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심는 날이란다.
그러나 난 나무를 심을 비탈진 땅이든 엉덩짝만한 땅이든 없고해서
임대료는 물론이고 권리금도 없는 매장앞 가로수 밑둥에 야생초를 심었다.
공짜로 확보한 땅에 작년엔 마가렛과 패랭이를 심었는데...
남동생이 다니는 병원 화단에 태어나 처음보는 특이한 넝쿨 꽃이 있길래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보니 주홍색 메꽃이라고 하더란다.
누나가 들꽃을 하도 좋아해서 오며 가며 메꽃을 잘 봐 뒀다가 가을날 씨가 다 여문 다음에
씨를 받아 하얀 봉투에 넣어 고무줄로 팅팅 말아 가지고 매장에 와서 주고 갔었다.
그래서,수수알만한 메꽃씨를 책상 밑 소품 바구니에 잘 보관 했다가
식목일날 나무 밑둥에 바짝 심었다.
싹이 나고 키가 커지만 나무 다리를 잡고 씩씩하게 올라가게 하려고...
작년,친구와 비 훝뿌려지던 여름날
오붓하게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오대산 야생화 농원에 갔었다.
이것도 순전이 내가 야생화를 좋아해서 장소를 그곳으로 정하고 차발길을 돌린거였다.
입장권 값에 포함된 선물로 준 두 가지 씨앗,
꽃이 피면 비단으로 최대한 얇게 짠 한복천 같은 두메 양귀비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산언저리에 핀 보라색 꽃을 보고
내가 다시 태어나면 이 꽃으로 피어날텨 했던 보라색 붓꽃씨를 메꽃 앞에 뿌렸다.
한가지 더 심은게 있다.손님이 뽑아다 준 구절초.
어쩌다 한번 사과를 사러 오던 손님이
매장앞에 천원짜리 꽃화분을 사다가 키우고 있는 걸 보고선 꽃이야기를 하다가 보니
그 손님도 야생화를 집 뜰에 기르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작년 가을에 배달을 가다가 산에서나 보는 구절초를 보고 넋이 나간듯 본적이 있었는데
그 집 주인이 바로 우리 손님이었고
꽃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 손님이 뽑아다 준 구절초를 비어 있는 가로수 자리에 심었다.
가로수가 죽어서 베어냈는지 아님 잊어버리고 가로수를 빼먹고 안심었는지 모르지만
매장 앞을 지나 옆에 있는 가로수는 빈 터만 남아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비어 있는 가로수 자리에 쓰레기 봉지를 갔다 놓고 음식 쓰레기를 버리고
비어있는 가로수 밑은 지져분한 쓰레기터가 된지 오랜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작년에 그 곳에 봉선화를 빈공간 없이 쫌쫌하게 심었었다.
그랬더니 쓰레기터였던 그 장소는 인생을 탈바꿈해 봉선화 꽃밭이 되었다.
올 해는 구절초 꽃밭이 될 조짐이 강력하다.
지나가던 할머님이 "꽃동산 만드네요."하셔서 고마워서 미소를 지었고,
매장 건물 주인 아주머님이 "무슨 꽃이예요?" 하고 물으시길래
"네... 가을에 하얗게 흔들리는 구절초래요." 했다.
메꽃씨와 두메양귀비씨와 붓꽃씨가 심어진 플라타너스 밑둥엔
작년엔 본 낯설지 않은 풀꽃 새싹들이 자잘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꽃이 피면 화장한 여자가 되는 씀바귀, 보송보송한 털을 간직한 강아지풀,
어릴적에 뜯어 먹던 시큼했던 괭이밥, 슬프고 아름다운 추억의 꽃 개망초,
달구지가 지나가도 잘 자란다는 질경이,
별처럼 은은하고 하늘의 별처럼 작은 개별꽃.
받아 온 꽃씨를 뿌리고 단골손님이 준 꽃모종을 심고,
점심 때 받아 논 쌀뜨물을 듬뿍 주었다.
뜨물을 받아 주면 다른 영양제가 필요 없다고 친정엄마가 가르쳐 준 것을
요즘 잘 써먹고 있고 잘 실천하고 있다.
누군가의 손이 내가 심은꽃을 훔쳐가지 말길 바라며...
사람 발로 밟혀서 짓이겨지지 않았으면 하고...
말없이 속으로 기도를 하면서...
(위의 꽃은 개별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