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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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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미장원을 개업하게된 이유


BY alice 2004-02-13

내가 가족들의 머리를 자르고 재봉틀을 돌린다고 했을때 친정엄마는 눈물을 글썽이셨다. 그리고 언니는 믿지도 않았지만. 천방지축 선머슴아가 따로없었는데 설마 네가 하는 투였다.

 

그러나 결정적인 사고가 있은후 난 우리집 미장원의 개업을 서두르게 되었다고나 할까.. 사실 난 미용이니 손재주니 하는 것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자랐으니까. 근데 결혼을 하고보니 내 신랑은 한달에 한 번씩 머리를 손질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연애할때부터도 한달에 한번씩 가는 미장원 출입에 내가 동행한 것은 물론이요 결혼후에도 우리는 항상 함께가서 그의 머리도 손질하고 때론 나의 머리도 함께 할때가 많았다.

 

미장원은 남편의 학교가 가까운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중국계 미장원이었는데 장소도 넓고 깨끗하고 서비스가 아주 좋은 미장원이었다. 그리고 머리를 감기면서 하는 머리 마사지는 정말 뛰어나 공부에 찌든 학생들이 왜 단골이 되는지 알수있을만큼 일품이었다.

 

머리 손질이 끝나면 남편과 함께 차이나타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다운타운을 걸어 다니는 것으로 우리는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러니 함께 동행을 해도 손빠른 서비스가 끝나면 하루의 즐거운 일과를 고대하며 함께 미장원 출입을 했었다. 그러기를 5년째 하던 어느날...

 

남편은 커다란 국가고시를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는 기력이 역력했으나 내가 할수있는게 별루 없었다. 직장에서 끝나고 돌아오니 이 신랑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와이구.. 세상에나...

 

남편의 머리는 게그맨의 가발을 연상할만큼의 버섯머리에 머리 중간부분은 아얘 빡빡 밀어져서 있었다. 화가난 남편은 너무 속상해 말도 못하고.. 차근차근 물어보니 공부하려는데 그날따라 잘 안되더란다. 시험이 한주 밖에 안남았는데 또 그날 병원에서도 꼬이는 일만 생기고 그래서 주말에 미장원 갈 시간도 아껴서 공부하려고 가까운 동네 미장원에 갔는데 일이 이렇게 됐다고..

 

그래서 "할수없지, 머리야 자라면 되는 거니까 괞찮아.. 그럼,  한달 꾹참고 기다려서 다시 손질하면 되지 뭐.." 이러고 뒤돌아서는 남편을 보는 순간 나는 아찔해지고 말았다.

남편의 머리속에는 나도 모르는 구멍이 뻥뻥 두개나 커다란게 자리잡고 있었다. 세상에..땡칠이가 따로없네. 저걸어쩌지..

 

급한김에 화장실에 가서 혼자 한숨을 쉬다가 기가막혀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학없는 땡칠이니.. 근데 문제는 예민한 이 남자 얘기하면 속상해서 잠도 못자고 신경쓰여서 돌아도 못다닐텐데 시험이 일주일밖에 안남았는에 어쩌나.. 고민끝에 말하지 않기로했다.

다행이 미국 사람들은 남이 어떻게 하고 다니던 신경을 별로 안쓰고 외모와 관계되는 발언은 삼가하니까 설마 누가 일부러 말하지는 않겠지 내심 믿는맘으로..

 

결국 혼자 낄낄거리고 일주일이 지났다. 시험이 끝나서 신나하는 남편을 불렀다.

"허니 내 얘기 잘듣고 실청해야되. 알았지? 앞으로는 환자앞에서 절대로 위돌아서지마 당분간 . 알았지?" "왜?"

"그냥 그렇게 해."

"왜?" "왜냐하면 허니 머리에 구멍이 커다란게 두 개 있는데 그게 굉장히 덜떨어진 사람처럼 보이건든  푸하하하 히히히.."

 

참고 참았던 웃음이 터졌다. 눈물이 나오고.."그냥 기다리지 머리는 왜 잘라서 얼마나 웃긴지 아냐?"  그제서야 아나색이 바뀌면서 "뭘"  "뭐가 어떤데?" 

"허니 머리에 커다란 구멍, 히히히.."

 

본인도 모르는 구멍을 단골 미장원에서는 잘도 커버했는데 이 초짜였는지 알수없는 이 아가씨는 동양인 머리가 처음이였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잘랐단다.

결국 남편은 이제 자기도 머리 자르는걸 배워봐라. 조금있으면 우리는 중서부로 이사해야 하는데 거기는 한국 미자원도 없고 동양인도 별로없으니 당신이 더 믿을수있다 라며 나를 데리고 미장원에 가서는 잘 봐야 한다며 신신 당부를 하는거였다.

 

마침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 출입하기에도 힘이들고 사내아이라 자주 머리 손질을 해야하는 터라 내가 집에서 간간이  가위를 들곤했으니까..

 

그러던 것이 이제는 단골 손님이 넷으로 들어서 얼마나 바쁜지 모르겠다. 남편, 조카, 그리고 우리 아이들 둘.. 모두 사내들이니 같은 머리모양으로 자르면 되지만 요구는 가지각색이다.

아이들은 욕조에서 잘라야 좋아하고 남편은 예약도 안하고 원하는 때에 잘라달하고,

팁도 안준다고 투덜거리면서도 깨끗해진 모습을 보는 재미에 신이나서 머리손질을 한다.

 

어느새 경력이 붙어서 미용 기술도 전수하고..히히 (동네 아줌마들)

그리고 자기 남편 머리도 손질해 달라는 어려운 부탁을 하면 안된다고 거절한다. "내꺼야 망쳐도 데리고 살아야 하니까 괞찮은데 당신꺼는 힘들지.. 손이떨려서 안돨거야."라고. 사실이거든 이 남자는 이제 조금 머리가 망쳐져도 "찮아 이뻐, 이뻐" 참고 기다릴줄도 안다 한달동안..흐흐

 

어째든 미국에와서 선머슴아였던 내가 이렇게 소질이 있는 분야를 개발할지는 나도 몰랐으니. 미용에 재봉질에 그리고 화단정리 등등..

정말 많은 부분을 찾아내었다. 그리고 생활을 여유있게 즐기는 방법을 배워간다. 종종거리며 실속없이 뛰어다니느라 알지 못했던 여유. 아이와 함께 목욕을 하고 함께 씨를 뿌리며 그렇게 나는 변해가고 있다.

 

여자 손님은 사절입니다요. 접대 경험이 없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