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554

임자를 제대로 만난 어떤 노인....


BY Dream 2004-05-21

제사 음식을 장만하느라 형님과 장을 봐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겨우 차한대가 지나갈 수 있는 공간만 남겨두고
길 양쪽으로 차가 주루룩 주차돼 있었다.

 

조심조심 엑세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으며 앞으로 나가고 있는데
맞은편에서 승용차 한대가 왱 하고 달려왔다.

 

60대 노인이었다.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나마나 3-4백미터는 뒤로 가야 마주오던 차를 비켜줄 수 있다.

 

큰일이다.
빠꾸는 자신이 없는데...

 

앞을 보았다.
2-3미터만 뒤로 가면 앞차가 비켜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비켜 주세요'라는 신호로
목례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던 그 노인은 빵빵 크랙숀을 누루며 뒤로 가라고 손짓을 했다.

 

"형님 저 사람이 안 비켜 줄건가봐.
어떡하지? 나 뒤로 바꾸 못하는데.."
난처해진 내가 말했다.

 

"빠꾸를 잘해두 여기선 저 노인이 비켜야지.
쪼끔만 뒤로 가면 되겠구만."

불끈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형님이 차문을 열고 내렸다.

 

그 노인에게 다가갔다.

 

"아니, 쪼끔만 빼 주셔요. 쪼끔만 뒤로 가시면 되겠네요."

 

"싫어요."

 

"아니 내려서 좀 보세요. 우리가 차를 빼려면 한참 뒤로 가야 된다구요.
쪼끔만 뒤로 가시면 비킬 수 있잖아요."

 

"못해."

 

"아니 무슨 이런 경우 없는 사람이 다 있어."

 

"백날 서있어봐. 내가 빠꾸하나."

 

나도 차에서 내렸다.

"제가 빠꾸를 못해서 그러거든요. 쪼끔만 뒤로 가시면 되겠네요."

 

"빠꾸도 못하믄서 차는 왜 갖구 나와.
난 못 비켜."

 

이렇게 말하고는 운전석을 뒤로 쑥 빼서  눞히더니 다리를 쭉 뻗어 운전대 양옆으로
올려 놓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곤 편안히 앉아서 아무일도 없는것 처럼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재미난 일도 다있냐는듯.

 

그러는 사이 우리차 뒤로 차가 길게 밀려서 줄나래비를 서게 됐다.

이젠 바꾸를 할래도 할 수도 없게 됐다.

우리도 속수무책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뒤에뒤에 서 있던 태권도장 차에서 태권도장 관장이 내렸다.

덩치 좋고
인물 좋고
무쓰를 발라 바짝 세운 머리카락도 깔끔하고
흰바지에 브이넥 티셔츠가 산뜻한 그 20대초반
젊은 관장은 시꺼먼 썬그라스도 멋있게 쓰고 있었다.

 

성큼성큼
희희낙낙 전화기에 대고 떠들고 있는 앞차의 노인에게로 다가가더니


"이런 0발새끼를 봤나.
야, 이 0새꺄. 뭐하는거야. 지금.."

 

다짜고짜 벼락치듯 고함을 쳤다.

 

그노인네는 후다다닥 전화를 끊고 자세를 바꿔 앉더니만
그대로 왱에엥 소리를 내며 후진을 해서
눈깜짝 할 새 
어디론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