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마 미쳤나부다.
변해버린 내가 내스스로 염려 스럽다.
오늘은 어버이날인데 결혼하고 23년만에 처음으로20분 거리에 사는 시댁에
남편과 두 아들만 보냈다.
작년만 같아도 있을수 없는 그럴수도 없는 내게는 불변의 행사 였다
이러던 내가 23년을 해오던 이일을 오늘은 남편과 아들에게 떠넘기고야 말었다
오십 밑자리 깔아 놓으니 똥벳장이 생긴것 같다.
어버이날 이라카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공에 보답 코져
자식들이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 날인데
나는 어버이의 은공을 받은 기억이 없어 어버이날이 돌아오면
해야하니 하는건가 부다 도리상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양쪽 부모의 사랑과 배려를 받은 기억이 없다.
친정에서 클때는.
아들딸 차별 심한 가난한 집에서 내학비 내가 벌어 꿋꿋히 소녀시절을 보냈고
어느정도 친정의 경제 살리기에도 일조한 나였지만
내 친정 아버지는 셋째딸의 희생을 당연스럽게 여기셨던 분이다.
세째딸의 어둡고 칙칙하고 자존심 상했던 청춘기의 아픈 내면을 아버지는 안중에도 없었다
날개 한번 펴보지 못하고.
내꿈 한번 펴보지 못하고 .
어영부영 내가 아니면 탈영까지 감행할것 같던
지금의 내 남편따라 경상도 땅에 발을 디딘지 23년...
그 23년이란 세월의강을 건너서 건넌 강을 가끔씩 되돌아 보노라면
얼굴이 후끈 달아 오르면서 치미는 화를 꿀꺽 삼켜도 보고 냉장고 문열고 먹던 소주 한홉을 입에 털어 넣고서야 진정을 시키기도 한다 요즘도.
내가 술을 배울때가 내나이 삼십때 중반쯤이였다.
아파트 통로 에 5층에 사는 가희 엄마가 있는데 나보다 한살위다
그러니까 친구또래니 친구나 마찬 가지인셈인데 그 친구가 내게 술을 가르켰다.
그친구말에 의하면 처음 아파트 분양받아 이사와서 나를 처음 보았을때
""복달아..난 복달이 엄마가 다른세상 사람인줄 알었다.단정한 단발머리에 우수에 젖은듯한 슬픈눈<3년전 수술을해서 지금은 수술에 실패해 퀭한 눈이 되었지만>을 가진 화장실도 안갈것 같은 나와는 별개의 여자로 보였어..어딘가 냉정함속에 도사린 도도한 슬픔이랄까....암튼 첫인상이 도도한 슬픔을 간직한 여자 같었어.""
그친구가 그래 느껼수 밖에 당시 상황이 그랬다
경우없는 종갓집 종부.
아들 키워 며느리한테 그보상을 받으려고 키웟다며 고등학교 가르켰다며 얼마나 큰소리를 치시고 횡포를 부리시던지..
어머니는 며느리 넷중에 셋을 완전히 잡아 놓았다.
시집살던 시절에 가장 용납 하기 힘들었던 부분이있다.
어머니가 며느리방에서 늘 기거 하시는거 ..그 최소한의 예의만이라도 지켜주신다면
맏며느리로서 평생시집에서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의 비장함으로 살수도 있었지만 .
끝내 나는 반은 미쳐 대소가의 어른들 도움으로 월 삼만원짜리 방을 얻어 시댁을 탈출?하는데 성공을 했다.
그리고 부모를 버리고 나왔다는 죄의식과 시집살이의 후유증과 살림 내놓은 며느리집에
하루에 서너번씩 간섭섞인 어머니의 기차 화통 삶아먹은듯한 쩡쩡한 전화 목소리을 듣고 살아야 하니 20대 후반의 여린 나는 전화벨소리는 내게 무서운 공포 였다.
인간은 적응의 타고난 천재라고 ..적응을 한건지..좌우간 대소가에 맏종부로 욕은 안먹고 살았는데 요즘들어 얼굴이이 훅..달어오르면서 ...
얼마전 수십년 드린 생활비를 드리러 갔는데 어머니의 투정이 생각이 났다.
"야야....새집 아지매는 얼마짜리 옷을 샀다드라 베개커버도 얼마짜리라드라.칠곡댁도 무엇을 샀다드라...인산댁은 육각물이 만들어지는 정수기를 샀다더라..""
어머니 돈많을때는 깽깽 거리며 욕심 내는 시동생들한테 다 주시고.
맏며느리 집살때 돈 꿔주시고 이자까지 받아 챙기던 어머니는 늘만만한 내게 이러신다.
내딴엔 자식 얼굴 자주 보여드리는게 노인들에겐 가장 큰 위안이라 생각해
오며가며 하다못해 고등어 한손이라도 들고 드나들었는데
어머니는 유일하게 자주보는 큰며느리등뒤에 늘 비수를 꽂고는 나를 보내신다.
늘 그런 어머니니기에 한귀로 듣고 흘리고 오고는 했는데 요즘들어 반란이 꿈틀 거리니.
그리고 며칠전 남편에게 선언을 했다.
""나 이번 어버이날 안가..당신을 낳아준 부모니 당신이가..늘 내가 했잖아.."
남편은 내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였다 저여자가..설마...설마..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 에도 가려고 설치지를 않으니 저남자가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늘 내가 알아서 해왔기에..
작년 까지만 해도 내가 설쳐야 마지못해 일어나던 남편이
내가 손을 놓노라 선언을 하니 역활이 바뀌어 애들을 깨우고 시계를 보며 내눈치를 살피더니 가슴에 척 매다는 카네이션이 아닌 꽃바구니 두개를 돈이 담긴 흰 봉투와 함께 내놓으니
영 못마땅한 눈치다.
이윤즉..가슴에 다는 카네이션이래야 달고 대소가를 다니실텐데.꽃바구니를 들고 다닐수 없지 않은가 ..그렇타고 비싼 꽃바구니 두고 다시 살수는 없고 해서 그냥 가라 했더니
영..찜찜해 하는 남편에게 화살의 시위를 겨누었다
""꽃바구니 옆에끼고 다니시면 되겠네..동서 들도 꽃 사올거 아이가?자그나마 당신이 어머니 아버님한테 어려운 자식이였으면 내가 이토록 당하고 살지는 않았지!막내 삼촌 바바 막내 동서 행여 형수한테 한것 처럼 할세라 삼촌이 카바 해주는데 당신은 모야!아들 밸나면 며느리한테도 마음대로 못하다더라!!내가 당신 낳아달라고 당신 엄마 한테 부탁햇냐구!!왜 며느리한테 아들 키운것을 보상 받으려고 하냐구!!""
앙살을 앙살을 떠는 내게..
""이사람아.부모한테 밸나게 하면 되나..부모가 매양 사는게 아닌데..'"
""그래 그래서 참고 이해하고 살았잖아.근데 자꾸 화가 치밀어 나도..갈데마다 좋게 보낸 적이 없잖어.늘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투정만 부리고.저번에도 당신도 봤잖어..아들 사형제가 수십년째 생활비 드리잖어 .지난달에도 거실장 사드렸구 정수기도 해드렸잖어!왜 어머닌 당신 손에 쥔것이 복인줄을 모르냐구..우리집에 돈찍는 기계가 있어 돈을 찍냐구!!차라리 나를 팔아서 하고 싶은거 다 하시라 해!"
말나온김에 다 남편에게 퍼부었다
""어머니 당신 고등학교 보냈다고 나한테 본전뺀다 했는데 난 당신 대학 가르켰어..그건 왜 말씀안하신데냐?만약에 내가 우리 두 애들 대학 보내고 키웠다고 내며느리한테 본전뺀다 하면 복달이가 나를 보려 하겠어?당신 동생들 집사주고 다해줄때 우리집살때 어머니한테 빌려온돈 이자 갚느라 쌀살돈 없어 나...사흘을 국수만 먹고 살었어..사흘 국수 먹어바바.!!.흰쌀밥이 꿈에도 나타나..알아!아냐구!!쌀살돈 없어 국수 삶아 먹는 심정을 아냐구!!"""
유치찬란 하게 막 토해냈다 ..
""그러고 말야 말이 나와서 말인데 당신 부모만 중요 하냐?왜 내부모는 안챙겨?지금까지 내 친정 아버지한테 용돈 한번 붙여드린적 있냐?당신 부모한테 하느라고 난 내부모 챙긴 기억이 없어.!!아들만 자식이야 !!""
치사하게 니부모 내부모 편갈라 가면서 열변?을 토하자 남편은
""누가 드리지 말라했어.. 당신이 붙여드려...""
""뭬얏!!왜 당신 부모 한테도 내가 해야 하고 내부모한테 내가 해야해?당신 그동안 알아서 하는 와이푸만나 편하게 살았어 이제부터 중간에서 마음고생좀 해봐.. 알어..나도 걸고 넘어질줄 알어 ..부모라서 참은거야..""
남편은 듣고 보니 맞는말인지..어딘가 휙...나가더니 잠시후에 들어왔다.
쇼파에 드러누워 씩씩 대는 나를 꼬옥 안더니 귀에대고 속살거린다..
""복달이 엄마...헤헤~~나...금방 농협가서 장인 어른께 돈 송금 하고왔어...잘했지?""
켁!!아니 세상에 내가 시댁에 안가는 이유를 합리화 하려고 친정 아버지를 들먹 거린건데
진짜로 쪼르르 나가 그십분 사이에 돈을 붙이고 온 남편 이였다.
""모야??진짜로 붙이란 뜻이 아니였는데..얼마??붙였어/?"""
미쳐요 ,,액수나 작나..내 친정 아버지가 누구인가?
아들만 자식이요
친손주만 손주라고 생각 하시는 아들광이라 딸들은 발가락 때택도 여기지 않는 분이라.
요즘 세딸들한테 왕따를 당하시는데 ..
나의 반란에 인정 머리 없는 우리 친정 아버지만 좋아 지셧으니..후`~~~
암튼..오늘 ..기어이 제가 어버이날 하루를 땡땡이를 쳤습니다.
그런데 땡땡이친 마음이 별루 좋은 기분은 아니네요.
며칠후...남편의 부모이자 내 두아들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인데..
그리고 수십년 부대끼며 살아온 내 부모이기도 한데
오늘의 반란은 그만 접어야 겠지요.
**죄송스럽습니다 엣세이방에 오늘 올라온 글들이 어버이를 기리는 글들이 많은데
찬물을 끼엊은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어버이날의
나쁜 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