구 아래 서는 더 많이

행복했고,지금은 온통 밤 인지 낮 인지 분간할수 없을 정도로 밝은

불빛아래 살면 엄청 많이 행복해야 할텐데 왜 나는 자꾸만 호롱불 아래

그 시절이 그리워 지는걸까?

 

어릴적 단발머리 네가 이렇게 그리워 지는 밤.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옛생각에 젖는다.

보고싶다 그리운 내 소꿉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