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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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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범사에 '반드시' 감사해야 하는 이유


BY 카리스 2004-04-25

오랜만에 신혼여행지에서 촬영한 사진들을 봤습니다.

문득 보고 싶어 펼친 앨범을 열어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자니

괜시리 눈 앞이 뿌얘집디다 그려...

 

참으로 곱고 맑습니다.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부부의 모습이 말입니다.

 

알콩달콩 연애하다가 평생을 함께 하자며

손가락 꼭 꼭 걸고 굳은 맹세하면서 발걸음 내디딘 결혼생활.

그 '굳은 맹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애할 때와는 너무나 다른 결혼생활의 현실에 덜컥 덜컥 놀라는 순간들...

크게든 작게든 수 없이 부딪치는 난관들,

또한 고민들이 닥칠 때마다

곧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절망감에 눈 앞이 그만 캄캄해지기도 합니다.

 

TV를 봤습니다.

살인적인 경제 한파로 인해 빈곤 아동과 외부모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대책없이 거리로 내몰린 삶들...

 

핏기없는 얼굴의 엄마와 '춥다'고 연신 눈물을 보이는 9살 짜리 아들,

결핵이 발병했음에도 불구하고 5명의 병약한 자녀들을 품에 꽁꽁

끌어안고 주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병든 엄마,

생활고에 시달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삶의 희망을 완전히 포기한

아빠와 함께 지하철 역 이 곳 저 곳 신문지 깐 자리가 곧 '내 집'인

7살, 9살 어린 남매...

남편의 무지막지한 폭력에 못 이겨 세 자녀를 끌고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온 엄마...

그러나,

엄마의 고단한 삶을 보는 것이 고통스러워

제 입 하나 덜어주고자

재혼을 해서 살고 있는 '폭력 아빠'의 지옥같은 집으로 들어 간 15살 짜리 아들,

이 세상 돈이란 돈은 모두 가지고 싶다며 가출해 버린 17살 짜리 큰 딸...

삶에 무게에 짓눌려 일어날 수 조차 없는 엄마는

그래도 아들과 딸의 얼굴을 보고 싶어

두 돌된 막내를 가슴에 품고 오늘도 거리를 헤맵니다...

 

우리 아기는 말이죠. 참 건강합니다. 아니, 건강했습니다.

돌이 지나도록 그 흔한 감기, 단 한 번 '가볍게' 앓았고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습니다.

참, 잠투정은 엄청 심하지만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기가 건강해서 좋겠다고 얘기하면

"건강해서 걱정 없어요!"

라고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웬걸요...

13개월 때 손가락에 깊은 화상을 입어 이식수술을 하며

엄마나 저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니

열감기, 목감기, 코 감기 등 등 끊임없이 잔 병이 이어지더군요.

 

그렇게 이어지는 아이의 '아픔'에 간병을 하다 저는 그만 덜컥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결막염까지 동반 된 지독한 몸살감기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데 자리에 마음놓고 누울 수도 없었습니다.

미스때는 조금만 아파도 만사 제쳐 두고 누울 수는 있었는데

아이 키우고 살다 보니 쉬는 건 정말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음...

다들 공감하신다고요?

 

지치고 고단한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문득 제 마음을 '띵'하고 울리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라는 건 즉, '감사할 수 없을 때 조차'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내게 있어 감사한 건 과연 뭘까...라고 골똘히 생각하자니

샘물이 퐁퐁 솟 듯 감사한 조건들이

마구 쏟아집디다.

 

하루종일 보채는 아이때문에

그야말로 정신이 쏙 빠져 쓰러질 것 같지만

그래도 아이를 데리고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성격과 가치관, 살아 온 환경이 극단적으로 달라

싸움과 화해를 반복하고 살지만

술과 담배 안하고

부부싸움을 하면 밖으로 돌지 않고

'정말 꿋꿋이' 집에 버티고 앉아 안 나가는 남편이 아직 있다는 것이,

 

감정의 기복이 심해 아들 부부의 갈등을 수시로 야기시키는

시어머니지만 아직 그 어른들, 건강하셔서

뒷 수발 아직 안들어도 되니,

 

"밥 하기 싫은데 짬뽕 시켜 먹자!"

 

라면 가끔 밥 한 끼 안 하고 남의 음식 먹을 수 있으니,

 

햇살 무지하게 좋은 날,

꽃이 만-발한 공원을 아이와 함께 아주 '가끔은' 거닐 수 있으니,

 

"예쁜 허브 3,000에 두 개 드려요-옷!"

 

이라 외치는 꽃장수 아저씨에게 3,000원 덥썩 쥐어 주고

라벤더와 레몬밤을 우아하게 들고 올 수 있으니,

 

아이가 아직 어려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탓에

또한 남편일을 함께 돕느라

하루에 내 시간 30분도 내기 힘들 때가 많지만

앞치마 두르고 아컴 에세이방에 앉아

글도 올리고

좋은 분들의 글도 읽을 수 있는 행복이 있으니...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많다는 희망이 넘쳐 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하루 하루 12번도 더 희비가 교차되는 인간의 삶이라는 걸 살아가면서

'범사'라는 단어를 자꾸 자꾸 되내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