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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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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김치 순두부


BY Dream 2004-06-03

어느날 
친정아버지께서  말씀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야, 그 김치 순두부 한번 먹었으면 좋갔다."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입니다. 육이오때 월남하신
아버지께서는 가끔 고향의 과일이며 해산물, 
그 풍성한 먹거리들을 고향의 부모형제만큼이나 그리워 하셨습니다. 

"야, 우리게는(우리고향에는) 만두송아리 하나가 손바닥만 해서. 
인절미 한쪽이 주먹댕이만 하구 
우리게는 시루떡 하나 두께가 이만해서."

하시면서 두손바닥을 벌려 큼지막한 팥시루떡의 두께를 자랑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게는 복아지(복어)같은건 다 썩혀서 밭에 두엄으로 써서. 
우리게는 사과하나가 어린아이 머리통만 해서."

황해도는 땅이 좋아서 무엇이든 크고 달고 맛이 좋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아버지 고향의 그 푸짐한 풍요를 볼수도 맛볼수도 없는 우리는 
항상 무언가 아쉬웠습니다. 

"우리게는 호박두 이만하게 컸다."
 
하시며 팔을 양쪽으로 쭉 벌려 둥그렇게 말씀하시자 
동생이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부지, 혹시 아부지 고향에서 논에다 벼를 심으면 
금으루 된 벼가 주렁주렁 달리지는 않았어요? 호호호" 


"아!! 이맘때 우리게서는 꽃거이(꽃게)를 한솥단지씩 삶아서 먹어서...
우리게서는..
우리게서는..."

연세가 드실수록 아버지의 '우리게서는' 타령은 늘어가셨습니다. 

그날도 아버지께서 김치 순두부를 드시고 싶다 말씀하시니 
엄마보고 그걸 만들어 먹자고 했습니다. 

"엄마, 만들어 먹읍시다. 그까짓꺼 뭐가 힘들다구." 

엄마는 쓸데없는짓 하지말라는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야아, 내가 한두번 속는줄 아니?
 느이 아부지가 말만 저렇게 하시지 해노면 안 잡숴. 
말만 그래. 
접때두 뜨끈뜨끈한 수수부꾸미가 잡숫구 싶다 그래서 수수 사다 씻어서 물에 불려서
가루빠다 팥삶아서 죽것따구 만들었더니만 
한쪽두 안자시구는 기름냄새가 나서 싫다구 그러시더라." 

멀리 사는 나는 어쩌다 뵈는 아버지께
효도좀 해보자는 심산으로 자꾸 만들어보자구 말했습니다.

"아부지가 원채 기름냄새는 싫어하시네. 
김치순두부는 담백할테니 잘 잡술런지두 모르지 뭐.
한번 만들어 봅시다." 

엄마는 다시는 안속는다는 표정으로 손사레를 치셨습니다.

"아이구 야, 이걸 이렇게 만들어봐라 저걸 저렇게 만들어봐라 
시키는대로 해서 내놔도 안잡숴 야." 

"그래두 한번만 더  해보게.
김치 순두부 나두 먹어보구 싶네." 

싫다는 엄마를 졸라  콩을 사다 씻어서 불리고 
그걸 다시 방앗간에 가서 갈아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연신 이렇게하는거다 저렇게 하는거다 훈수를 두시며 
'처음으로 피자를 구워보는 엄마옆에서 잘 구어질 피자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찬 얼굴을 하고 계셨지요. 

갈아온 콩을 큰솥에 넣고 부르르 끓였습니다. 
콩물이 끓을때는 찬물을 준비해 놓고 조심해야 됩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우르르르 끓던 콩물이 울컥하고 넘어버려 
가스렌지며 주방바닥까지 콩물천지가 되니까요. 

그렇게 끓인 콩물을 면 자루에 넣고 찌꺼기를 걸러 냅니다. 
뜨거운 콩물 짜는일이 만만치 않습니다.
여럿이 이쪽저쪽을 잡고 꾹꾹 눌러 짜내면 
우윳빛 고소한 콩물이 빠지고 
콩비지가 남지요. 콩비지는 담요속에 넣어 잘 띄워 담북장을 끓여 먹어도 좋지만 그냥 버렸습니다.

이렇게 얻은 뜨끈뜨끈한 콩물이 식기전에 솥에 다시 붓고 
간수를 뿌리면 두부가 되는데 
김치 두부는 간수 대신 신김치를 썰어 넣는 것입니다. 
신김치를 넣으니 몽글몽글 콩담백질이 엉겨 붙어 
김치 순두부가 되었어요. 
거기에 소금간을 하고 양념을 해서 한소큼 끓여 
아버지 고향의 '김치순두부'를 만들었습니다. 

뿌듯한 마음으로 우리가 만든 김치 순두부 한그릇을 떠서 작은 상에 받쳐 기대에 찬 아버지께 드렸더니 
아버지께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한수저를 뜨셨습니다.
과제물을 검사받는 아이들처럼 아버지 표정을 살피는데

"야, 이맛이 아니구나. 이건 너무 매워.
우리게는 이렇게 맵지가 않아서.
이맛이 아니야."
라며 실망을 하셨습니다.

아버지 고향 김치는 이렇게 맵지가 않았었던가 봅니다. 

"봐라. 얘. 김치도 안 드시는 양반이 김치국을 드시겄니? 
하느라고 고생만 했지." 

담백하고 시원한 김치 순두부, 
우리끼리 먹다 먹다 
나중엔 버렸습니다. 


여든을 바라보시는 아버지께서는 살아생전 밟아보기 어려운 고향땅의 
그리움을 고향 음식으로 달래보고 싶은 마음을  헤아릴 듯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