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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입학식


BY 얼그레이 2004-03-05


이른아침 졸린눈을 비비고 남편의 출근을 서두르고 난뒤,
눅눅해진 방안의 탁한 공기를 환기시킬려고 창문을 활짝 열어재끼면 창너머로 보이는 인근학교에서 들리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요며칠사이로 부쩍 더 커지면서 귓전에 맴돌다가
방안내부로 스며들어 웅웅하며 어느새 곳곳에 퍼져있네요..
그동안 잠잠하던 나뭇가지에서 파릇파릇 움이 싹트오는 새봄과 함께 학교도 지난날
눈물을 글썽이던 졸업시즌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젠 막 입학식을 끝내고 새학기를 시작할려나 봅니다..

작은방책상위에 놓여있는 노트북과 바싹 붙여있는 벽면의 창문밖으로 목을 쭉 내밀어
밖을 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란히 한눈에 다 들어온답니다..
낮은 담장의 초등학교길엔, 자기따나 사회의 첫관문이라는 학교에 들어가는 햇병아리같은 초등일학년생이
엄마랑 손을잡고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며 걸어가는 걸 보면 나두 어서 학부모가
되어 자기몸에 버거운듯 묵직한 가방을 어깨에 매고가는 아이와 조잘조잘거리며 걷고싶어지네요...

그러면서 결혼하고 일년정도쯤 지났을까! 아직 아가씨띠를 벗지못했던 때,
학교때문에 시간을 낼수 없었던 큰언니를 대신하여
큰조카의 입학식에 학부모가 되어 따라갔던 기억이 문득 생각나네요...
입학식하루전날 언니로부터 조카녀석 입학식에 대신 가줄수 없냐는 전화연락이 와서
그날저녁에 주섬주섬 입고갈옷을 그나마 좀 점잖은 옷을 미리 챙겨두고,
그 이튿날 남편 새벽밥먹이고 출근시킨뒤, 지하철로 두시간 좀 안 걸리는 언니네집화곡동으로 갔었답니다..

단며칠간의 대타학부모역할이라고 하지만,
조카와 학교도 가기전에 학부모가 되는 당사자인 언니보다 제가 더 설레였답니다..
먹성이 좋아서 덩치는 또래아이들보다 훨 커지만 늘 덤벙거리는 조카가 염려스러운지
언니는 자기를 대신해 날 보내면서도 영 개운치 않은지....
학교가면 담임이 전하는 말이나 알림장을 꼼꼼하게 챙겨두라는 부탁을 하더군요..

울딸들에게도 첫조카라서 그런지 다른 조카들보다 어릴적부터 유난히 정이 많이 가는 큰조카애...
언니의 자식에 대한 넘치는 기대심리로 가고싶지 않은 학원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여기저기 다녀야 했었던 가여운 아이...
학교나가는 것도 모자라서 교육대학원까지 다니는 도가 지나칠정도록 공부에 욕심이 많고
억척스럽고 자로 잰 듯한 깐깐한 성격소유자인 언니를 보면 그애 앞날이 더욱 걱정되기도하고...
직장일하랴 공부하랴 시간에 좇겨사는 언니로인해...
어쩌면 엄마손길이 더 필요할 때에 이웃에 사는 아줌마의 손길이 엄마의 그것보다
더 많이 닿다시피 자라온 사랑과 관심이 많이 필요한 조카녀석.....

그런 조카와 입학식날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면서 걸어서 녀석이 앞으로 다니게 될 학교를 갔었지요..
담임이 아직 오지 않은 교실내에선 캠코더를 들고와서 부지런히 자기아이의 얼굴을 담아내는 엄마며
아이의 사물함에 휴지며 도화지며 잡다한 준비물을 꼼꼼히 챙겨넣는 엄마며,
아이옆에 붙어서서 노심초사 조심시키는 말을 건네는 엄마며,
앞뒤로 앉아서 짖궃게 손장난을 하며 노는 아이들이며,
엄마와 아이들이 뒤범벅이 되어 엄마가 아이를 챙기는지 아이가 엄마를 챙기는건지 모를정도록 하여튼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답니다..

다른아이에 비해 유난히 덩치가 큰 조카녀석은 하필이면 젤 앞에 자리를 잡아 앉았는데,
오히려 자기몸뚱이가 삐져나올듯한 다소 작은 의자에 떡 버티어 앉아있는게
덩치에 맞지않게 무척 귀엽더군요...
웅성웅성 복잡한 교실내로 들어가기가 뭐해서 살짝 열려져있는
교실의 앞쪽문 곁에 약간 비켜서서 조카녀석을 바라다보고 있었답니다...
삼십중후반의 나이일것같은 아이엄마들틈에 끼여있을려니 뻘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었답니다...

자기 엄마가 입학식에 오지 못한건 아무렴 상관없다는듯,
그 열려진 문틈사이로 내 얼굴과 얼핏 마주치자,
조카의 한쪽 눈은 찡긋거리며 입은 개구진 모양으로 허벌레거리며 다물지를 못하더니
한손팔은 어설프게 약간 구부려 올려 나를 향해 바이바이 흔들며 기뻐하는 모습에 학부모도 아닌 내가슴한켠이 뭉클해짐을 느끼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답니다...
'이 녀석 아주 어렸을때 기저귀를 제때 갈아주지 않아서 녀석엉덩이를 벌겋게 짓무르게 해서 언니에게서 호되게 야단도맞았었는데...벌써 학교에 들어가다니..'

그러다 담임이 교실로 들어와선 이러저런 지침과 당부말씀을 간단히 끝내고나선,
교실뒷쪽 빈공간에 꼬마입학생들을 세워놓고선 자리와 짝을 정할모양인듯
도토리키재기하듯이 아이들의 땅딸막한 키를 앞치락뒤치락시키면서 재더니,
키순서대로 일렬로 나란히 정렬이 되자 앞으로 자기가 앉아서 공부하게 될 자리를 찾아들어가더군요

울조카녀석은 어떤 자리냐구요?...
이런때는 키큰것도 죄인지 짝없는 외기러기신세마냥 맨 뒷자리에 쓸쓸하게 앉아있는게 안되어 보이더군요...그래도 자기 오른쪽옆분단의 맨 뒤쪽에 앉은 사내아이들은
자기짝꿍이 여자가 아닌게 탈이라면 탈이지 그나마 짝이라도 있는게 다행인데...
요즘 학교내 성비율이 불균형하다는 말이 실감이 나더군요...
그렇게 아이들은 자기자리와 짝궁을 찾고난뒤,
입학식을 거행하려 두줄로 줄지어 운동장으로 나가고 엄마들도 아이들의 뒷꽁무늬를 졸졸
따라가고, 가뜩이나 짝이 없어 외로운데, 줄의 맨뒤끝으로 고개를 떨구며 걸어가는
조카옆에 따라붙어 괜찮다며 머리쓰다듬으며 저 또한 따라나갔답니다...

운동장에서의 지루한 일장연설을 듣는 입학식이 끝난뒤,
교실로 들어온 아이들과 엄마들은 다음날 챙겨와야 할 교과서며 준비물들을 하나씩 숙지하는걸 끝으로 별 다른일없이 입학식일정은 후딱 지나갔답니다...

그리고 조카와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학교후문앞 길건너편에 달고나장사 아저씨가 쪼그리고 앉아서 밑이 약간 까맣게
그을린 국자에 설탕을 한움큼 담아 연탄불에다 하얀거품이 보글보글일정도록 쪼리더니,
소다를 푹 찍어넣자, 금새 부풀어오르며 빛깔이 노르스름한 달짝지근한 달고나를 만들고 있더라구요...
내 초등시절에도 하교길에 바지주머니속의 코묻은 동전을 짤짤거리며,
연탄불에 옹기종기 쪼그리고 앉아서 대나무를 다듬어 만든 젓가락한짝으로
푹 찍어서 쫘아-악 길게 당겨 입에 가져다대면 
온통 주둥이는 식으면 금새 푸석거리며 끊어지는 가는 실같은게
덕지덕지 붙어있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맛나게 먹던 쪽자...
(울고향에서 달고나를 쪽자라고 불렀지만 여기사람들은 쪽자가 뭔말인지 이해못함)...
내 어릴적이나 조카가 학교들어가던 때나 이것하나 변하지않고 그대로 이어오는건 참 희한하지요...내 초등학교다닐땐 쫀드기도 참 맛있었는데...
먹는거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인 조카넘과 전 방앗간을 그냥 지날리가 없었겠죠..
주머니에 딸랑딸랑거리는 동전을 탈탈 털어서 조카 하나,
나 하나 입에 하나씩 물고 너무도 흡족해하는 얼굴로 서로를 빙긋이 쳐다보며
집으로 돌아왔었답니다...

입학식이 있던 날도 조카의 공부를 봐주고 저녁을 먹이고, 언니가 퇴근하는대로 전 집으로 돌아왔었죠..
일주일가량은 울집에서 언니집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조카의 대타부모노릇을 했었답니다..
큰덩치와는 안 어울리게 울기도 잘 울고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작은 아이에게도 늘 얻어터져서 집에 들어오고,
매사에 덤벙거리고 자기물건 하나도 못챙기고 잘 깜빡깜빡하는 조카녀석이 안심이 안 되어서 학교엘 적응을 잘 하고 있는지 그 후에도 언니에게 자주 묻곤 했었지요...
입학식이 있고 얼마있지않아 언니와 조카둘이 울집에 잠깐 놀러를 왔을때...
녀석이 학교에서 똥을 자주 찔끔찔끔 절이는 버릇땜에 정신과치료받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선 가슴이 무지 아팠답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살도 디룩디룩 더 찌고,
자기엄마보다 키가 훌쩍 더 커버렸지만...
항상 가슴한켠에 그애가 항상 가엽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큰언니의 고등학교시절 집형편이 좋지 않아서 인문고를 포기하고 어쩔수없이 상고에 진학해서 악바리같이 힘들게 공부해서 대학진학을 한 언니입장에선,
경제적으로든 아무것도 부러울것도 없이 풍족해보이는 조카가 공부에 취미를 별로 못 붙이는걸 조금도 이해하지못하고 늘상 답답해하죠.....
조카에 대한 언니의 욕심이 지나치게 과한걸까요?...

곰발처럼 생긴 그 두툼한 손으로 손에 잡기에도 힘든 자잘하고 조밀한 플라스틱조각으로
자동차며 비행기를 조립하는거보면 손재주가 참 뛰어난 아이 같은데...
사람은 아무리 못해도 누구나 한가지씩 재능을 타고난다는데,
그런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는것도 엄마의 몫일진데..
숙제할라치면 글자한자라도 삐뚤거리면 가차없이 조카에게 쏘아붙이는 걸 보면
어디까지나 자식 잘 되라고 그런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언니가
과연 부모노릇을 잘하고 있는건지 의아스럽기만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을 어렵게 갔던 언니자신을 떠올리면서
아이에게 어떻게든 대학은 나와야 한다고 늘 입에 침이 마를도록 강조하지만...
그 나이의 아이에겐 그걸 받아들이기에 넘 버거운 짐인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아직은 먼지풀풀나는 흙냄새 맡으며 걱정없이 뒹굴며 맘껏 뛰어놀고 지내야할 나이에...
울어른들의 기대와 욕심으로 어느덧 그들의 대리만족의 대상이 되어버린 불쌍한 울아이들...
학교라는 새로운 공동체사회에 막 입성하는
순수하고 푸릇푸릇한 꿈으로 가득찰것만같은 초등일년생의 햇병아리들도
성적이 모든가치의 기준이 되어 그외 개인이 지닌 개성이며 특수성이 배제된
왜곡되고 삐뚤어진 교육의 장, 학교에서
쓴맛단맛을 다 알아버리는 가여운 아이들로 바뀌어가는게 아닌지하는
괜한 걱정을 해봅니다..

하지만, 새로운 봄이 시작되는 출발의 문턱에서,
울어른들과 사회의 인식이 한층 더 밝아지고 성숙해져서
지금의 울아이들의 삶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행복해졌으면 하는 실낱같은 소망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