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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 비누는 나를 두번 죽였다


BY 나비 200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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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낮에 손님도 뜸하고 심심하기에 의자에 앉아서 두 발을 모아서 들어올리는 운동을 열 번씩 서너 번 했다. 몸이 가볍게 움직여져서 평소보다 조금 맣은 양의 운동을 했다. 다음날 자고 나니 양쪽 옆구리가 어찌나 결리는지 평소에 별로 애용하지 않던 파스까지 붙였건만 걸음걸이조차도 갈지 자로 걸어야 할 만큼 근육통이 심하다 .
아무래도 따신 물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다.
어차피 가야한다면 일석이조라...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놓고 주섬주섬 목욕갈 준비를 한다.옛날 같으면 오밤중에 무슨 목간을 가리오만은 세월이 좋다보니 낮과 밤 구별없이 돈천원 더 내면 언제나 오케이다.

목욕탕에 들어가니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요즘 아이들은 잠도 없는지 어린 꼬마아이들까지 밤에 목욕와서 부산스럽기가 시장판이다.

탕입구 한쪽으로는 하얀 세수 비누가 커다란 상자에 잔뜩 쌓여있고.그 옆으로는 제목이 숫자로 되어있는 치약도 켜켜이 상자 안에 가득하다.
아무나 들어가면서 필요한 사람은 들고 가라는 주인의 서비스 정신인가보다.

목욕탕 가려면 수건 챙기고 치약 챙기고 비누 챙겼건만 요즘은 수건도 두장씩이나 주고 비누는 탕 안에 흔전만전 돌아다니는 것이 비누고, 치약은 입구에 고무줄이나 끈으로 붙들어 매 놔서 항상 떨어지지 않고 쓸 수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목욕탕 안의 비누라도 내 것처럼 아껴 쓰면 좋으련만 웬만하게 작아진 비누는 거들떠 보지도 않고 무조건 새 비누를 들고 오는 아줌마를 보면서 옛날 일이 생각났다

해마다 교회에서는 여름과 겨울에 한 차례씩 "농촌 봉사대"를 만들어서 시골 작은 교회에 보탬이 되고자 청년들이 모여서 성경학교나 의료봉사. 또는 각 가정을 다니면서 전도를 하는 일이었다.

그해 겨울에는 강원도 작은 오지 마을로 봉사를 나갔는데 어찌나 춥고 눈이 많이 오는지 자고 나면 길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눈이 쏟아지곤 했었다
겨울밤이라 새벽예배에 일어 날려면 어두컴컴하기가 일쑤였는데 그날따라 일찍 눈이 떠 졌다. 도로 자기에는 시간이 엇되어서 혼자 일어나 우물가로 세수하려고 나갔다. 수도는 얼을까봐 못 입는 헌 옷으로 칭칭 싸 매어져서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둔해 보이고 그래도 얼을까봐 실낱같은 물줄기를 틀어놓아서 그 물조차도 얼을 까 말까 하는 매섭고 추운 날 이었다
따듯한 물을 쓰려면 부엌에 가서 퍼 와야 하는데 사모님 깨실까봐 얼음보다도 차가운 물을 한 대야 퍼놓고 비누를 찾으니 빨갛고 투명한 이쁜이 비누밖에 없다.


엄마는 냄비나 솥을 광나게 닦을 때 이쁜이 비누를 쓰셨다. 짚세기 에다가 이쁜이 비누를 쓱쓱 발라서 냄비를 닦으면 하얀 빛이 반사 되도록 잘 닦였다. 어렸을 때 이쁜이 비누는 이름처럼 색깔도 예쁘고 모양도 투명하고 동그란 것이 꼭 외제비누처럼 생겼는데 왜 사람 얼굴 닦는 데는 안 쓰이고 그릇 닦는 곳에 쓰일까 궁금했었다 .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나서 그냥 맹물로 할까 하다가 그래도 비누기는 있어야 하겠기에 망설이면서 이쁜이 비누를 아주 조금, 살짝 묻혀서 얼굴을 씻었다. 얼굴에 여드름은 밤하늘에 별 박히듯이 총총히 있는데다가 얼음처럼 차가운 물로 씻었으니 안 그래도 얼굴이 뻣뻣해질 판인데 거기다가 이쁜이 비누까지 쓰고 나니 갑자기 얼굴이 두 배로 부풀어 오르면서 쓰라리고 화끈거리는 것이 찢어질듯이 아팠다.

꽁지에 불붙은 강아지처럼 혼자서 끙끙 거리면서 찬물로 씻고 거울 앞에 가서 보고 또 씻고 하다 보니 어느새 어스름 날은 밝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눈가에 졸음을 대롱대롱 매달고 나오다가 내 얼굴을 보니 잠이 확 깨나보다.
한바탕 웃은 뒤에 "부지런한 것도 병이다" 라면서 병원 가봐라 , 아니다 의료팀에서 약을 타서 발라봐라, 마당가가 시끌시끌하다. 사모님이 부엌에서 따뜻한 물을 양동이 하나 가득 하고 다이알 비누를 들고 나오시다가 깜짝 놀라신다. 쥐가 물어 갈까봐 세수 비누는 부엌에다 두신단다.
오오오.... 다이알 비누가 있었거늘 억울하고 애석한 심정을 내 어찌 말로 다하리오!

삼고초려!
무슨 일이든지 세 번 생각해야 하거늘.. 경망한 행동으로 이쁜이 비누 때문에 폭격맞은 얼굴을, 호시탐탐 추파를 던지며 뱅뱅 주위를 맴돌던 짝 사랑 오빠에게 들키고 말았으니... 그 실망감과 상실감, 그리고 공든 탑이 무너지는 허망함을 어디다 하소연 하리오. 그 날로부터 알아서 쓸쓸히 멀어져가야만 했던 아주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이쁜이 비누는 나를 두 번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