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여유롭게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시간에 대한 여유지 정신적인 여유는 아니라는 걸 말해야 겠다. 잠이 깨면 언제나 난 생각들로 뒤얽힌 실마리를 어디서 풀어가야 할지 몰라 버둥버둥 거리다 마지 못해 편치못한 몸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 이 끝없는 불안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팔자라는 말을 끌어오지 않고서는 감당해 낼 수 없다. 어쨌든 그렇게 늘상 하루가 시작되고 또 마감되는 것이다.
남편과 좋지못한 상황에서 하는 시집살이가 편할 수 있을까? 어른들의 인격을 들먹거리자는 게 아니라 나 스스로 자격지심과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에서 오는 압박과 세대차이에서 오는 불협화음이 늘 장마철의 눅눅한 습기처럼 온 집에 베어있다. 더구나 예민한 내 성격이 불을 지펴 더욱 가슴에 돌덩이 하나 얹어놓은 듯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내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고 더구나 아이들이 견뎌내고 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감사하며 살 수 밖에, 이 모든 상황을 그저 고맙게 여기며 살아갈 밖에 무슨 도리 있으랴 싶어.속은 바윗덩이 하나 끌안고도 겉은 안그런척 살아가야 하는 하루가 언제까지 가능할런지.
아침부터 시어머니는 큰소리로 무엇이 또 못마땅한지 옥상에 신발을 널고 내려오는 내게 다시 가서 가지고 오란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무슨 힘이 좋아 신발까지 옥상에 널러 다니냐며 당장 올라가서 들고 오란다. 이왕 널은 거니 물끼라도 빼서 오후에 걷어 오겠다고 했더니 그제서야 잔소리를 멈춘다. 옥상에 간 사이에 딸아이랑 내내 말실랑이를 벌였나보다.딸아이는 내 팔을 잡아 끌고 가더니 할머니가 신발들고 내려오하고 난리를 쳤다며 속상해한다. 딸아이 성격도 만만찮아 할머니 잔소리를 묵살해 버렸나 보다.
몸이 바지런하신 시어머니는 아침부터 남편의 운동화와 시아버님의 운동화를 빠셨다. 어제 우리 아이들 운동화만 빨았더니 그게 화가 났는지, 아님 어제 저녁 늦게 귀가한 남편의 밥을 챙겨주지 않았더니 그게 속이 상했던지 아침부터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는 거였다. 나는 친정에서 막내딸이어서 그런대로 애교도 많 은 편이라는 소리를 곧잘 듣는다. 그런데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앞에서는 입이 다물어지고, 하루종일을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쉽게 뱉질 못한다. 특히 마음에 남편으로 인하여 고인 섭섭함이 더 정을 떼어버리게 만들었다. 언제나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남편의 역성만 드는 어머니. 더구나 어렵게 대구살이를 시작한 우리 아이들에게 푸근한 마음 한 자락 내 비치지 않은셨던 어머니였기에 어머니를 향한 섭섭함은 뿌리가 깊을 수 밖에 없다.
오후에 외삼촌댁 농장에 갔다오신 어른들은 큰 자루로 몇 자루 자두를 가져오셨다. 남편이 유난히 좋아하는 자두다. 어머니는 자두를 한 소쿠리 가득 부어 놓으시고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이거 작은 아네 조금 주고,우리 아-들 실컨 먹이게 아무도 주지 마소"
"이거 내가 나무에 올라가 직접 딴 거라 깨끗하다. 야들아, 실컨 먹으라"
컴퓨터에 앉아있던 아들과 거실에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던 딸이 달려들어 제일 큼직하고 잘 생긴 붉고 싱싱한 자두 한알씩을 덥썩 집어들고서 깨물어 먹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할마녀라 부르는 우리 아이들, 언제나 잔소리와 신경질로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고 하여 아이들이 붙여놓은 별명으로 우리 세식구 사이에 통하는 은어다. 그러나 할머니의 한마디에 우리 세식구는 괜히 그 별명이 미안해진다. 그래서 더 쩝쩝 큰소리내어 맛있게 자두를 먹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한식구가 되면 미운정인지,고운정인지 애매모호한 한솥정이 드는건지 모른다.
어쨌든 나의 시집살이, 아니 우리 아이들의 할마녀살이는 언제까지 계속될 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