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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여성이 예수 역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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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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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바다에서~~


BY 동해바다 2004-06-20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윈도우 블러쉬의 움직임이 바빠진다..
   미쳐 빠져 나가지 못하는 흙탕물이 해안도로를 점령하고 있다.
   앞서가던 차가 멈추어 오도가도 못하고 뒤이어 오는 차들도 우선멈춤으로 
   굵은 빗줄기를 모두 받으며 기다린다.


   잠깐 눈붙인다는 것이 오전내내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정도로 쇼파에서 
   헤매이다 천둥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아침 나절에 주춤했던 빗줄기가 어느사이 굵은 장대비로 변하여 하수구로 
   빠져나갈 틈도 주지않고 고인 물들이 점점 더 불어가고 있었다.


   "안되겠다 나가자"

   마냥 퍼져 있을것만 같은 몸뚱아리를 바닷가로 옮기자며 남편이 먼저 
   주섬주섬 옷을 챙긴다.
   항상 내 발길에 동행을 하며 기꺼이 기사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주고 있는 
   남편이 늘 고맙다.

   습관처럼 되어버린 남편과의 드라이브가 남들의 눈에 사치처럼 보일까 
   두려운 비 내리는 날이다.

   황토색의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청정한 동해바다는 어디로 가고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토사가
   빗물과 함께 바다색을 바꾸고 있다.
   인접한 숲 초록잎새들은 한여름을 치뤄내기 위한 채비를 일찌감치 찾아온 
   태풍을 동반한 비에 아프도록 맞아가며 신고식을 단단히 하고 있다.

   바다를 지나면 아주 작은 간이역이 보인다.
   비에 젖어 외로움 가득해 보이는 간이역....
   비내리는 역사가 오늘따라 주변의 노오란 금계국과 함께 나를 유혹한다.
   차에서 내려 꼭 한번 들어가봐야지 하면서 지나치곤 했던 역사였다.

   "내릴까?"

   내 말에 남편의 발은 이미 악세레이타로 옮겨지고 있었다..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내 삶의 간이역
   그 간이역은 어디쯤에서 만날수 있을까...
   살면서 지나왔을 나의 간이역이 언제 어디쯤이였는지 기억에도 없다.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아 종착역까지 이른다면 얼마나 좋을까.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터좋은 곳에 집 한채가 자릴하고 있다..
   마당 넓은 허름한 그 집 텃마루에 할머니 한분이 나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듣기에 치매걸린 할머니라는데 오늘은 텃마루에 의자를 갖다놓고
   의젓한 자세로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오는차 가는차 하나 놓치지 않고
   차꼬리를 잡는다.

   "이상해...할머니가 안보이면 걱정이 되니..."

   그랬다..
   할머니뿐만이 아니고 늘 그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들이 눈에 뵈지 않으면
   그 허함에 자칫 놀라곤 한다.


   자그마한 반달모양의 해안은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가는 해수욕장이다.
   나에게 맞춰가며 시나브로 변하여 가는 남편은 각도를 잘 잡아 좋은 위치에
   차를 주차한다.
   감상적인 나를 위한 배려에 또 한번의 고마움이 일렁인다.
   이런 남편과의 데이트가 일상사가 되어가고 있는 요즘...
   지난 날의 과오쯤이야 세탁기 속에 넣고 비틀고 짜고 헹구어 놓은 말간
   빨래처럼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다.

   깨끗해진 빨래처럼 기분좋게 입을수 있는 남편이라는 옷은
   세제처럼 때론 물처럼 빨아줄 수 있는 아내의 이름으로 있는 나와 함께 
   점점 해무로 가득해진 바다를 남기고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온다.


   루사와 매미가 휩쓸고간 상처가 아직도 남아 치료를 하고 있는 와중에
   다시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디앤무라는 요상한 이름의 태풍이 또 한차례 광풍을 일으키려 한다.

   난생 처음으로 재해구역으로 선포된 도시의 수재민이 되어
   식수 한 통 받기 위해 아비규환속에서 허우적대던 난리통이 엊그제같은데 
   디앤무의 행로가  아무 피해없이 통과해 나갈지 걱정이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