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혼 소송을 하고 있는 중 배우자의 동의 없이 시험관 시술로 아이를 임신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82

폐업신고


BY 동해바다 2004-01-15



     세무서에 다다르기 전 깔끔하게 단장된 정남향의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햇살을 가득안은 빨간벽돌 집...
     과감하게 담을 허물어 확 트인 집이 내 마음속 묵은 찌꺼기를 다 털어낸듯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휴.폐업신고 용지에 간단하게 기재한 다음 사업자등록증과 함께 제출하니 이제 가도 
     된다고 한다.
     뭔가 허전한듯...빠진것이 있어 추가기재나 다른서류를 제출해야 될듯 하나..
     다 되었다고 하니 웃음이 나온다..
   
     큰 사업도 아니구 작은 가게 하나 하면서 무슨절차가 복잡할까만은 그래도 세무서 하면
     까다롭고 복잡하고 귀찮은 곳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릴잡고 있었다.
     폐업신고가 '피식'하는 웃음과 함께 옷에 붙어있는 머리카락 떼어내듯 간단하게 끝낼수 
     있는 일이었나 보다...

     일없이 유유자적 취미생활과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남편은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네가 돈번다고 나를 무시해...'라는 싸울때마다 나오는 단골메뉴로 나를 질리게 만들곤 
     했는데...
     내가 일을 할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일이 있어야 한다는 뼈저린 결론을 내리면서도 쉬이 
     덤비지 못하는 소극성과 경기침체로 늘 그자리에서만 맴맴 돌 뿐이었다.

     가게를 세를 주어 집세로 우리생활에 보탬이 되게끔 말해보지만..
     무슨 미련이 있어서인지 그냥 둬보자고 말하는 남편에게 이제는 질타도 야유의 말
     한마디도 꼭꼭 끌어안으며 시간을 흘리고 있다..
 
     컴퓨터와 루사, 매미의 영향으로 침수되었을때 가장먼저 집어들었던 국어사전..
     그외 읽고있던 책들과 노트 등은 아직도 썰렁한 가게안을 지키고....
     창고 안에는 벌거벗은 마네킹들 남은 쇼핑백...그리고 상반기까지 짬내어 그렸던 
     캔버스와 이젤..유화물감이 흐트러져 다시금 나와 친해질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데...
     폐업신고까지 한 지금....왜 그리 정리하기 싫은지 손을 놓은채 전업주부로의 몇날을 
     지내고 있다.

     일당받아 그날그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요즘...
     그냥 가만히 있어도 돈이 나오는 소액의 불로소득에 입하나 뻥끗할 처지가 되지 
     못하지만 사람에겐 일이 있어야 살아남는다는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
     그래도 남자는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와야 하는데 말이다...
     50이 넘은 나이에 무슨일을 어찌해야 할까.....
     돈보다도 중요한 일....
     생활에 전혀 보탬이 못된다 한들....남편에게 일만 주어진다면 내게 가해지는 어떤 고통도
     참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당신은 나를 잘못 만났어....당신 그럴때 억척스럽고 현명한 여자였다면 당신을 그렇게 
     놔두지 않았을텐데....'라는 말을 난 자주 하곤 한다.

     지금은 우리들의 전쟁이 종식되었다고 서로 생각하지만...
     하루 24시간을 같이 있으면서  부대끼는 모든 일에 얼마만큼 잘 대처해 나갈른지 걱정이 
     앞선다.
     
     여리고 의지박약하여 부모님이 물려주신 재산과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야금야금 갉아
     먹고 있는 중이다.
     아이들은 모두 고교생이 되면서 들어가야 할 돈은 점점 늘어만 가고..
     벌이는 꼭 있어야 하는 부담감을 안으며 다녀 온 세무서...
     폐업신고를 하고 오니 후련함과 걱정스러움에  만감이 교차된다.
    
     저 보이는 깔끔한  빨간벽돌집도 사는것은 우리와 매한가지일터....
     겉으로 뵈는 아름다운 모습과 같이 우리 부부도 남에겐 보기좋은 떡으로만 보일게 아니라
     이해와 양보 그리고 서로를 위한 배려심이라는 고물을 넣어 정말 맛있는 떡이 되게끔 
     만들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