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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웠던 어제와 ...행복한 오늘
BY 명자나무 200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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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문은 열자마자 부지런히 청소를 했습니다. 대 걸레도 수도물 떠다가 사정없이 흔들어서 발로 팍팍 물기를 짜서 바닥을 유리알 처럼 닦아놓고 엊그제 산 치자나무에다가 물도 흠뻑 주었습니다.
청소가 다 끝나자 다시 옷을 입고 문을 잠갔습니다 왜냐하면 한 의원으로 침을 맞으러 가야하기 때문입니다.몇달 전 부터 어깨가 아프기 시작 했는데 이것이 오십견인가 생각하면서 날마다 팔을 흔들어 대며 운동이라고 했더니 그게 아닌가 봅니다. 지금은 팔까지 아파서 언제나 신경이 그쪽으로 가 있습니다, 한의원에 갔더니 오십견은 아니지만 증세가 비슷하다고 하면서 미련하다고 혼났습니다
침 맞으러 가려고 오천원을 꺼내다가 오다 가다 혹시나 사올 거라도 있을까봐 오천원 짜리를 하나 더 꺼내서 두개를 합체해서 반으로 접어 바지 주머니에다 집어 넣었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니 아무래도 신호등이 바뀌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언덕길을 바람같이 뛰어 내려오니 아니나 다를까 빨간불에서 파란불도 휙! 바뀝니다.홋홋한 마음으로 느릿하게 길을 건너서 한의원으로 갑니다
한의원 원장님은 목소리가 무지하게 큽니다. 그런데 큰 목소리에 다정함이 담뿍 담겨 있어서 참 좋습니다. 침을 놓으시곤 아프다고 몸을 꼼지락 거리면 "아프지요?" 하면서 한번씩 되 물어 주십니다.
침도 맞고 따르르 하는 전기 치료기에 부황으로 피 까지 빼고나니 한 시간이 후딱 지나갔습니다. 계산을 하려고 돈을 찾으니 돈이 없어 졌습니다. 당황한 마음에 이 주머니 저 주머니 다 뒤져봐도 돈은 없고 먼지만 나옵니다. 혹시나 누웠던 자리에 가서 다시 한번 확인했지만 없어진 돈이 거기 있을리 만무합니다.
아침 초장부터 외상하고 나오면서 집에다 두고 왔나 하는 생각으로 부지런히 가 봤지만 역시나 집에도 돈이 없습니다. 아마도 아까 신호등을 빨리 건널려고 뛰다가 빠진게 틀림없는거 같습니다
돈 만원! 아까와 죽겠습니다.
야쿠르트가 실실 웃는 얼굴로 떠먹는 요크르트를 두개 들고 들어 옵니다. 달아서 안 먹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먹으라고 뜯어놓습니다. 한 수저 떠 먹으며 잃어버린 돈 얘기를 하니 작은 돈으로 큰 일 액땜했다고 여기고 마음 비우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만원어치 야쿠르트를 팔아주면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아니면 둘이서 점심에 짬뽕과 짜장을 시켜먹고도 남는 돈이기도 합니다. 저녁에 딸 아이와 찜질방에 갈수 있기도 하고 거기다가 시원한 식혜까지도 먹을수 있는 돈 이기도 하지만 없어진 돈이니 우얍니까? 애리고 쓰린 속을 달래면서 하루가 갔습니다.
오늘은 딸 아이 생일 입니다. 어제 시장에 들러 소고기 한 근이라도 사서 미역국이라도 끓여줄까 했지만 둘이서 찜질방에서 외박을 하는 통에 돈 굳었습니다. 아침에 부시시한 얼굴로 미역국 사 먹을까? 라고 물으니 뭔 미역국..이따 점심 먹을건데...합니다.
사실은 우리가 즐겨가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거든요. 전화를 걸어서 몇시에 문을 여는지 알아보니 11시 30분에 오픈한다고 하네요. 우선 구운 계란 한개와 두유로 뱃속을 살짝 달랜후에 둘이서 pc 방으로 가서 레스토랑 홈 페이지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시청앞에 새로 오픈점이 생겼는데 퀴즈를 맞히면 "온더 바비"라나 뭐라나 하는 어린 돼지 갈비를 준다고 했거든요.
호주의 수도는 무엇일까요? 시드니라고요? 땡! 입니다 이렇게 되면 바비인지 돼지인지 하는 갈비가 날라갑니다. 둘이서 딱 11시 30분에 그 집앞에 도착했다가 그만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습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잇는데 언제 저기서 밥을 먹나 하는 생각에 다른 집을 갈까 하다가 그 "온더 바비"를 공짜로 먹기 위해서 pc 방에서 돈 천원 들인 밑천이 생각나 우선 줄을 서 봅니다. 카운터에서 몇 사람이 왔는지 적어 가면서 두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합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샐러드도 주고 레몬티도 주고..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 통조림도 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유난히 금방 이름을 불러 줍니다. 알고보니 이인용 테이블이 비어 있었나 봅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기본이 서너명 입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까뭇까뭇한 빵과 크림이 작은 나무 도마 위에 올려져 나옵니다. 빵은 따듯해서 손으로 뜯어 먹어도 맛 있습니다. 그리고 샐러드 위에 닭고기로 만든 텐더가 나옵니다. 딸아이가 드레싱은 허니로 주세요 합니다 . 그래서 그런지 드레싱이 달콤한거 같습니다. 초코렛 시럽을 뒤집어 쓴거 같은 스테이크 옆에는 주먹만한 고구마를 반으로 갈라서 그 안에다 크림을 넣어서 오븐에다 구웠는지 크림이 살살 녹고 있습니다. 언제 먹어도 환상적인 고구마 맛 입니다.
디지탈 카메라로 우선 나오는 음식마다 사진을 찍어댑니다. 그리고 엄마도 찍어 준다고 난리 입니다. 닭고기를 들고 있어라 찰칵! 스테이크를 썰어라 찰칵! 돼지갈비를 뜯어라 찰칵! 서로 주거니 받거니 사진을 찍어가며 확인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하는 언니를 불러서 둘이서 몇방 찍은뒤에 카메라를 집어 넣습니다.
우리가 잘가는 돼지갈비집에서는 음식을 다 먹은후에 "아줌마 계산서 주세요" 이렇게 소리 치지만 여기서는 지나다니는 언니한테 살짝 웃음을 보이면서 손가락을 까닥 하면 조르륵 알바하는 학생이 옵니다 그러면 조용한 목소리로 소근소근"언니 빌지 갖다 주세요" 하더군요 . 그러더니 앞 가슴에 뱃지를 주렁주렁 가득 달은 상큼한 아가씨가 옵니다.
지난번 부터 밥은 자기가 산다고 했지만 엄마가 되서 아침에 미역국도 못 끓여 줬는데 점심까지 사라고 해서야 체면이 서겠습니까? 제 카드를 꺼내 놓습니다 할인 쿠폰을 써서 돼지갈비를 먹었기 때문에 TTL카드로 받을수 있는 할인은 해 줄수 없다고 했는데 계산하는 언니가 TTL카드 있으면 달라고 합니다. 딸 아이가 눈이 똥그래 지더니 얼른 꺼내 줍니다. 계산하는 동안에 커피가 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니 누룽지 태운 물 같건만 다른 사람들은 잘도 마십니다. 입맛은 같을텐데 참고 마시는건지 아니면 태운 냄새가 볶은 냄새라고 착각을 하는지 ... 녹차로 바꿔달라고 해서 다시 마시고 있는데도 계산대가 밀리는지 도무지 오지를 않습니다. 딸아이는 카드가 오자마자 나가자고 옷을 다 입고 준비 땅! 하고 있습니다.
스테이크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언니를 불러서 포장을 부탁하고는 빵도 싸달고 합니다. 이 체인점은 나갈때 부탁하면 빵을 싸 가지고 갈수 있게 해주거든요. 가지고 왔는데 빵이 하나 밖에 안 들어 있습니다. 언니를 조용히 불러서 우리가 잘가는 저기 종로점에서는 빵을 두개 준다고 얘기하니 얼른 웃으면서 알아 듣습니다. 가지고 온 봉투가 빵빵 합니다 열어보니 정말로 두개가 더 있습니다, 난 하나만 더 원한거 였는데... 빵이 세개나 됩니다.
그 사이 카드와 빌지가 오고 싸인을 하자마자 영수증과 카드를 받아들고는 딸아이는 나를 버려둔체 후딱 입구로 나가 버립니다. 나는 빵가방 들으랴 옷 입으랴 인사 받으랴 바뻐 죽겠습니다. 카운터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먹겠다고 줄 지어 기다리고 있는게 보입니다. 불경기라고 하더니만 이집은 사람들로 미어 터집니다.
버스를 타자마자 "엄마 왜 빨리 안나와.."하고 짜증을 냅니다. 쿠폰을 사용한 사람들은 할인이 안되는데 계산하는 아가씨가 착각을 했는지 할인을 해 줘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 나왔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영수증을 다시 꺼내 봅니다 얼마나 나왔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영수증이 두장입니다. 고객용도 있고 싸인한 대표자용도 있습니다 둘이서 멀뚱멀뚱 얼굴을 쳐다보다가 사태 파악이 되가자 웃음이 터집니다. 버스안이라서 그렇지 아마도 길거리 였다면 서로 배꼽잡고 웃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실컷 배 두두리며 먹고 빵도 세개나 싸 달래서 가지고 오고 참 스테이크도 포장해가지고 왔는데 ...
그럼 이게 공짜인가요?
그래도 미심쩍은 딸아이는 한달후에 나올 카드 대금을 봐야지만 알수 있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라고 그러지만 내손에 든 싸인한 대표자용 명세서는 뭐란 말입니까?
어제 잃어버린 만원을 이제서야 보상 받는거 같습니다. 그 식당한테 미안하지 않느냐구요? 후후 조금 미안하지만 다시 돌아가서 카드명세서를 줄 생각은 없으니 어떡하지요? 그게 아니고 그 집은 손님이 너무너무 많아서 이렇게 공짜로 슬쩍 얻어 먹어도 그리 미안한 맘이 들지 않네요.
저녁에도 둘이서 싸 가지고온 빵과 고기를 펴놓고 먹으면서 맛잇다 소리를 연발합니다. 다음에 또 한번 이용해 줘야지 하면서..
참 호주의 수도는 캔버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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