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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 중 할머니 부고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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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03

유리벽


BY 라라1 2004-07-27

십년만의 더위라더니 앉아 있기도 서 있기도....

눈은 열풍 땜에, 목은 또 왜 아기처럼 가누지도 못하겠는지...

아들 녀석은 이 더운데 햄버거를 먹으러 가자고 보챈다. 빙과도 아니고.

다,다,다들 상식이 아니다.

밤 열시가 넘어도 패스트푸드점은 막 닻을 올린 듯 와글 와글 하다.

안에는 더위를 식히러 엄마따라 온 꼬맹이들이 시린 이를 혀로 훑으며

달콤하고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잘도 녹인다.

아이는 햄버거를, 나는 하얀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간지르고 있었다.

가장자리 창가엔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거리가 좋다.

두꺼운 유리는 저들과 나를 편가르고 있듯 나는 당당한 어깨로, 저들은 곧

쓰러질 듯하다. 지나가는 차들을 초점없이 바라보고 그렇게 아이스크림은

녹아지고 바싹한 과자만 남았다. 찬 전율은 전설처럼 사라지고 있다....

얼핏 비녀꽂은 노인의 얼굴이 불쑥 올라왔다 내려간다. 전설의 고향 외딴집

할머니처럼.바로 저편세상 가장 가까운 곳에 그 노인이 과일을 몇바구니 지키고

앉아 있다.눈아래, 발밑에  있었다.

유리벽은 이렇게 세상을 한서로, 고금으로 떡허니 가르면서 위력을 과시했다.

'아.. 저 노인에게 아이스크림을 권해볼까. 밖은 무지 더운데...'

창가에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쑥스럽기도하고, 어울리지 않는 행동같았다.

그래서 앉아서 잠시 생각해 본다. 열한시가 다가오는데 팔리지 않은 과일들 앞에서

왠종일 열풍을 가녀린 노구로 버텼을 걸 생각하면.

작은 간섭을 한다.

-- 자식들이 누구길래 어미를 이 시간까지 저렇게 ....

평소에 길가다 본 낯익은 할머니다. 꼭지 떨어진 수박이지만 맛은 그만이다면서

발목을 잡던,못생겼지만 꿀맛이 난다는 삐닥한 복숭아들을 한바구니 권하던,방금

깐 보랏빛 껍질이 더러 붙은 마늘 한종지를 꼭 김치담그는데 넣어보라고 오며 가며

잡던 그 할머니다.

햄버거를 먹고 있는 아들의 손목을 잡으며 밖으로 나왔다.

모퉁이 한켠엔 손수레가 빈 소쿠리를 몇개 싣고 주인이 빨리 마치길 기다리는 듯...

"아. 맛있겠다. 이건 얼마에요." 순간 여기 저기 나같은 아줌마들이 거짓처럼 몰려 들었다.

너도 나도 한바구니씩. 동이 났다.

아들과 나는 쪼그리고 앉았다가 일어나려니, 그 할머니 왈," 이거 그냥 2천원에 가저 가소

새댁이". 못생기고 조금은 맛없어 보이는 토마토 한바구니.빈 바구니 뒤에서 숨어 있다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얼굴이었나보다.

"예, 주세요. 낼 아침에 갈아 먹으면 좋겠네요."

까만,주름진 얼굴이 화들짝 일어나면서 웃는 입속엔 하얀 성근 이들이 지나가는 불빛에 반짝였다.

" 할머니, 자식들 너무 생각지 마세요."

아들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 저만치 오는데. "새댁이. 고마부이. 이거 집에 애들 줘"

손수레에 있던 못생긴 빨간 복숭아  너댓개. 한사코 까만 봉지를 맡기는 그 누구의 엄마.

 지금은 한낮의 더위를 식히며 잠들고 계실 시골의 울엄마가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