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568

그 여자


BY 라메르 2004-06-11

 

그녀는 올해 마흔 여섯이라 했지요.

마흔 여섯의
삶의 언덕을 오르며 그리 마음에 담아 두지 않고 살아
가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죽음.
그런 것이 아닐까요?

마흔 여섯. 
아직은 삶의 줄기가 싱싱하다 여겨 지니까요.

그녀도 그렇게 생각했었나봐요.

얼마전까지 만 해도 그녀는 밤 늦도록 부업을 했지요.
남편이 벌어 들이는 돈에 자신의 노력을 보태서 집 장만을
해야 했으니까요.

집을 계약하고서 이삿짐을 꾸리면서 이삿짐보다 더 큰 꿈을
꾸었었는데...
행복이 이런거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행복에 흠집을 내고 말았습니다.

삶이 행복하다 방심한 사이 불행은 도적처럼 틈새로 들어와
그녀의 평화로운 삶을 휘젖어 놓았습니다.

그 불행의 이름이 폐암 4기라는 구체적인 이름으로 그녀 앞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자신의 생을 얽어 놓는 올가미 앞에서
거부하다..분노하다.. 수용하기까지 상당한 아픔을 겪었다
합니다.

그녀를  만난 어제.
그녀는 내 친한 동생의 올케 언니라는 이름으로 나와 마주하게
되었지요.

가끔씩 쏟아 내는 기침소리나 약간 빠진 머리털외엔 그녀가
환자일꺼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엔 미소
가 묻어 있습니다.

그때 난 미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얼른

둥글레차를 내 놓았지요.
차 이름처럼 둥그렇게 생긴 그녀가 따끈한 둥글레차를 마시며
자신을 친 자매처럼 돌봐주는 시누이 손을 잡더니 난 우리
고모 때문에라도 오래 살아야 돼요 하며 말문을 열더군요.

찻잔을 빠져나간 수증기가 그녀의 눈가의 이슬과 만납니다.
그 이슬은 그녀의 시누이의 눈가를 거쳐 내 눈가에도 닿습니다.

눈이 더 젖어 들기 전에 서둘러 창고를 향했지요.
그네들이 부탁한 오래 된 사자발 쑥 다발을 꺼내 놓고 이놈의
먼지하며 눈가를 닦을 수 있었지요.
사자발 쑥이 암에 좋다는 한방병원의 얘길 들었다는군요.
병이야 낳는다면 그것 못주랴 싶어 큰 봉지에 가득 담아 꾹꾹
넣어 줬지요.

큰 봉지를 들고 돌아서 가려는 그녀의 뒷꼭지가 서글퍼 나는
그네들을 불러 세웠지요.

딱히 줄 것 마땅치 않은데 무언가를 주고 싶은 그런 마음있잖아요?
다행히 대문을 벗어 나는데 대문앞 작은 텃밭 가장자리에 빨간
산딸기가 앙증 맞게 있는 거예요.

그녀는 두 손을 모아 내 앞으로 내밀고 있고 나는 가시가 팔을
찌르는 숲을 헤쳐 빨간 알갱이를 따기 시작했습니다.
가시 숲 사이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언듯 보였습니다.

어느새 그녀의 손바닥엔 산딸기가 가득합니다.
가시에 찔려 아프겠네 하는 그녀는 내 손을 걱정스레 잡아주었는데
사실 가시보다 뱀이 나올까 무서웠어요 하는데....
그녀는 고마움에 대한 답례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지요.

"옛날에 아버지와 아들 며느리가 살았어요.
어느날 시어머니의 첫 제사가 돌아 왔지요.
분주하게 상을 다 차린 며느리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아버지가 나타
나질 않자 아들 며느리 아버지 찾느라 법썩을 떨었지요."

이때 따르릉 전화가 옵니다.
그녀의 남편인가 봅니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는 "아~ ~ 아버지 어디 계시냐구?"
"병풍뒤에서 쟁반에 앉아 계신다고 했잖아. 하 하."
"참 당신 그얘기 빼 먹었나봐?"
"니 어메는 평상시 고기, 과일, 생선... 좋아하는거 별로 없었데이 
나를 좋아 했제. 자 제수 대신 날 얹어라."

그녀는 내게 들려 주던 이 이야기를 슬픔에 잠긴 남편에게도 들려 준
모양입니다.
그 남편은 아픈 아내를 생각하면서 일터에서 그 이야기를 또 누군가
에게 들려주다 생각이 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아내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듣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내일 그녀는 늑막에 고인 물을 빼어 내는 늑막천자를 받으러 병원에
간다는 군요.
그리고 세포의 이상 증식이 심해 불룩해진 폐주변에 항암치료제
투여도 함께 받는다는 군요.

돌아서면서 씨익 웃는데 저 미소가 마지막이 아니길 바래 봅니다.

그녀를 그리워 매 시간 마다 전화를 거는 그녀의 남편이 있는데...
아직 미 성년자인 그녀의 아들이 있는데....
그녀가 쪼들릴까봐 집집이 삼백만원씩 돈을 걷어 건네 준 4명의
착한 시누이들이 있는데....
며느리의 몸에 좋다면 어디든지 달려가 무엇이든 가져 오는
시어머니가 계시는데.....
무엇보다도 그녀의 나이 이제 마흔 여섯...  생의 줄기가 아직 너무
도 싱싱한 나이 이기 때문에.....

.

.

.

그녀가 더 살아야 할 이유가 아직 너무너무 많은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