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에서 스페이츠을 거쳐
저녁무렵
융푸라우관광 거점마을,인터라켄에 도착했습니다.
사방으로 높고 장대한산이 둘러서 있고
공기는 달고 시원했습니다.
숙소로 들어가기전 융푸라우로 오르는 기차표를
먼저 예매하기로 했지요.
십수만원씩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표값이었는데
20명이상 단체 여행객일 경우 많은금액이 할인되고 한명은 공짜라더군요.
표를사는곳에는 베낭여행을 하는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학생들을 모은다음 단체여행표를 사서 나눠가졌습니다.
햐! 기분좋았습니다.
뭐든 남보다 싸게 사는건 기분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조기 귀퉁이에다가 책상하나 놓고 표장사 해도 되겠다."즐거워하며
껌껌해진 길을 걸어 숙소를 찾아갔습니다.
서늘한바람이 설렁설렁
하늘엔 별이 반짝반짝
나뭇잎들은 팔랑팔랑
교회당 네온사인은 깜빡깜빡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새처럼 지저깁니다.
"야, 우리 설악산에 MT온거 갖지 않냐?"
"그러게말야, 맨 한국사람밖에 없어."
정말 그랬습니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들
식수대에서 물병에 물받는 사람들
식당에서 무언가 먹는 사람들
거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었습니다.
숙소에 들어
작은 꽃무늬가 촘촘한 침대 시트위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창문을 통해 밝은햇빛이 들어오는 아침,
하이디처럼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씻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오렌지 쥬스,커피,검은빵, 딸기쨈과 포도쨈
아침메뉴로 이게 다인 진짜 소박한 식단이였습니다.
아침을 먹고
겨울옷을 챙겨 길을 나섰습니다.
제일 앞에 아빠,다음에 둘째, 막내, 첫째, 제일뒤에 엄마
이렇게 한줄로 주욱서서 가로수아래 인도로를 따라 걷는데
지나가던 여학생들이 고개를 젖혀가며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 받더군요.
"야, 여기는 모과도 진짜 이쁘게 생겼다. 그지?"
"정말, 동글동글한게 예쁘네."
저도 고개를 들어 가로수를 쳐다보니
어머! 거기에 탁구공만한 호두가 주렁주렁 달렸네요.^*^
하긴 도시에서 자란 학생들이면
우굴쭈굴한 호두가 나무에 달려있을때 그렇게 귀여운 초록색 공모양이라는걸
무슨수로 알겠습니까?^*^
융푸라우로 가는 빨간 기차를 탔습니다.
스위스기차는 죄다 빨간색이었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알프스산을 오르는 기차,
처음엔 울창한 침엽수림과 계곡을 지나고
다음엔 갖가지 색깔의 풀꽃이 피어있는 언덕을 느릿느릿 오르고
다음은 돌산을 뚫어 톱니바퀴 철도를 놓은
캄캄한 터널을 지나며
두번을 더 갈아타고 두시간을 달려 융푸라우 꼭데기에 다다랐습니다.
얼음궁전,기념품가게,레스토랑을 거쳐
전망대에 오르니
마치 하늘에 올라선듯 했습니다.
눈쌓인 산을 굽어보며 사진찍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면 발바닥이 자꾸만 간질거렸습니다.
산소부족으로 머리가 띵하고 도무지
내가 나인지 아니면 내몸에 다른 사람의 뇌가 들어와 있는건지
분간키 어렵게 멍 해지더군요.
배고픈 아이들에게 아침에 슈퍼마켓에서 사두었던 카스테라빵과
오렌지 쥬스를 먹였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기 어려워
서둘러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사람들 모두 다 병든 닭모양 꾸벅꾸벅 졸고들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산증중 하나인가봅니다.
톱니바퀴 기차에서 일반기차로 갈아타는 돌산이 끝나는곳에서
저희가족은 알프스산을 걸어서 내려오기로 했습니다.
그건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푸른하늘, 흰구름, 유유히 날아 내리는 빨강 노랑 파랑색 스카이 글라이더들
아름다운 풀꽃들, 제랴늄꽃으로 장식한 나무집들,
건초더미를 쌓는 아저씨,자전거를 타고 산을 오르는 구릿빛 청년들
풀뜻는 염소한쌍,아름다운 풍경이었습니다.
길을 따라 내려오며 애들과남편은 웃고, 장난치고, 떠들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그림같은 중산마을을 가로질러
장난감같은 기차는 뛰뛰빵빵 기어가고
저는 별같고 방울같은 풀꽃들을 따 책갈피에 끼웠습니다.
내려오다 둥근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알프스의 눈이 녹아 내렸을 시린 냇물에
세수하고 손도씻고
젊은엄마가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네다섯살쯤되보이는 아이둘을 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우리옆을 지나 산위로 올라갔고
아빠와 어린아들 둘이 산아래로 뛰어내려가는걸 보고.
차와 샌드위치를 파는 카페를 지나
붉은꽃과 보라색꽃이 잘 가꾸어진 집 몇채가 서있었습니다.
그집앞 커다란 통나무에 홈통을 파서 만든 물통
꼭 소 구유같은곳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열살쯤 돼 보이는 오빠와
두어살 아래로 보이는 여동생이 물장난을 치다가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오빠가 동생에게 물을 퍼붓고 동생은 앙앙 울어제치고
엄마가 문열고 나와 뭐라뭐라 악을 써대고
오빠아이는는 펜티바름으로 도망치고...
애키우며 사람사는모습은
어디나 다 비슷하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융푸라우에 가시거든요... 꼭 산중턱에서 내려 걸어보세요.
그많던 우리나라 사람들 걸어오는 구간에서는 한분도 못만났는데요..
산꼭데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행복한 시간이 될것입니다만
저희는 그좋았던 기분이 저녁을 먹으며 홀라당 깨지고 말았답니다.
아침점심을 제대로 못 먹고 산길까지 걸었으니 얼마나 배가 고팠겠습니까.
해서 그날 저녁은 돈을 좀 쓰더라도 근사한걸 먹기로 했습니다.
뽕듀,고기나 빵을 뜨거운 치즈에 담갔다 먹는
유명한 스위스 요리 뿅듀,그걸 먹을까? 했더니
애들이 다 듣기만해도 느끼하다고 싫다는것입니다.
시원한 우동을 먹고 싶다는데 우동집은 보이지도 않고
인터라켄에서 꾀 알려졌다는
중국식당으로 갔습니다.
비쌌지만,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었습니다.
볶음밥에 볶음국수,닭국물 국수에 닭구이, 모처럼 인간답게
먹고 나서 계산서를 들여다보던 남편이 갑자기
카드로 산 서울-유럽 왕복, 우리가족 항공료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그말에
좀전까지 온몸에 가득했던 알프스의 낭만과 행복이 휘리릭 사라지면서
'아, 앞으로 뭘해서 먹고 살건가, 뭘하고 살건가?'하는 걱정이
집채만한 파도가 되어 아득하게 밀려오는것이
화까지 나려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둔지 서너달쯤 된 상태에서 떠났던 여행,
잠시 잊었던 삶의 문제가 태산같이 마음을 눌러대고 있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니
둥근 달이 높은 알프스산위로 둥실 떠 올랐습니다.
에드벌룬처럼 커다란 달님이.....
"♪♬ 행복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는거
괴로움은 모두 저강물에 버려요..♪♬"
조그맣게 노래를 불러봐도
쉬이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