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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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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풍상


BY 쉐어그린 2004-01-02

2004년 1월 1일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일상의 일들을 하면서
새로운 달력을 벽에 걸었지만, 그래도 첫날이란 의미를 가지고
집 안팎의 풍상을 그려봅니다.

아이들의 겨울 방학이라 집 안팎이 조금 시끄럽습니다.
둘째 한무는 뒷 강아지들 울타리 안에서 래시, 레몬과 지코와
놀고 있습니다. 래시는 한무가 개집 위로 훌쩍 뛰어오르면 컹컹 짖고
앞발을 번갈아 굴러대어 테크가 쿵쿵 울리고, 지코는 높이 뛰기를
할거라고 펄쩍 펄쩍 뛰어오릅니다.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나니, 우리집
개들이 신나합니다. 

첫째 한비는 피아노 앞에 앉아 방학동안 정해진 피아노 연주 시간을 채우려
이곡 저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음악과 힘찬 음악이 번갈아 울려퍼지는
가운데, 집 안 작은 방에서는 코시가 새끼들 돌보는라 여념이 없습니다.
밖에서 아이들과 개들이 노느라, 컹컹 짖는 소리가 들리니, 코시가 뭔
법석인가 싶어 새끼들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지도 열심히 우우 짖어댑니다.
코시의 일곱 마리 새끼들이 눈을 감은 채 꼼지락대며 열심히 엄마품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눈에 펼쳐집니다.

남편은 산 어디선가 나무를 한다고 엔진톱을 쓰고 있을겁니다.
콜라는 소파에서 가물 거리는 눈을 떴다 감았다하며 졸고 있고, 저는 지금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고.....

거세던 바람은 자자해진 새해입니다.
멀리서 보면 조용한 집만이 산에 그린 듯 앉아 있는 듯 한데,
이 집 안팎은 이런 저런 생명들의 움직임으로 부산스럽게 느껴지는
1월 1일입니다.

새해 이 겨울동안 저희는  찾아오는 손님과 저희들만의 등산로를
개척해 두려합니다. 저희 집 위쪽을 돌아 가을이면 풍성한 감을 안겨주는
가리점을 지나 운암계곡을 돌아오는 짧지만, 멋진 등산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후에 남편과 아이들은 그 등산로를 개척하기 위해 이틀간 산 위로
올라갔었는데, 산에서 영지버섯을 발견도 하고, 고라니도 보았다고 합니다.

저도 오늘은 그 일에 합류를 하려고 하는데, 남편과 아이들이 이틀간
산 위로 가서 등산로를 만드는 동안 저는 그간 미루어왔던 그릇 만드는 일을
했지요.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릇 만드는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겨울 이 한가한 철이 아니면 그릇 만드는 일을 하기가 어렵더군요.
그런데  시골로 이사온 이 후, 제가 그릇을 자주 깨먹습니다. 결혼 10년간
도시 생활에서는 그릇 깨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상하리 만치 이 시골에서는
심심하면 그릇을 깹니다.  왜 그릇을 깨면 재수 없다고 흔히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깬 그릇들이 제가 만든 것들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대신 '그릇을 만들라는 신의 뜻인가' 이런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겨울 동안
부지런히 작업을 해야 부족한 그릇들을 쟁여놓을 수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새해 아침이 너무 조용히 일상에 묻혀 스쳐가는 건
아닌가란 생각에 좀 우울했었는데, 집 안팎의 일상을 더듬다보니
아이들 소리, 개들 소리와 이런저런 풍상들이 있어 결코 무의미한 일상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결코 무의미할 수 없는 새해 첫날 작은 바램이 있다면,
어서 눈이 쌓일 만큼 와서 이 산 골짜기 마을이
하얀 눈 속에 반짝였으면 합니다.  더불어 이런저런 이유로 움츠러든 마음마저도
하얀 눈 속에 파묻혔으면 합니다.

(올겨울에 성형된 그릇들)

시골 이야기가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