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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면 뭘 못하니?"


BY 개망초꽃 2004-02-25

신문에 이런 광고문구가 있었다.
탐욕스럽게 먹고 더 많은 돈을 벌고 누군가를 누르고 위에 올라서는 것보다는
건강하게 먹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삶을 원한다는...

신문은 매일 매장으로 들어와 직원이 보다가 탁자나 사과 상자위에 올려져 있다가
점심을 먹고 난 후 한가한 시간에는 내 손에 들려있다.
매장을 시작할 무렵에는 시간이 남아 돌고
손님도 없는 창밖을 물끄러미 보는 것보다는 신문을 들고 밥을 먹는 탁자에 앉아 있으면
손님이 없어 안돼 보이거나 장사가 안돼서 걱정하는 모습을 감출수 있어
찻물을 마시며 만화부터 광고까지 다 보았었다.

몇 달전부턴 이러한 한가로운 시간이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멀겋게 창밖을 볼 시간은 커녕
신문을 펼칠 수 있는 오후시간을 갖는다는 건 옛이야기가 된 것이다.
요즘은 뜨거운 냄비를 올려 놓을 때나
신문지로 채소를 덮어둘 때만 요즘도 신문이 잘 오고 있구나 한다.
그리고 한달에 한번씩 신문대금을 내 주십시오하는 고지서를 받으면
짬을 내서 신문을 봐야하는데 돈만 아깝구만...
은행에 가서 신문값을 치루면서 일년이 넘었으니까 이제 그만 신문을 끊어도 되지않을까?
하다가도 직원 눈치가 보이고 그깟 신문값 얼마한다고
나도 참 짠지다하면서 또 신문에 대해 잊어버린다.

오늘도 안바쁜건 아니였는데 차 한잔을 마시며 신문을 뒤적이게 되었다.
신문 한면을 다 차지하는 광고와 광고문구를 보고 그래 이런게 제대로 사는건데 했다,

몸 건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으며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
그래 딱 이거야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걸 잃게 되다는 걸 안다.

몇년전 나는, 내가 만들지도 원하지도 않은 낭떠러지에 떨어졌었다.
바다가 보이는 바위에서 떨어지거나 고갯길 낭떠러지로 추락한 게 아니고
삶에서의 낭떠러지에 떨어져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
일어나서 다시 걸어야하는대도 걸어갈 마음이 없었다.
굶어서 영양실조로 죽던지 삶의 애착이고 뭣이고 정신이 빠져 떠돌아 다니던지
스트레스로 인한 나쁜병이 걸려 죽을게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고 있었다.

이 무렵 내겐 언니같고 엄마같고 친구같은 막내 이모가
젓가슴에 멍울이 잡힌다고 잠을 못이루더니
검사결과 유방암이라는 병명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유방절개 수술을 하고 입원했다는 이모에게 가기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로 나가던 계절은
낙엽이 이리 휘날리고 저리 뒤집어지던 심란한 늦가을이었다.
초췌하고 노란병이 든 얼굴을 해가지고
미장원을 안가지 일년이 된 머리를 감추기 위해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이모가 입원해 있던 병실에 들어서니 이모는 더 노랑색 물감을 얼굴에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모는 내 손을 잡더니 눈물이 고였다.나도 고인 눈물을 어쩌지 못하면서 심약하게 웃었다.
이모는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휠체어에 링겔을 걸고 조용하고 구석진 창가를 찾아 자리를 잡았다.
"뭐 마실래?"
"아니..."
"얼굴이 헬쑥하다. 머리 좀 하지 그게 뭐니?"
"이모는...수술한 사람이..."
"난 요즘 이런 시를 읊는다. 삶이 그대를 속이더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넌 나보단 낫다.난 암이란 걸 알고 며칠을 울었어.이대로 죽는구나.이대로..."
"이모보다 더 나을 것도 없어."
"넌 다시 시작할 수 있어.건강한데 뭘 못하니?"
병문안을 왔다가 내가 와전이 돼 낭떠러지에서 기어 올라가야하는 이유를 들어야했다.
다시 못일어서고 죽심네하고 있으면 어떡하냐고
좋은 남자 만나 사랑받고 살면 되지 그런 놈 못잊어 노랑병이 드냐고
부모없는 아이들도 잘 크는데 상아 상윤이는 너가 있는데 잘 클거라고
혼자 사는 여자들 주변에 디굴디굴하다고
요즘 세상은 싹이 뇌~란 남편과 사느니 홀로 서기를 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그렇게 이모에게 병문안을 다녀 온 후로 이불을 걷어 치우고 일어나 앉았다.
내가 이불을 걷고 앉았을 때 이모도 병원침대에서 일어나 퇴원을 했다.
내가 일어나 베란다의 화분을 정리 할 때
이모도 입원하는 동안 꽃나무가 기운을 잃었다고  영양제를 주고 시든 잎을 정리했다한다.
겨울 함박눈이 펑펑 오던날 항암치료를 받고 길거리에서 다 토해 내면서 이모는 울었다.
너무 괴로워 하는 이모 모습을 보며 내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음이 한스러웠다.
눈을 맞으며 이모 옆에 서서 한숨만 쉬었다.
눈은 생과 사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이모에게나
가진거라곤 아이둘과 움직일 수 있다는 삐쩍마른 몸둥이 밖에 없는 나에게 골고루 내려 주었다.

비우기로 했다.
사랑도 재산도 결혼도 아이들도...
그러고 나니 하루가 훨씬 가볍고 장사가 덜 되어도 내일은 잘 될거야 하면
다음날은 기분좋게 장사가 잘 되었다.
아이들 문제도 내가 성화한다고 되는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결혼이란 굴레나 사랑에 대한 뜬구름도 없어졌다.

그래,이래 사는거야.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잖아.
글 쓸 수 있는 새벽이 매일 오잖아.
나만 기다리는 아이들도 있고
밥먹었느냐고 성화하시는 엄마도 있고
친구같고 언니같고 인생상담을 할 수 있는 이모가 암을 이기고 잘 살고 있잖아.

오늘도 신문은 약속을 잘 지켜 사과 상자 위에 얹저져 있었다.
아직 뒤적일 여유가 없었지만 큰 글자라도 봐야지.
비가 오려나? 어둡네... 벌써 저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