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계셨으면 일흔이 넘었을 아버지는
그 시대의 아버지 상이 그러하듯 과묵하셨지만
그 속의 여유로움은 날 늘 평화롭게 하였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일지라도 어느 한 순간은 사진처럼 찍히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잊어버린 창고에서 그 사진 한 조각 건져내어
먼지 툭툭 털어 쳐다 보면 명치 끝이 아리곤 하였다.
내가 7살이었던 어느 여름 한 낮,
햇살이 방 깊숙이 몸을 웅크렸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던 날이었다.
나에게 미소를 보이시던 아버지는 갑자기
피아노로 큰 걸음을 옮기시고는
비소리에 이내 묻혀 버릴 것 같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셨다.
비소리는 여름 날 잡초 자라듯 쑥쑥 커지고
난 아버지의 피아노 소리를 잡기 위해 귀를 한껏 열어야만 했다.
열어 둔 창으로 구분없이 넘나드는 비소리에,
이후에야 제목을 알게 되었지만 “Vivaldi의 spring”은 이내 젖어 버렸다.
오직 7살 작은 아이를 위한 작은 콘서트는
그 여름 한 낮이 지치도록 계속 되었다.
난 지금도 아버지가 왜 그 여름 날, 소나기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spring”을 치셨는지는 모른다.
피아노 치던 아버지 어깨 뒤로 늘 보이던 키 큰 나무도,
아버지의 단단한 팔목을 늘 감던 셔츠도 그날의 아버지에게서는 기억해 낼 수 없다.
다만 내 기억 창고 속에 곱게 접어 담아둔
나를 보고 행복하게 지으시던 아버지의 미소...
소나기...
피아노..
그리고 7살 작은 아이가 만든 한 장의 사진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불쑥 불쑥 나를 찾아와 내 명치 끝을 아리게 하곤 한다.
그것이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이든..아니면 그리움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