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버니 부음 소식을 듣고 달려 간 고려대 안암병원 영안실. 그의 죽음을
믿고 싶지 않았는데 영정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 오라버니 셨지요.
그 웃음 끝이 시려서 마주 본 내 눈가에 맺힌 이슬이 국화 꽃잎위로 떨어
집니다. 흐트러진 국화 꽃잎처럼 마음을 내려 놓고 엉엉 울고 싶었는데
동행 해 온 김기사가 돌아 갈 길이 바쁘다며 재촉합니다. 늦은 밤 잠 못
들고 집에서 기다릴 아픈 어른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짧은
이별을 해야 함이 야속할 따름입니다.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오라버니. 생을 마친이들이 저승을 향해 건너야 할
강이 있다지요? 요단강. 오라버니 아직 그 강을 건너지는 아니 하셨겠지요?
한 번 건너면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강이기에 조바심이 나네요.
난 당신과 영안실에서 짧은 이별을 하고 돌아 온 다음 날 못내 아쉬워 연미정
강가에 나와 있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한강 강줄기를 따라 내려와 꿈에도
그리던 고향인 개풍군의 강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통로인 이곳을 지나 가리
라는 생각이 들어 서지요.
물위를 떠다니는 바람에게 내 마음을 전했지요. 꼭 한 번 만 만나고 싶다고.
아! 들으셨군요? 이 물기척 소리 당신이지요?
햇살이 부서지는 수면이 참 따뜻할 것 같이 보였는데 물가를 도는 춘삼월의
바람끝은 아직도 겨울의 찬 자락을 잡고 있는 듯 합니다. 오라버니가 계실
물밑이 차가울텐데 이젠 바람이 멎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런데 바람은 내 바램
과는 달리 강물속을 헤집어 울울거리며 오히려 더 속력을 내어 물살위에 날을
세웁니다. 이젠 이념을 내세 울 필요도 없어 진, 몸체가 사라진 늙은 영혼에게서
지난 날 혁명을 꿈꾸며 이 강을 넘었던 젊은이에 대한 기억을 지워 주길 바랍니다.
그저 조용히 이강을 지나 고향 땅을 밟았으면 하는 바램이지요. 오늘 이 샛강을
건너면 영원히 돌아 오지 못할 먼 곳으로 떠나게 되겠지요?
오라버니 추우시죠? 물밑을 나와 햇살이 닿는 바위벽에 몸을 기대세요. 그리고
시간이 허락 된다면 잠시 쉬었다 가시지요? 이곳 연미정에서 마주 보이는 유도
라는 섬아시죠? 그 섬 바위벽에 앉아 제 쪽을 바라 보세요. 살아서는 누구도 갈
수 없는 그 곳은 이쪽도 저쪽으로도 속해 있지 못한 비무장지대 이지요. 그 섬에
앉아 강화해협이 시작되는 북쪽 끝 연미정앞 철책선에 다가가 그 곳을 바라 보고
있는 이 아우를 바라 봐 주세요.
오늘처럼 성난 강물을 사이에 두고 잔잔히 이야기 한 적은 없는 듯 합니다. 그것은 오라버니와 함께한 이생에서의 마지막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서 가능 한지도 모릅니다.
물밑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자정작용을 하는 강물도 한 많은 한사람의 역사를 쉽게 흘러 내리게 하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동족 상잔이 있었던 6.25 당시 청년 이었던 한 남자가 강을 건너 남하를 했지요. 그 남자에게 있어 강을 건넌다는 건 혈육과 헤어져야 한다는 것,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개성의 삼포밭이라는 부를 포기 해야 했으며, 당시 배우였던 그에게 배우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했지요. 많은 것을 버려야 했던 그는 서울의 남산에 거적을 깔아 생활을 하며 고학을 했지요. 그가 품었던 꿈은 무엇이었는지요? 꿈의 실현이라 봐야 할까요? 박 정권 시절
그는 날아 가는 새도 잡는다는 중정의 고위 간부가 되기도 했었지요. 다시 강토가
피로 물들었던 80년의 봄 광기 서린 군인 전씨가 정권을 찬탈했던 때 권력에 아부
하지 않은 죄로 자리에서 물러 나야 했지요. 그때 그는 50의 나이로 세 아이의
아버지였으며 한 집안의 가장이기도 했지요. 그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금으로 다시
시작을 꿈꿨으나 경험이 없는 그는 사기꾼의 속임수에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지요.
재기의 기회를 놓쳐 버린 그는 고혈압으로 시달리다 뇌혈관이 파열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요.)
오라버니 그 청년은 왜 강을 건넜다지요? 내려 왔던 강기슭을 늙은 혼이 되서야
다시 거슬러 오르는 심정은 어떠 한가요?
"물밑을 들여 다 보거라. 쉬임 없이 꿈틀 거리는 물의 움직임. 끊임없이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갈라져 흐르다 어느 순간 다시 만나 하나가 되기도 하지. 강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지. 사람이 사는 모양은 강을 닮아 있다. 살아 있는 한 어느 방향으로 든 흘러야 하고 방향을 선택함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반드시 이것이 옳은 것 같아 고른 선택도 후일 아니 죽은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는 것이 어느 쪽이었든 그 사람의 역사가 되고 운명이 되며, 흐르게 하는 것이 강의 운명인 것이지 . 이제 바람이 자니 떠날 채비를 하마.
나의 오라버니, 우리 아버지의 장 조카이신 그 분은 강 기슭을 따라 서서히 북상을 하십니다.
- 일부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