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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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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만난 남편


BY 개망초꽃 2004-07-14

재작년 이혼을 하러 가던 날 길가엔 여름 코스모스가 하느적거리고 있었다.
때 이른 여름 코스모스 꽃을 보며 코스모스가 가을에만 피는 것이 아니구나...
이혼도 할 사람이 따로 있고 안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이혼을 하고 그 장소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때 이른 코스모스를 다시 보며 내가 홀로 되어도 꽃은 급하게 피고
버스는 목적지를 정해 놓고 달려가고, 사람들은 자신만을 위해 웃고 떠들고 걸어가는구나...

아이들은 어떻게 할거야?
당신이 키워.
어디가서 살지?
친정있잖아.
생활비는?
자리잡으면 보내줄게.
남편과 나의 마지막으로 주고 받은 대화였다.

9월이라는 가을 초입, 살던 집은 남편 빚으로  넘어가고
갈 곳이 한군데 밖에 없어 친정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들어왔다.
평수 좁은 복도 아파트 화단엔 벚나무 잎이 발그스레 가을이 스미고
자주색 소국이 막 피려던 참이었다.

삼년전에 친구가 그냥 갖다 준 멀건이라는 늙은 개 한 마리를 안고
고등학생인 딸 아이 초등학교 일학년 때 사 준 낡은 책상 하나와
십년동안 키워 온 사랑초 화분 네 개랑 이년전에 산 폭신한 천쇼파를 이사짐 차에 실고
남편 말 고분고분한 잘 듣는 여편네가 되어 친정으로 이사를 왔다.

겨울이 지나고 다시 이른 코스모스가 피는 여름이 되었어도 우린 서로 연락을 안했다.
아이들하고도 연락을 끊은 줄 알았었다.
아이들도 아빠 이야기를 안 하길래 조금씩 상처는 덮어지고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느슨해 지는 줄  알았었다.
그러나 큰 아인 핸드폰으로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 있었고
헤어진지 일년만에 초등학생인 아들은 아빠에게 전화를 해서는
눈물을 흘리느라 말도 못하더라고 엄마도 같이 눈물을 흘리며 내게 전해 주었다.

아이들은 아빠를 만나기 시작했다. 일년만에...
술을 먹고 나에게 가끔씩 전화를 해서
그렇게 냉정하게 소식이 없냐고 도리어 큰소리를 쳐댔다. 남편이었던 사람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도 나오길 바랬나보다. 이미 끝을 맺었는데 부질없는 짓이지...

또 일년이 흐르고 꽃을 좋아하시는 경비아저씨가 심어 논 코스모스가
때 이르게 꽃을 피어 물었다.
비가 많이 오고 아이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아빠를 만나는 날이었나보다.
"엄마? 시간되면 아빠가 나올 수 있냐고 하는데..."딸아이는 끝을 흐리며 가게로 전화를 했다.
".....음....글쎄..."나도 따라 끝이 흐려졌다.
지금 일하니까 이따가 다시 전화하라고 하며 끊었다.
만나서 뭐하나? 잘사냐고... 나도 잘산다고 할까? 너무 힘들다고 생활비를 보태달라고 하면?
가게 앞이라고  딸아이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래 못 만날게 뭐람'
퇴근 준비를 하며 손 끝이 떨리는 걸 알아야했다.
가슴에선 나도 알 수 없는 한숨이 쉬어졌다.
부슬비가 오는데도 우산 챙기는 걸  잊고 가게앞 사거리로 나갔다.
맞은편 횡단보도에서 아들아이가 팔을 흔들어 댔다.
"저기 까만 옷이 아빠야."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남편의 실체를  알려 주었다.
깜박이는 차 뒷꽁무와 까맣게 서 있는 사람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우린 오래된 친구처럼 악수를 했다.아니 남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언제나 거칠고 작은 손이었는데... 순간 스치는 과거의 기억 한 토막.
"잘 있었어?"
"응,좋아보이네."
살이 쪄 있었고 깔끔하게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어디로 갈까?
음 ..아무대로나...
많이 힘들겠다?
사는게 그렇지 뭐...저기 갈까? 장흥쪽으로 조용한 카페... 요즘 못가봤으니...
늦은 밤 거리는 어둡고 비는 질척이며 계속 내렸다.
뒷 좌석에서 아이들은 뭐라 뭐라 떠들고
남편은 아이들 소리따라 웃기도 하고 나를 슬쩍 쳐다보기도 했다.
그 옛날 아이들 어릴적에 주말이면 이곳에 오곤 했었다.
풍차가 있고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피자집에서 피자도 먹고
둘리공원에서 회전목마를 태워 놓고 한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올 때면
손을 들어 엄마 아빠임을 우리 아이들임을 상기 시키던 회전목마에 대한 짧은 기억 또 한 토막.

장흥 제일 꼭대기에 있는 카페로 갔다.
그러나 너무 늦어서 카페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뒤돌아 아래로 내려와 불빛이 요란하게 휘감아져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남자와 남자끼리 여자와 여자끼리 자리를 마주하고 앉으니 안정된 숫자 넷이었다.
세바퀴로 삐그덕 거리며 불안전하게 걸어가던 길을
넷이 의지하고 걸어가면 대칭도 맞아 덜 버거운 길이었을테지만...
난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하지 못한 책임감을 느꼈다.

그냥 웃었다.아이들이 그냥 웃었고 남편이 그냥 웃었다.
별 말은 그리 없었다.아이들도 남편도 나도 할말은 없었다.
지금에 와서 원망도 후회도 해봤자 소용없는 짓임을 우리는 안다.
내년에 대학가는 딸아이 입학금은 마련해 준다고 했다.
내년쯤에 친정에서 나와 전세방이라도 얻으라며 보태준다고 했다.
월급 받도 있다고 하길래 그래 돈관리를 못하는 사람은 사업보다는 월급쟁이가 현명한거지...
빚은 다 청산했고 카드빚만 남았다고 하길래 그래 정신차려 살아야지...
아들 아이는 아빠한테 딱 붙어 떨어질줄을 몰랐다.저렇게 아빠가 좋을까...
딸아이는 연실 투덜거리면서 할머니랑 살기 싫다고 당장 이사가고 싶다고 했다.
저렇게 철이 없을까...준비가 되어야 이사를 가지...

생활비를 준다며 통장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길래 돈 없을텐데 관 둬 했다.
핸드폰 사준다고 하길래 천천히 사도 된다고 했다.
아이 둘은 아빠가 사준 나이키 운동화를 꺼내 끈을 끼고 있었다.
"비싼 운동화는 왜 사 줬어" "운동화가 새서 다 젖었더라"
"비가 많이 오니까 그랬지 뭐.싼거나 사주지..."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은회색 나이키 운동화를 처음 신어보는 착하디 착한 아들아이.
날아 갈듯한 빨간색 운동화를 신었다 벗었다하는
내년이면 성인이 되지만 철딱서니 없는 딸아이.
신용불량자가 되어 여관방에서 살고 있는 불쌍하면서도 한심스러운 전남편.
그걸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보고 있어야하는 무덤덤한 나.

돌아오는 길가엔 장마비가 기승을 부렸다.
아들아이는 운동화를 담은 쇼핑백을 손목에 낀채로 잠들어 있었고
딸아이는 친구에게 문자를 열나게 보내고 있었다.
내일 전화할테니 통장번호 갈켜 주라고 했던가...
어디로 전화를 한다는 건가...핸드폰은 망가졌는데...
수퍼일 많이 힘드냐고 했던가...안 힘든일이 어디 있던가...진작 정신차려 살면 좀 좋았어...

넷이었던 가족은 다시 조각나 흩어졌다.비가 땅으로 떨어져 흩어졌다.
어두침침한 나무 그늘밑으로 셋은 걸었다.아이들 마음도 나처럼 착잡하리라.
어쩌면 나보다 더 착잡하고 가슴 한켠이 울컥이리라.
혼자서 돌아서 가는 남편은 더욱 더 심하게 흔들리고 있으리라.
조각나 떨어져나간 외로움 앞에선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