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전 호스피스 봉사 하는병원에서 만난 환자의 얼굴이
기억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핏기없이 노란 얼굴에 바짝마른 육신은 생의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간호사 인딸은 연방 엄마를 부르며 희미해져 가는 엄마의 의식을 일깨우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본건 환자와 그딸이 아니라 20년 전의 엄마의 나의 모습이엇습니다.
지난주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임종을 맞기위해서가 아닌가 했습니다.
엄마가 아프기전 그저 엄마는 강한 생활인이였고,
다른엄마들 처럼 다정한 엄마는 아니였습니다.
엄마의 그냉정함과 강함때문에 어린시절 한때는 울엄마는
친엄마가 아니라고 생각한적도 있었으니까요.
폐암 진단을 받고 엄마는 딸인 나에게 살림과 간호를 해주길 원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집으로 내려온 나는 그날로 전쟁이었습니다.
하루 하루 쇠약해져 가는 엄마의 약과 까탈스런 동생의 도시락을 싸야 했습니다.
결혼과 함께 분가한 오빠는 엄마가 돌아가시기까지 두번 온게 다였습니다.
단지 엄마는 그저 살림만 살고 그저 엄마인줄 알았습니다,
모든일은 그저 말만하면 다해결해주는 해결사 엄마....
엄마와 가장 가깝게 살았던 7개월의 시간은 지금도바꿀수 없는 시간입니다.
엄마와딸로, 그리고 여자와 여자로...........
그전에 내가 알던 엄마는 잔소리꾼, 돈만 아는 구두쇠, ......
그게 다였습니다.
하지만 그 일곱달이라는 시간은 엄마의 약한 모습을 볼수 있었고
내가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해줄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힘들때 마다
' 잠결에 죽었으면 좋겟다' 는 말도 다 거짓이었습니다.
그건 정말 넋두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런 약도 없이 민간요법으로 마지막엔 마약성분의
진통제로 살고 싶다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엄마의 모습...........
암으로 인한 두통이 오면 방에서 다 내어쫏았습니다.
방문 걸어 잠그고 혼자서 그 고통을 다 참아내셧습니다.
이를 악물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행여 들릴세라 참으시는
엄마를 위해 진통제 주사 놓는법을 배워야 했고 눈물을 참는 법을 배워야 햇습니다.
신음소리가 들릴때 마다 부뚜막에 앉아 소리죽여 울어야 햇던 지난날.......
엄마는 육신의 고통으로 나는 마음의 고통으로 그렇게 같이 울었습니다.
울면서 보낸 7개월의 시간은 내가 평생에 흘려야 할 눈물을 다흘리게 했습니다.
그 후론 별로 울어 본적이 없으니까요.
엄마의 지난삶을 들을수 있었고 엄마를 알수 있었던 그 시간.......
지금의 어떤 시간과도 바꿀수 없는 시간입니다.
가장 불행햇던 시간들이 이젠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 시간이 없엇다면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들은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해 할수 도 없었겠죠.
불혹의 나이에 돌이켜본 엄마는 정말 강한 분입니다.
그리고 닮고 싶습니다.
고통의 인내를,
표현의 절제를,
자신의 고통이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던 엄마의마음을
오늘 새삼 느낍니다.
한번도 해보지 못했던 말 지금 해볼까 합니다.
엄마............
사랑해요.
영원히........................
그리고 고맙습니다.
은혜 갚을길 없지만
내 생이 끝나는 날까지 엄마 사랑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