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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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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목석으로 만든 그남자.....는


BY 순이 2004-02-07

  
내 책꽂이에 다른 책들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 하나있다. 
평소에는 잘 보지 않는 책... 불교서적 
오늘 문득 그 책을 보니 지난일이 생각난다. 


내 이상형의 샘플 외사촌오빠... 
부산동아대 법대를 졸업하고 
양산 통도사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시절 
옷과 간식거리를 건네준다는 핑계삼아 
친구 명희와 엄마심부름을 자주 갔다. 


같이 공부하던 오빠 친구 얼굴도 한번 더 보려는(^^;) 
내 나이 16살 사춘기시절의 이야기이다. 


유난히 말수가 없었던 오빠의 그 친구는. 
몇번 낙방의 고비를 맞고 
어느날 고등학교 영어 교사와 결혼을 했는데 
끝내 포기하지 못한 고시를 하기위해 
이절 저절을 방황하다가 스님이 되어버린 사연.......  


결혼을 하고도 공부 때문에 항상 그 언니는 혼자였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 
"혼자 외로워하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 살아라." 
시험에 낙방할때마다 하던 말, 
그 언니는 기다리다 지쳐 끝네 이혼을 하고 
그후 오빠는 공부를 포기하고 스님이 되고 말았다. 


슬픈 영화처럼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든 
그 사건이 잊혀질만큼 세월이 흘렀었다... 


85년 난 
계단에서 굴려 몸을 다쳐 서지도 앉지도 못했다. 
아들과 친정에 와 사는데.... 
오빠가 내 소식을 듣고 
집착과 소유의 어리석음을 일러주는 
작은 메모와 함께 힘이 되라고 
필히 보내준 불교서적 
언제나 내 책상옆에.....놓고 
힘들거나 치칠때...외로울때 난 그 책을 찾았다.

 
비록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마음의 잔물결을 
잠재우는 하늘의 자장가처럼 퍼져나가 
어느새 순하게 잠자는 응어리들... 
'그래 정말... 힘이 되는구나...' 


오빠가 있는 절 근처에 갈일이 있었다. 
책하나로 힘을 준 고마움에 인사라도 할까하는 
심정... 발길을 향하게 한다. 
절에 접어든 나는 목석이 되어 서있었다. 


16살 시절 책을 탐독해 열중하는 것이 
처음으로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주어 
그이후 나의 독서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던 
장본인... 


그 오빠가 유난히도 반짝이는 머리와 
반듯한 자태로 나와 동시에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슬며시 짓는 웃음... 
난 외로움에 찌들은 인생의 낙방에 뒷길로 쳐진 
중년의 남자 스님을 상상했는데 
그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빠는 너무도 평온하게 서있었다. 


예전보다 초라하고 늙어진 모습에 작아진 외모.... 
그러나 그뒤에는 더욱 넓은 여유와 웃음... 
오히려 성스럽다고 할까? 
그 모습에 난 심한 충격조차 받았었다. 


그 맑음에 세속의 찌든 내가 근저할 수 없기 
때문었을 거다... 간단히 안부와 인사만을 전하고 
서둘러 발길을 되돌린 것은... 


사람의 선입견은 얼마나 얄팍한가! 
결혼에 실패했다고,,, 인생에 좌절했다고... 
누구보다 초라할 것이라는 
오만한 동정심을 보였던 나... 
얼마나 바보같은지.... 


수풀사이 작은 벌레와 들꽃들 나를 쳐다보며 
연민하는 듯 느껴졌다. 


섵부른 판단과 보잘것 없는 욕심들로 
가득찬 나...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우울함으로 채우고 
눈물로 하얀밤을 지새우던 지난날의 내모습이 
영상처럼 쏟아진다. 


인생에 이룬 것이 없다고 나는 무엇인가 하고 
수없이 되물었건만...... 
그래..... 결국 이룰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무소유'가 인생의 종착역인 것을... 
나..... 왜 이리 우왕좌왕했던지..... 
내 모습에 내가 웃겨 히죽히죽 웃어본다.
못난 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