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에서 줄 주급 계산서를 쓰면서 가슴이 벌렁벌렁 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화도 나고 크리스가 미운 생각도 들고 돈이 아까운 생각도 들어서다.
크리스는 커튼에 관한 한 자기가 전문가임을 자처하고 그동안 자기가 만들었다는 물건들의 사진도 들고 오고 장식품도 들고 인터뷰를 하러왔다.
자기는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학교도 다녔기 때문에 디자인 부터 가구의 천갈이 커튼 설치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디자이너 아이리스는 크리스에게 후한 점수를 주었고, 사람이 당장 필요한 나는 아이리스의 추천을 받아들여 그를 채용하기로 하였다.
이 주일 동안 크리스와 함께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떠벌이 사기꾼이라는 생각 뿐이다.
아이리스가 일에 대해 설명을 하면 크리스의 대답은 언제나 쉽다.
크리스의 대답만 들으면 금방 일을 끝내 줄 것만 같다.
그리고 일을 시키면 하루 종일 붙들고 끝내 줄을 모른다.
아니면 엉터리로 해서 다른 사람이 다시하게 만들어 놓거나...
그리고도 변명이나 안하면 밉기나 덜하지 말도 안되는 변명을 늘어 놓는다.
예를 들어 자기가 모든 일에 전문가면 벌써 부자가 되었을 거라는 둥, 자기는 모든 일을 다 잘 할 수 없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둥, 낸시가 자기에게 말을 시켜서 일이 늦어졌다는 둥...
거기에 가식이 섞인 것 같은 커다란 웃음까지 동반이 된다.
누군가 말이라도 시킬 것 같으면 때는 이 때다 싶은 지 일손을 놓고 손짓 발짓 섞어 수다 뗠기에 바쁘다.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배웠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그렇게 가르쳤다.
남편이 혹시 그런 말을 입에 올려도 주의를 주었고, 나만은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인 줄 알았다.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서 십여년을 살았지만 전업주부로 사는 동안은 다른 인종과 접할 기회가 그다지 없었다.
간혹 유쾌하지 않은 경험들을 했어도 그런 일로 인종적인 편견에 빠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경고하고 교양있는 척 그런 말은 입에 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이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편견이 과연 편견이라고 치부하고 마음에 담아두어서는 안되는 것들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런 말을 귀담아 듣고 살아가는데 소중한 참고서를 삼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노예근성이라는 말을 흑인에게 쓰면 큰일 나는 것처럼 금기시되는 것인 줄 알지만 크리스를 보면서 그 말이 자꾸 생각나는 것을 어쩔 수가 없다.
멕시칸인 힐다가 가게를 그만 둔 후 없어진 물건들을 발견하고 그들에 대해 들었던 숱한 말들이 생각난다.
내가 편견이라고 치부하고 마음에 두지 않으려 했던 말들이 오히려 가슴에 소중히 담아두지 않았음이 후회된다.
인도에서 왔다는 사람, 중동에서 왔다는 사람, 흑인,백인, 멕시칸,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난다.
그들을 통해서 나는 인도 사람, 중동 사람, 멕시칸, 흑인, 백인에 대한 틀을 나도 모르게 형성해간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편견이라 부를 수도 있고 편견을 가진 사람은 교양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교양있는 척 다른 사람 앞에 인종적인 편견이 섞인 말을 입에 담지 않으려 노력하는 대신 내가 경험한 일들을 나랑 친한 사람들에게 마음에 소중히 담아두라고 충고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전에 편견이라고 치부하고 귀 기울이지 않았던 말들에 귀를 기울일 것만 같다.
이런 글을 쓰면서 내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편견을 형성하고 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를 보면서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어떻다고 생각하게 될까?
나가 자란 환경과 문화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