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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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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부부의 송년모임


BY 27kaksi 2003-12-14


십년이 훨씬넘게 만나는 남편들의 고등학교 동창모임이 있다.
아이들 어릴때는 자주 모이곤 했었는데, 이젠 일년에 년말에나 부부동반
으로 만나게 된다.-모두11가정이다-


작년에도 부부동반 으로 마당 놀이를 갔었는데, 올해도 마당놀이를
갔었다. 늘 보다보니 이젠 대강 분위기를 알아버리게 되어버려서 덜
재미가 있었다.

극단 미추의 이춘풍전이었는데, 이젠 윤문식씨의 애드립연기도,
김성녀씨의 구성진 창 솜씨도, 너무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면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창작을 해야
하는 예술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도 있을것 같다.

예매를 한 티켓이 남았다는 이유로 둘째와 막내 녀석을 데려 갔더니만
공사다망한 우리 공익 아들은 중간에 졸았다는 웃지못할 실화 이다.

그애말로는 재미가 없는게 아니고, 너무 피곤했기때문이라나....
장래 유명한 감독이 꿈이라는 철학과 우리아들의 느긋함이란.....

애들은 보내버리고, 열쌍의 부부들은 장충체육관 뒤에 있는 대장금이란
한식요리집에서 비싼 저녁을 먹었다.

일인당 금액이 오만원이라는 궁중요리는 한식이라는 익숙함 때문인지
훌륭했다. 가짓수가 많아서 반은 남는것 같았지만....

술이 몇순배 돌면서 남자들의 얼굴이 붉어지고, 분위기가 왁자해지더니,
2차로 또 3차로 다니며, 노래하고 웃고 떠들고 오십을 품에 안은 남편
들은 이젠 아내에게 아첨하는 발언도 쑥쓰러워 하지도 않았고,

"여보! 사랑해!" 이런정도는 보통이었다.
어떤부부는 보는데서 뽀뽀를 하기도 했다.

하긴, 결혼이 아주 늦었던 몇가정을 제하면, 아이들도 대강 대학에 모두
진학을 했고, 부인들도 이젠 아무리 고급옷을 입고 단장을 해도 세월의
티가 나는 나이들이 되었으니,간단한 애정 표현쯤은 부끄러울것도 없다

사위를 봐서 외손주가 있는 가정도 한가정이 있어서인지 이제는 자녀
들 결혼 문제나, 손주를 길러주는문제, 그리고는 노후 대책에관한 얘기
들로 서로 바쁘다.

우리는 중년이되었다고 서로 확인 하는 자리인 셈이다.
여러집이니까 사정도 아롱다롱이다.

재테크에 밝은 가정은 빌딩을 소유 하기도 하고, 또 우리처럼 이재에
어두우면 걱정 많은 서민으로 살아간다.
늘 듣는 우리아이들 칭찬에 난 어깨가 으쓱하고....
- 어쩌면 애들이 인물이 그렇게 좋아요. 다그렇게 공부를 잘하니 좋겠
어요. 아들을 보니 밥안먹어도 배가 부르겠더라- ㅋㅋㅋ

늘 습관처럼 목에 힘을 주던 가정이 이번에는 무슨일이 있는지 참석을 안했고, 아이를 골프를 시키느라 집안일을 포기 했다던 예쁘장한 엄마는
아이가 프로로 나서며 스폰서가 생겼다는 소식이 있더니 호주에 갔다고
참석을 안했다.

아이둘과 부인을 미국에 보내고, 돈만버는 기계로사는 기러기 아빠는 혼자 나왔고, 유일하게 열가정 중에 이혼하고 재혼한 한가정도 부인이 일본에 갔다고 혼자 나왔다.

이젠 인생으로 치면 가을을 맞은 가장들!
지금 가장 어려운 세대 인듯 하다 늙지도 그렇다고 젊지도 않은 나이..

모두 잘나간다고 했던 사람들인데 ,모두 내색은 안하지만 힘이 드는
모양이다. 어중간한 세대이고, 더군다나 긍융계에 있던 사람들이
많고 보니 더욱 그렇다.
부인들도 특별한 사람이 없으니 모두 가장이 무거운 짐을지고 있고,
그저 바라보는 여자들이니 마음고생도 많지만,
오늘은 잊자고 서로 위로하고 다독인다.

어떻게 한참 일해야 할 나이에 사오정이나, 이젠 38선이라는 은어를
들으며 씁쓰레해야 하는지......
앞으로 나아질까?
아니면 불행한 세대로 이렇게 아주 뒷전으로 밀려나는걸까?

서로 위로하는자리가 됨을 감사하며, 내년에는 올해보다 좀더 경제가
나아지길 기대하며, 서로 헤어짐의 손을 잡았다.
여자들은 예뻐지고 늙지말라는 말도 잊지않고......

반포에 사는 부부를 뒷좌석에 태웠는데, 두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룸밀러로 보면서 콧등이 찡해졌다.

-그래!, 20년이 넘게 살다보면 부부밖에 없다는 기막힌 진실을 모두알게
되나봐-

얼굴이 발게져서 기분이 좋아서 조수석에 앉은 우리신랑이 내게도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확인을 하기 위해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상한지 그가 묻는다.

"왜? "
"아니, 그~냥 "
"왜~에 "
" 당신이 고마워서 "
"뭐가 "
" 할줄 아는게 운전밖에 없는 나랑 잘 살아줘서 "
"싱겁긴, 당신이 늘 기사 해주어서 내가 고맙지 "
우리 부부도 이젠 늙어가나보다. 서로 듣기 싫은 소리는 안하려고 노력
하는걸보면.....

우리 신랑 제일 잘하는말 또한다.
" 오늘 만난 부인들 중에 당신이 제일 멋지고 예쁘더라"
ㅎㅎㅎ 팔불출 우리신랑 . 거짖말이라도 고맙구려!

뒷자리의 부부가 태워다 주었다고 자기집 근처에서 한잔을 더 하잔다.
나는 기사인고로 또 주인님의 4차가 끝나기를 기다려야 했다.