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되면, 나뭇가지도 잠들라고 바람도 잠을 잡니다.
묵언을 했습니다.
인생에서 두 번째의 묵언 이었습니다.
[인생은 진흙같아서, 한 번 발을 디디면, 발을 빨리 움직이는 방법 뿐이지.]
제 가까이에 있는 어느 현자가 해 주신 말씀입니다.
진흙에서 발을 빼는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이런저런 답답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살짝
내려온 거실에 앉아 밖을 볼 수 있도록 커튼을 들춰 보았습니다.
영국엔 바람이 많습니다.
늘 바람이 산란하게 잔가지를 흔듭니다.
늘 바람은 옷 소매를 비집고 들어와 묻습니다.
"너는 얼마나 깨끗해서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럼이 없느냐고?"고.
새벽이 되어도 멈출줄 모르는 한남대교의 가로등만큼이나 많은 자동차 불빛도.
새벽이 되어도 멈출줄 모르며 소릴 질러대는 거리의 사람들도.
새벽이 되어도 아귀다툼을 멈추지 않는 정치판도 이곳에는 없습니다.
새벽이 되면, 바람도 잠을 잡니다.
커튼을 살짝 젖혔을 때, 잔 가지들의 움직임이 멎어있어서 잠깐 놀랐습니다.
사실, 새벽 네시에 깨어나 있었던 적이 이곳에서 산 이래로 없었거든요.
그리고 창에 얼굴을 짖이기듯 가까이 대어 보았습니다.
진공관에 있는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집 들엔
불빛하나 세어나지 않고,
거리에는 자동차 한 대도 지나지 않고,
지나는 사람도,
사람의 목소리도 없는 길 건너 작은 공원의 고목의 잔가지 위의 하늘을 보았습니다.
희뿌연 새벽이 오는지 하늘이 하얗게 빛을 내기 시작하고,
그 하얀 빛 사이로, 검은 구름이 회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 바람도, 나뭇가지가 잠이 들라고 저렇게 나뭇가지 위에서 잠을 자는구나."라고
혼자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이 또뜨륵 굴렀습니다.
묵언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저를 그간 지켜보던 남편은, 일체 책을 보는 일 외에는
어떤 발언을 하지 않는 몇 주간 괴로웠을 것 입니다.
송강 정철은 귀향살이를 했겠지만,
저는 스스로 귀향살이나온 사람처럼,
발을 어디에 디딜지 몰라, 십 오일이 되기를 기다리다가 이렇게
님들의 궁금을 낳아서 그저, 죄송할 뿐.
아이에게 속삭입니다.
여럿을 괴롭혀야 되는 인생이 될 것 이라면, 조용히 물러나거라.
여럿을 제도 할 수 없거든, 아예 앞에 나서지 말거라.
라고 여러번 중얼거려봅니다.
나의 부끄러운 작은 일들이 지났고,
나의 무능력이 이렇게 긴장감을 줄 줄은 몰랐습니다.
저의 무능력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무능력을 채우기 위해서 다시 쉼 호흡을 합니다.
죄송하고, 보잘것 없는 제게 이렇게 많은 관심을 주신 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이제 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